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욱의 질문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 초대국장이 과거 노동운동 동료들의 정보를 경찰에 넘기고 경찰에 특채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김 국장은 자신이 주체사상에 경도된 조직에 회의를 느껴 ‘전향’한 것이라고 했지만, 과거의 동료들은 그가 전향의 차원을 넘어 적극적인 ‘밀정’ 노릇을 했다며 그의 사퇴를 요구한다. 기실 ‘전향’은 정치권에서도 민감한 주제다. 정치인이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바꾸는 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제1427호)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 사라진다. 신성한 모든 것은 더럽혀지며, 인간은 마침내 자신의 진정한 생활 조건에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냉정히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카를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중에서)
현대인이 된다는 건 단단한 전통의 지반을 떠나 일렁이는 변화의 물결에 온전히 제 한 몸 내던지는 것이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의 억견이 되고, 천년을 이어온 신앙고백은 동어반복의 주술(呪術)로 전락하는 세계에서 신념과 사상을 지키며 산다는 건 무모하고 절망적인 자기 위안에 가까울지 모른다. ‘전향’의 문제가 간단찮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신이 떠나버린 세계에서 전향은 불가피하다. 복수의 이념이 진리를 자처하며 경합하는데 무엇이 참인지를 분별해줄 최후의 보증자가 없다면, 조건과 상황에 따라 신념을 바꾸는 건 더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초대 경찰국장 김순호의 ‘전향 전후’ 행적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김순호는 자신을 겨냥한 ‘프락치 의혹’을 부인하며 자기 행위가 ‘배신’이나 ‘변절’이 아니라, 주체사상에서 자유민주주의로의 ‘사상적 전향’임을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 실제 급진적 사회변화를 추구하던 비합법 조직의 핵심 활동가였던 그가 체제 수호의 첨병인 공안경찰로 변신한 것은 어쨌거나 전향의 사전적 정의에 부합한다. 그가 공안당국의 사주를 받고 운동권 조직에 침투한 밀정이었다거나, 조직의 정보를 넘기는 대가로 경찰에 특채됐다고 볼 만한 물증은 아직 나온 게 없다. 다만 김순호가 경기도 부천에서 ‘인천·부천지역민주노동자회’(인노회)의 핵심 간부로 활동하다 1989년 잠적한 뒤 경찰에 특채됐고, 잠적을 전후해 인노회 조직원들이 대거 경찰에 검거됐다는 사실은 그의 전향이 순수하게 사상적인 차원에만 머물렀다고 보기 어렵게 한다.
‘전향’이란 어휘가 우리말 체계에 들어온 건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다. 급진주의자(사회주의자)가 자신의 신념과 사상을 포기하고 체제가 공인하는 사상을 받아들이는 행위를 지칭하는 일본말 ‘덴코’(轉向)에서 유래했다. 전향이란 행위 자체가 현대성의 산물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우리 역사에 전향이라 이를 만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애당초 그것(서학)에 물이 들었던 것은 아이들 장난과 같은 일이었으며, 지식이 성장한 뒤에는 그것을 적이나 원수로 여겨, 알기를 분명히 하고 분변(分辯)하기를 더욱 엄중히 하여 심장을 쪼개고 창자를 뒤져도 실로 남은 찌꺼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위로는 임금에게 의심을 받고 아래로는 당세(當世)에 나무람을 당하여 입신한 것이 한 번 무너짐에 모든 일이 기왓장처럼 깨졌으니, 살아서 무엇 하겠으며 죽어서 장차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 신의 직을 체임(遞任·벼슬을 갈아냄)하시고 내쫓으소서.”(<조선왕조실록> 정조 46권, 21년(1797년) 6월21일 두 번째 기사)
1797년 동부승지에 임명된 정약용이 임금에게 올린 글이다. 곡진한 소(疏)의 형식을 취했으되, 실상은 ‘사상 전향서’였다. 조정을 장악한 노론 벽파가 왕의 친위세력인 시파를 견제하려고 무리의 신성 격인 정약용 가계의 천주교 이력을 집요하게 공격하자, 정약용으로선 자신의 정치생명은 물론 일가의 목숨까지 위협할지 모를 ‘사상 문제’를 차제에 정리해둘 필요가 있었다.
