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독특한 직업이다. 대통령학의 권위자인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뉴스타트는 대통령을 “만능 사무원”이라고 규정했다. 형식상 모든 대통령은 그를 선출하는 국가에서 지도자 구실을 맡지만, 그 사실이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대통령에게 복종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통령의 권력이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대통령의 지도력을 형식적으로 받아들인다.”(<대통령의 권력>)
그리하여 대통령제 아래 대통령은 모든 시민과 이해관계자에게 각각의 방식으로 ‘사용’된다. 정부 공무원과 의회, 소속 정당, 일반 시민, 외국의 원조와 봉사에 대처하는 일까지…. 모든 사람이 대통령에게 의존하지만 모든 사람이 대통령을 지지하진 않는다. “아무도 그의 자리에 앉아 있지 않고, 그와 똑같은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뉴스타트는 설명했다. 미국 대통령만 그런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대통령도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 관저에 입주하기까진 그 ‘만능 사무원’의 과중한 책임과 무게를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대통령은 숙련된 정치인이어야 하고 뛰어난 정책 이해도를 가진 학습자여야 한다. “대통령직은 아마추어를 위한 자리가 아니다. 이런 전문성은 정치적 직책에 관한 깊은 경험이 없이는 거의 얻을 수 없다. 대통령직이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자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정치인을 위한 자리는 아니다”라고 뉴스타트는 썼다. 2022년 3월9일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이하 당선자)는 정치 신인이다. 꼭 정치학자나 대통령학 연구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그의 국정운영 능력을 우려할 수 있다.
0.73%포인트. 제20대 대선의 절묘한 민심이다. ‘내로남불’로 상징되는 독선과 ‘부동산정책 실패’로 실망을 준 정권을 심판하되 정치적 역량이 끝내 미심쩍은 제1야당 후보에게는 한 줌만큼만 표를 더 보태줬다. 이 아찔한 숫자 위에 새 정권이 들어선다.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에서 이 숫자는 향후 5년을 지배할 것이다. 검찰을 개혁하려던 자리에 첫 검찰 출신 대통령이 당선됐고 정치 양극화로 인한 양쪽 진영의 적대가 극심한 때 정치 신인이 가장 정치적으로 능란해야 하는 사람의 자리에 섰다.
다행히 그는 당선자로서 첫날 일정을 소화한 3월10일 당선 인사에서 “오직 국민만 믿고 오직 국민 뜻을 따르겠다.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철 지난 이념을 멀리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부정부패는 네 편 내 편 가릴 것 없이 국민 편에서 엄단”하겠다고도 했다. ‘철 지난 이념’을 멀리하겠단 약속과 ‘엄단’의 의지가 화해와 통합의 일성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임기 내내 좌우를 갈라치기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조차 2012년 12월20일 당선 인사에선 “저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민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당선자는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고 대통령으로서 새 시대를 열 수 있을까. 정치학자 6명에게 ‘대통령, 성공의 조건’을 물었다.
“자기를 찍지 않은 사람들, 그들이 왜 자기를 그렇게 싫어하는지 돌아보지 않으면 그들의 대통령이 되기가 굉장히 어렵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보는 정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의 조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콘크리트 방어선’이라 믿었던 40%를 깨고 30%대로 추락한 시기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 조처 등이 이뤄진 2020년 12월이다. ‘편가르기 정치’의 위험을 방증한다.
가장 가까운 반대자인 야당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10일 당선 뒤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지도부를 만나 “남북관계, 안보 문제, 한-미 동맹 등 이런 부분은 한국당에서 조금 협력해준다면 잘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안보에 관한 중요한 사안들은 야당에도 늘 브리핑할 수 있도록 안보 관련 중요 정보를 공유하면서 지혜를 모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정보 공유는 야당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첫걸음이다. 공유하되 비밀 유지가 안 될 경우 야당에 책임을 물으면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힘 있는 정권도 ‘독주’하면 역풍을 맞게 된다”며 “배려의 리더십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양극화가 극심한 한국 정치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반대자를 껴안는 통합의 리더십”이다. 문우진 아주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갈등 조정 능력과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능력 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만 한 리더십을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건 그런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도 “가장 중요한 대통령의 자질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반대자를 껴안고 만나고 이야기하는 소통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기점으로 남북관계, 미국과 러시아, 중국 관계 등 취임 직후부터 변화의 기류가 거셀 텐데 야당의 협조는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야당을 기용하라172석 야당과의 협치는 쉽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이 비토(거부)하면 대통령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차기 총선까진 2년이 남았다. 일각에서 야당 의원들을 장관 등으로 기용하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김준석 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경쟁자를 기용한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남북전쟁 막바지, 링컨은 노예해방이 전쟁의 주목적이라는 급진 공화당원과 연방의 복원을 위해서만 싸워야 한다는 보수 민주당원 사이에 끼어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그는 당내 경쟁자들을 국무, 재무, 법무 장관에 과감하게 기용해 당내 화합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석 교수는 “당선자가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통령으로서 내각에 자신과 척을 두었던 인물,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던 (유능한) 경쟁자를 등용하는 과감성을 보여줄 수 있다면 사회 전반에 통합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김형준 교수도 “한국적 현실에서 통합정부는 실제로 불가능하다”며 “의원 빼오기를 못하는 상황에서 통 큰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할 방법은 인선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윤 당선자가 2월 유세 중 “민주당에도 훌륭한 분이 많다. 민주당의 양심 있고 훌륭한 정치인들과 멋진 협치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경제 번영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한 대목을 염두에 둔 것이다. 김 교수는 “인위적 정계 개편을 하긴 어려울 텐데 이런 탕평 인사를 할 수 있느냐가 협치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과 국제 정세,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신3고현상’ 등을 고려하면 새 정부는 출범 전부터 이미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차기 정권은 역설적으로 ‘신속한 대응’보다 (느리지만 차분하고) ‘신중한 대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독선·독단·독주를 금기시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집권 초 새 대통령의 주요 과제는 “경청”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 케이(K)-방역에 힘입어 과반 의석을 훌쩍 넘기는 역대 최다 의석을 차지한 것도 그런 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당시 K-방역 성과는 방역 주체를 비롯한 정부 대응의 신중한 접근과 위기감을 느낀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사회적 합의) 때문에 가능했다.”
의제를 재정비하라선거 과정에서 제시했던 정책적 우선순위나 정책적 추진방안에 대한 동의, 재동의가 필요하다는 데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였다. 후보들의 도덕성 검증 등에 함몰된 탓에 미래 비전이나 사회적 의제를 제대로 논의하지 못한 선거인 만큼 대선 뒤에라도 정책과 이슈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원호 교수는 “차별금지법 등 우리가 이번 대선에서 놓쳤던 이야기들이 있다. 특히 개인적으론 지방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 청년 문제를 말하는데 진짜 심각한 건 지방의 청년 문제이고, 저출산 중에서도 심각한 건 지방의 저출산 문제다. 대선이 그런 이슈를 토론할 기회였는데 제대로 토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형준 교수도 “오미크론 확산에 따른 코로나19 대응체제를 두고 신방역체계를 어떻게 만들 건지가 당선자의 첫 과제”라며 “방역은 여야가 따로 없다”고 조언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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