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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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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무엇을 어떻게 파괴할 것인가

민주당 참패의 원인, 앞으로 민주당이 가야 할 방향
등록 2022-06-04 14:42 수정 2022-06-05 01:42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2022년 5월24일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열고 “더 젊은 민주당을 만들고 맹목적인 지지에 갇히지 않겠다”며 혁신안을 발표했다. 공동취재사진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2022년 5월24일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열고 “더 젊은 민주당을 만들고 맹목적인 지지에 갇히지 않겠다”며 혁신안을 발표했다. 공동취재사진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민주당은 2022년 6월1일 치른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완벽하게 패배”했고 “철저하게 실패”했다. 안전하게 승리할 것으로 점쳐졌던 호남(광주·전북·전남)과 제주 외에,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가 8913표차(0.15%포인트)로 신승을 거두고 이재명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것이 성과라면 성과겠지만 선거 결과의 세부 지표를 들여다보면 ‘실패’가 분명하다.

우선 인천 계양을 선거 결과를 보면, 이재명 후보 득표수(4만4289)보다 기권수(5만4656)가 더 많다.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자와의 득표율 차이(10.49%포인트)도 2년 전 치른 제21대 총선 때 송영길-윤형선 후보 사이의 득표율 차이(19.93%포인트)에 견줘 절반 가까이 줄었다. 내리 5선 의원을 낼 정도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구에서 대선주자가 받아든 성적표라기엔 초라하다.

또 다른 민주당 ‘텃밭’인 광주의 투표율이 37.7%로, 전국 최저를 기록한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는 역대 지방선거 사상 최저 투표율이기도 하다. 민주당 지지자 다수가 사실상 투표를 포기한 셈이다. “광주 투표율 37.7%는 현재의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탄핵”(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비상대책위는 6월2일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대선과 지방선거에 대한 평가와 전당대회를 준비할 당의 새 지도부는 의원총회와 당무위원회·중앙위원회를 통해 구성될 것”(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라고 밝혔지만, ‘친문-친이’ 당내 계파 갈등이 선거 직후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새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도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내놨던 5대 혁신안(△더 젊은 민주당 △더 엄격한 민주당 △약속을 지키는 민주당 △폭력적 팬덤과 결별한 민주당 △미래를 준비하는 민주당)도 사실상 힘을 잃게 됐다.

<한겨레21>은 6월1~2일 정치평론가, 정치학자 등 9명에게 민주당 참패의 원인, 앞으로 민주당이 가야 할 방향 등을 물었다. “(위기에도) 철거 후 재건축을 하는 게 아니라 페인트칠만 덧칠해왔던”(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민주당은 어떻게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까. 당내에서 “폐쇄적인 권력 순환 구조를 바꾸는”(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개혁이 뒤따르지 않는 이상 또다시 사과만 반복될 수 있다. 전문가들의 지적을 크게 세 주제로 나눠 정리해본다.

1. 독이 된 0.73%포인트 대선 패배

우선 3월 치른 제20대 대선에서 민주당이 ‘0.73%포인트’란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것이 결국 당에 ‘독’이 됐다. 민주당은 대선 이후 패배에 대한 평가를 유예했다. 대신에 대선 막판 지지를 모아준 2030 여성들의 대거 입당에 고무됐다. ‘개딸’(개혁의 딸) 등을 앞세우며 핵심 지지층의 울타리 안에 안주했다. “대선 이후 석 달 내로 바로 선거를 치러야 하니까 두 선거를 최대한 분리하고,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지역에서 새로운 의제를 던져 싸우는 게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어야 했는데 정반대로 나간 것”(박원호 서울대 정치학 교수)이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 전 대선후보의 인천 계양을 출마나 송영길 전 당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는, 민주당 스스로 지방선거를 ‘패배한 선거의 연장전’으로 만들어버린 ‘악수’였다. 박원호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 패배 뒤 영국 유학을 갔다가 3년 뒤에 돌아와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것처럼, 통상 선거에서 지면 (그 책임을 지고) 후보 본인과 당, 유권자를 위해서라도 (선거에서) 벗어날 시간을 주는 게 맞는다”며 “검찰 수사와 관련된 문제 등 여러 현실적인 고려가 필요했겠지만 당 차원에서 보면 ‘소탐대실’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재명 전 대선후보는 전체 선거를 지휘해야 하는 총괄선거대책위원장직을 맡았는데도, 인천 계양을 당선이 불투명해지자 전국 유세는 당 지도부에 일임한 채 인천 유세에만 집중했다.

게다가 대선 패배의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였던 지자체장들의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반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57개 시민사회단체가 과거 민주당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2차 가해를 했던 후보(변성완 부산시장 후보·양승조 충남도지사 후보·최민희 남양주시장 후보) 3명을 ‘공천에서 배제하라’고 4월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공천을 강행했다. 민주당 비대위가 권력형 성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던 것과는 엇박자였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민주당이) 자신의 눈앞에 보이지 않는 시민들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이 후보들의 출마가 시민들에게 어떤 신호를 주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며 “이는 (민주당 의원들이)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를 한다는 것, 사실상 권력을 사유화한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윤호중(왼쪽 넷째), 박지현(왼쪽 다섯째) 공동위원장과 위원들이 2022년 6월2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윤호중(왼쪽 넷째), 박지현(왼쪽 다섯째) 공동위원장과 위원들이 2022년 6월2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동취재사진

