이세영의 질문 지금 우리나라가 독재는 분명 아니지만 그렇다고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선거는 꼬박꼬박 치러지고, 국민의 손으로 대표자를 뽑고 있다. 하지만 선출된 권력 또는 비선출 권력의 남용과 선택적 행사 등 비민주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선거는 정치공동체를 위한 비전들의 경합이 아니라, 공적 자원을 독점하기 위한 혈투의 장이 된 것처럼 보인다. 지금 이 시대를 읽어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민주주의 개념을 가져야 하는가.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제1429호)
“들어보셨어요?” 요즘 어디서 정치 얘기가 나오면 꼭 듣게 된 질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동영상’ 말이다. 최근 대통령실이 촉발한 ‘바이든 대 날리면’ 논쟁은 낯 뜨거울 만큼 유치한 상황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여러 면에서 생각하게 한다. 국민까지 ‘바이든’파와 ‘날리면’파로 분열됐고, 집권세력은 언론과의 싸움을 택했으며, 정당들도 국정 현안을 뒤로하고 모두 이 전투에 뛰어들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건강 상태에 관한 논란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국제적 평가는 상승했지만, 국내 비판 세력은 임기 내내 ‘독재’ ‘파시즘’ ‘전체주의’라고 비난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자들은 그런 비판을 수긍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방송 장악, 정경유착, 댓글부대, 여론조작,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비선 실세 정치 등의 반(反)민주성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도 성공적으로 달성한 나라라는 공식 서사를 우리는 오래전부터 들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렇게 한 번 달성하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돌아보면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는 언제나 한국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었고 사람들의 열정과 분노에 불을 붙이는 단어였다. 촛불을 든 사람이든, 태극기를 든 사람이든, 수많은 시민이 저마다의 정치적 이상을 갖고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싸우는 정치적 민족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는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체제인데, 이 나라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정치양극화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상대를 공격하는데, 이쪽의 민주주의와 저쪽의 민주주의가 다르다. 대체 민주주의가 뭔가.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인가 아닌가. 우리에겐 지금 어떤 민주주의가 부족한가.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를 강력하게 규정해온 정신은 6·10항쟁의 모토인 ‘직선제’에 압축돼 있었다. 국민이 대표자를 뽑는다는 이 이념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는 선거민주주의 또는 경쟁민주주의다. 조지프 슘페터는 정당들이 유권자의 표를 얻으려 경쟁하고 선거로 승부를 보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수라고 했다. 세계 많은 나라가 1970~1980년대 ‘민주화의 제3물결’로 이룬 것이 그런 의미의 선거민주주의였다.
하지만 선거와 경쟁, 다수결 원리는 결코 민주주의의 전부가 아니다. 민주주의 이념을 구현하려면 정기적인 공정선거로 충분하지 않다. 선거와 선거 사이 일상적 정치과정에서 시민의 자유와 참여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취지에서 미국의 정치이론가 로버트 달은 표현·결사의 자유와 비판적 정보가 보장되고, 정부가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를 차별 없이 고려할 때만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와 더불어 민주주의와 헌법주의라는 두 이념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이 민주적 가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다수의 의지가 소수자에게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결 선거민주주의의 거친 힘을 통제할 또 다른 힘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독일의 정치학자 볼프강 메르켈은 선거제도가 시민적 권리, 권력분립과 법치 등 헌법민주주의에 뿌리내려야 함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세계와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이 가운데 어떤 민주주의가 확대됐고, 어떤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는가.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장기 추이를 본다면, 선거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확대됐다. 스위스 정치학자인 한스페터 크리지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인구 중 선거민주주의 체제에 사는 인구 비율은 1944년 16%에 불과했지만 1960년 45%에 이르렀고, 이후 하락했다가 1980년대부터 다시 증가해 2010년대에는 60%를 넘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는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여러 학자와 기관에 의해 제기됐다. 실제로 프리덤하우스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이후 ‘자유로운’ 나라가 감소하는 추세가 나타난다. 하지만 미국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1990년대에 선거민주주의 체제였는데 2010년대에 비민주 체제가 된 나라는 타이, 베네수엘라 등 7개국에 불과했다. 특히 최근 민주주의가 악화한 나라들은 그동안 가까스로 최악의 범주를 모면한 곳이다.