엄밀히 따져 정약용의 사례는 ‘전향’보다는 ‘배교’(背敎)라 이르는 게 합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배교와 전향엔 공통점이 있다. 갈아치우는 대상이 사상이든 종교든, 그 행위가 과거의 급진적 신념(정약용 시대에 천주교는 체제의 존립을 뒤흔들 수 있는 불온사상이었다)에 대한 전면적이고 극단적인 부정의 형태로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1800년 후견자였던 정조가 죽자 정약용은 다시 한번 옥사(신유박해)에 휘말리는데, 이때엔 형인 약전·약종과 함께 혹독한 추국을 당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그는 과거의 행적과 사상을 거듭해 부정하며, 배교를 거부한 형 약종을 비난하고 자신에게 영세를 준 매형 이승훈을 저주했다. 심지어 천주교도 색출법을 자청해 조언하기까지 했다. 전향의 진실성을 입증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전향자들에게서 빈번하게 관찰되는 변신의 극단성은 우리에 앞서 사회주의자들의 광범위한 전향을 경험한 일본이나 미국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1930~1940년대 일본 공산당 지도부의 상당수는 사회주의혁명 노선을 포기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천황제 파시즘의 열광적 지지자가 됐다. 미국 네오콘의 핵심으로 꼽히는 라이어널 트릴링, 어빙 크리스톨은 젊은 시절엔 극좌 트로츠키주의자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북한 체제와 학생운동권 출신 야당 정치인들에게 유난스러울 만큼 강한 적대감과 공격성을 표출한 뉴라이트도 전향한 주사파들이었다.
이 극단성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인 욕구’의 산물로 설명되곤 한다. 변신에 따른 심리적 불안정을 메우려 과거의 대극에 있는 신념·사상을 취하게 되고, 자신이 속했던 집단에 대해서도 한층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남로당 전향자 출신 박정희의 이후 행적이 대표적이다).
진보·리버럴 진영이 전향에 대해 갖는 부정적 태도는 전향자들의 행동 유형이 드러내는 극단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엔 독특한 한국적 맥락이 있는데, 한 사람이 정치적 신념이나 정체성을 바꾸는 행위는 그것이 강압의 산물이든 시대적 순리를 좇는 결단이든, 그 자체가 윤리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행위로 여겨졌다. ‘지조’를 지식 분자의 덕목으로 떠받드는 유교식 ‘의리 정치’의 유산이었다. 이 점은 정치인이 추구하던 가치나 이념, 소속 집단을 바꾸는 행위를 ‘철새’라는 멸칭으로 비난해온 한국의 정치 문화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적 정치 모럴’의 의미망 위에서 전향이란 어휘에 할당된 위치는 ‘변절’이나 ‘배신’과 멀리 있지 않았다.
문제는 정치인의 전향을 지조 없는 개인의 처신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정치를 사사화(私事化)하고, 한국 정치를 움직여온 역사적·구조적 요인을 간과하게 한다는 데 있다. 한국 엘리트 집단의 특징은 내부를 가로지르는 수평적 동질성이다. 봉건적 신분질서의 급격한 해체에 이은 식민통치와 농지개혁, 내전을 경유하며 한국의 계급은 사실상 ‘가루’가 돼버렸는데, 이렇게 파편화되고 하향 평준화된 계급구조는 한국 엘리트 집단을 강한 정서적·계층적 동질성으로 묶어놓았다. 특히 명문 중·고교와 대학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 엘리트들의 (지연과 결합한) 학연 네트워크의 구실은 결정적이었다. 사회·정치 질서의 급격한 변동 속에 보수적 지배 엘리트와 저항 엘리트 집단 간 비공식 교류와 공식적 위치 이동의 상례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박정희 집권기에 이뤄진 혁신계의 집단 전향, 4·19 세대와 6·3 세대의 점진적 체제 내화도 이런 한국적 배경 아래서 가능했다.