2. 박지현의 혁신? 고립?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선거일을 일주일여 앞두고 내홍이 불거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밝혔던 5대 혁신안은 선거 참패로 빛이 바랬다. 혁신안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약이 됐을까, 독이 됐을까. 당내 평가는 엇갈린다. 수도권 유세에 나섰던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내용은 좋지만 (발표) 타이밍이 문제였다고 평가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발표 시점은) 사실상 ‘타이밍’이 전부였던 상황”이라며 “(수도권에서) 박빙인 상황에서 지도부가 그런 모습을 보이니 유세 현장에서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젊은 정치인을 중심으로 박 전 위원장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있다. 성남시장 예비후보로 나섰던 이대호(32)씨는 “박 전 위원장의 활동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당내에서 강성 지지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와 다른 의견이 고개를 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데 성과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혁신안의 옳고 그름을 채 논하기도 전에 일반 유권자에게 “‘여전히 싸운다’ ‘시끄럽다’는 인상을 줬다”(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점이다. 혁신안을 발표한 뒤 박 전 위원장이 했던 사과 역시 “민주당이 그만큼 불리함을 보여준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일반 국민은 부여하진 않는다”(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고 평가받는다.

‘586 용퇴’를 언급한 점에 김윤철 교수는 “박 전 위원장은 패기와 도전 의지가 높은 리더십 자원이라고 생각하지만, 당내에서 세력을 만들지 못했고 문제를 접근할 때 거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당내 설득을 거쳐 비대위의 총의를 모아내기보다 홀로 기자회견을 하는 방식이 오히려 박 전 위원장의 입지를 좁히고 고립을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586’이라는 집단을 두루뭉술하게 표적으로 삼아 ‘내부 총질’로 간주될 투쟁을 하기보다는 설득과 신뢰의 기반을 먼저 마련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런 내홍이 오롯이 박 전 위원장만의 책임은 아니다. 애초에 “이질적인 목소리를 내라고 앉혀놓은 자리”(박원호 교수)인데다 “민주당 의원들이 (박 전 위원장이) 인기가 많을 땐 자신들의 행사에 끌어와 쓰다가 지금은 누구도 곁을 내주지 않아 (그가) 모순적인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게” 만든 점은 “조직 전체의 책임”(권수현 대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3. 앞으로 민주당 혁신의 핵심은?

이제 민주당에 남은 과제는 ‘제 눈에 안경’을 벗어난 정확한 현실인식이다. “특정한 방향성을 잡고 (혁신을) 한다기보다 (당내에서) 무엇을 어떻게 파괴하느냐가 더 중요하다.”(윤태곤 실장) 민주당이 작별해야 할, 혁신 과제를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짚어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 과제는 “자신들이 압도적 입법 권력을 가지고 우리가 다 할 수 있다는 기득권 의식”(신율 교수)일 수도 있고, “다양한 의제가 들어올 여지를 점점 사라지게 하는, 소수의 고관여층이 (선거에) 반복적으로 동원되는 구조”(윤광일 숙명여대 정치외교학 교수)일 수도 있다. 아울러 “미래지향적 의제를 만드는 자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이만 젊은”(권수현 대표) 당내 젊은 정치인들이 ‘586보다 더 586스러운’ 행태를 보이는 데 대한 성찰이 더해져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신진욱 교수는 민주당의 현재 상황을 “당의 중심 권력과 핵심 지지층 사이에 수직적 동맹관계가 존재한다”고 짚었다. “정당정치와 시민 정치세력 간에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긴장관계가 존재하는 것이 수평적인 관계라면, 수직적인 동맹관계에선 정치인들에게 건강한 비판을 제시해줄 세력이 없어진다. 이 수직적인 동맹관계 상층에 일부 586 정치인이 있고, 다음 세대의 정치 엘리트도 (상층으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즉, 현재 민주당은 폐쇄적인 ‘기둥’ 같은 구조다. 지금 구조로는 민주당의 전체 지지층조차 포용하지 못하고 결국 당을 점점 왜소해지게 한다. 이 기둥을 깨뜨릴 수 있는 건 이 구조가 정의롭고 옳다고 생각하는 기득권 집단이 아닌 범지지층, 더 나아가 지지층이 아닌 국민까지 포용하고 통합하는 리더십만으로 가능하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방자치법이 32년 만에 전면 개정되고 나서 처음 치른 선거였다. 법이 개정됨에 따라, 주민이 지방의회에 조례안의 제·개정을 요구하는 등 주민 참여의 길이 더 넓어졌다. 지방의회의 정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전문인력도 충원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역 자치를 대폭 강화한 뒤 치른 첫 선거인데 중앙선거의 재판(반복)으로 만들어버렸다”(윤광일 교수). 뒤늦게 민주당 의원들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오만과 착각”(홍영표 의원), “품앗이 공천”(신동근 의원)이 선거 패배의 원인이었다는 반성문을 내놓았지만, “개혁을 입에 달고 살지만 며칠 지나면 또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신율 교수)는 불신이 팽배해 있다.

민주당의 폐쇄적인 ‘기둥’을 깨뜨리고 ‘재건축’하는 과정은 번지르르한 반성과 사과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런 한계를 깨닫는 데서 민주당 혁신의 첫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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