말하자면 지금 부각되는 민주주의 문제에서 주목할 부분은 군사쿠데타 같은 전통적 독재 형태의 부활이나 부정선거, 야당 탄압처럼 눈에 띄는 민주주의 부정이 아니다. 최근 경향의 특징은 선거경쟁이라는 형식을 없애지 않으면서, 아니 오히려 그것을 활용해 민주주의의 더 깊은 부분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붕괴나 위기가 아니라, 은밀하고도 점진적인 부식과 약화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폴란드·헝가리·그리스·브라질 등 많은 나라의 최근 정치 상황이 그러하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특성이 공존하는 체제를 혼합체제·혼종체제·회색지대 등 다양한 용어로 부르는데, 그 스펙트럼이 결함 있는 민주주의부터 사실상의 독재까지 아주 넓고 지배기술도 다양하다. 선거의 승자가 그 정당성을 내세워 의회와 법원을 길들이거나, 사정기관을 동원해 비판적 언론과 시민을 법의 이름으로 겁박하거나, 피플파워를 주장하며 대의기구를 무력화하거나, 이주자·성소수자·복지수혜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를 증폭시켜 지지층을 얻거나 한다.
최근 변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의 미국은 ‘선진적’ 민주주의 사회도 심각한 민주주의 후퇴가 가능함을 보여줬다. 지금 많은 연구에서 미국은 굴욕적이게도 온전한 민주주의 나라로 분류되지 않는다. 미국 같은 사례에서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힘은 과거에 독재를 겪은 나라들과 성격이 다르다. 비민주적인 역사의 유산이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의 중심에 있는 에너지가 민주주의 자신을 공격하는 힘으로 되돌아온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견과 갈등은 자연스럽지만 감정적 양극화와 상호적대로 치달으면 공동의 민주적 규범 자체가 흔들린다. 반(反)엘리트주의는 민주적 문화의 일부지만 그것이 반(反)대의제 태도와 결합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적이 된다. 팬덤정치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형성되지만 정당과 절차를 흔들 수 있고, 사회에 만연한 소수자 혐오는 민주적 다수결로 구조적 폭력을 입법화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어떤 요소가 민주주의의 다른 요소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런 양상은 한국에서도 익숙한 광경이다. 그렇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후퇴하는 걸까?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조사를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프리덤하우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의 ‘민주주의 다양성’ 조사, <이코노미스트>의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조사 등은 대체로 일관된 추이를 보고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크게 상승했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부분적으로 자유’롭거나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강등됐지만, 문재인 정부 때 상당히 회복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의 정치적 퇴행은 민주주의의 핵심 기둥들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한 점, 군·경찰 등 국가요원들이 정권의 댓글부대로 동원돼 조직적으로 여론을 왜곡한 점, 정권과 법원 지도부가 거래한 점, 공적 직위가 없는 사인이 국정에 관여한 점 등이 그러하다. 이런 퇴보가 거대한 시민항쟁에 의해 저지된 것은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과 파괴하는 힘이 여전히 팽팽히 맞선 불안정한 상태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다원주의와 헌법주의의 좀더 완전한 구현이라는 더 높은 기대 수준에서 봤을 때는, 민주화 이후 모든 시기에 지속됐고 어떤 면에서 더욱 악화된 민주주의의 결손이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오래된 문제는 권력분립 결여, 다시 말해 선출된 권력의 남용이다. 거대 정당들은 선거에서 이기면 ‘국민이 선택한 승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민주주의’라는 식의 위험한 인식을 드러냈다. 그런 인식으로 정권이 의회, 법원, 언론을 길들이려는 것은 큰 위험이다.
한편 지난 몇 년 사이 부쩍 심해진 극단주의, 정치양극화, 팬덤정치, 혐오정치 등의 현상은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부식을 보여준다. 이들은 단순히 ‘아직 민주화가 덜 됐다’는 차원의 현상이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에 내재적인 에너지가 민주주의 규범과 가치를 무너뜨리는 자기파괴적 힘이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많은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민주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민주주의를 주창하거나 더 많은 민주주의를 호소하는 것만으로 민주주의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 민주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성찰해야 하며, 무엇이 민주주의인지,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 것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신진욱의 질문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 구도를 지켜보면, 더불어민주당 집권 시절인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두고 벌어진 정치사회적 논쟁을 떠올리게 된다. 한국에서는 왜 유독 노사관계나 노동조건의 변화와 결부된 제도개혁이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고 정치적 결실을 얻기 쉽지 않은가. (제1434호로 이어집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신진욱X이세영의 정치크로스: 정치사회학자인 신진욱과 정치부 기자 출신인 이세영이 한국 정치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의 정치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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