이런 한국적 상황은 19세기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국가 통일운동) 시기 이탈리아 정치에서 나타난 ‘변형주의’(Trasformismo)를 여러 측면에서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이탈리아의 개혁은 좌익 계열 유력 정치인들이 진영을 옮겨 집권세력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이뤄졌는데, 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나타난 흐름과도 유사하다. 대표적 사례가 1990년 3당 합당으로 현실화된 군부 주도 보수세력과 영남에 기반을 둔 리버럴 온건파의 연합이다. 30여 년에 걸친 군인 통치에 실질적 종지부를 찍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선명 노선의 김대중이 아니라 집권을 위해 군부와 손잡은 온건파 리버럴의 수장 김영삼이었다.
의미 있는 전향의 또 다른 주인공은 ‘86세대’로 불리는, 1980년대 전투적 학생운동 경험을 공유한 고도로 정치화된 연령 집단이다. 이들은 전향 주사파와 보수언론으로부터 주기적인 사상 공세에 시달렸는데, 이 집단의 주류가 한동안 김일성 주체사상에 경도되거나 북한발 민족주의로부터 직간접적 영향을 받았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치권으로 진출한 일부는 2010년을 전후해 리버럴 세력의 중추로 자리잡았고, 또 다른 일부는 시장의 문법에 신속하게 적응하며 경제·문화 자본의 점유 지분을 빠르게 불렸다. 이제는 정치사회적 주류의 지위를 확보한 이 집단에, 젊은 시절 든든한 ‘민주의 기지’라 여겼던 북한은 ‘달래고 구슬려 시장에 편입시켜야 할 특수관계국’ ‘긴밀히 관리해야 할 리스크 요인’일 뿐이다. 과정이 조용하고 점진적이고 자연스러워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 그들의 전향은 오래전에 이미 완성됐다.
전향이 이슈가 되는 건 그것이 상례가 아닌 예외인 경우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에서 전향은 리버럴의 주류가 된 86세대에서 보듯 더는 드물거나 예외적인 사태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분단과 전쟁이 강제한 이념적 대결주의, 양극화된 사회체제가 빚어낸 정치적 부족주의에 가려 있었을 뿐, 근대 이후 한국에서 전향이 상례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더구나 지금의 인류는,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쓰던 19세기 중반과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의 급진적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의 표현을 빌리면, 사상 최초로 변화 자체를 삶의 영구적 사태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변화가 유일한 영원성이요 불확실성이 유일한 확실성인 ‘액체 현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이 가파르고 멀미 나는 후기 현대의 변화무쌍함 앞에서 우리는 전향에 대해 담담하고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제 전향이 아니다. 비판받아야 할 것은 전향을 강요하는 권력이요, 자기 전향의 진정성을 공인받기 위해 타인의 전향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하는 ‘진정성의 폭력’이다. 그러니 우리, 전향을 묻지 말자. 부단한 전향 속에 사는 건 당신도 우리도 매한가지 아닌가.
이세영의 질문 지금 우리나라가 독재는 분명 아니지만 그렇다고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선거는 꼬박꼬박 치러지고, 국민의 손으로 대표자를 뽑고 있다. 하지만 선출된 권력 또는 비선출 권력의 남용과 선택적 행사 등 비민주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선거는 정치공동체를 위한 비전들의 경합이 아니라, 공적 자원을 독점하기 위한 혈투의 장이 된 것처럼 보인다. 지금 이 시대를 읽어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민주주의 개념을 가져야 하는가.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제 1432호로 이어집니다)
이세영 <한겨레> 기자 monad@hani.co.kr
*신진욱X이세영의 정치크로스: 정치사회학자인 신진욱과 정치부 기자 출신인 이세영이 한국 정치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의 정치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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