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 기간 혐오와 차별은 가장 주효한 선거 전략이었다. 페미니즘은 가장 도드라지는 낙인이 됐다. 이를 제일 적극적으로 활용한 쪽은 국민의힘이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윤석열), “여성의 투표 의향이 남성보다 떨어진다”(이준석)는 발언이 거리낌 없이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역시 반페미니즘적인 남초 커뮤니티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하고, ‘페미 방송에 출연하지 말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매체 출연 약속을 번복했다가 다시 출연했다.
하지만 성별 갈라치기를 이용해 지지율을 높이는 전략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불과 0.73%포인트 차로 이겼다. 20대 남성은 60% 가까이 윤석열을 지지한 반면, 20대 여성은 60% 가까이 이재명을 지지했다. 하지만 혐오에 기대어 정책과 공약을 내놓은 현실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는 없다. 여전히 공고한 성차별,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불안정성은 언제 어떤 형태로든 혐오와 배제의 정치를 소환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현실을 딛고 혐오, 차별, 배제에 맞서는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갈 수 있을까. 2022년 3월9~10일 이틀에 걸쳐 김정희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 교수(커뮤니케이션학), 김혜정(오매) 한국성폭력상담소장,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책임집행위원,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와 함께 화상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혐오를 매개로 하는 ‘우파 포퓰리즘’의 등장을 경계하면서 이에 대항할 수 있도록 시민 각자의 ‘말하기’를 토대로 한 연결, 그리고 연대를 통한 확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홍성수 정책 의제가 부각되지 않고 후보 개인에 대한 공격 위주로 선거가 진행되며 공론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혐오를 이용한 포퓰리즘 정치가 득세했던 게 주요 원인이다. 이런 포퓰리즘 공약이 다른 많은 이슈를 빨아들이고 담론을 왜소하게 만들면서 건전한 선거운동이 이뤄지지 못했다.
김정희원 양당 정치의 시간임을 절감했다. ‘1번 아니면 2번’식 양당 구도를 깰 수 있는 새로운 정치를 위해 역량을 총동원하고 앞으로 시민사회의 힘을 굳건하게 다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미류 동감한다. 정치 구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 나아가 전 지구적 위기의 시대인데 기성 정치의 주축인 두 정당에서 이 위기가 무엇인지 정의 내리는 사람도 어떻게 가자고 얘기하는 사람도 없다는 게 절망스러웠다.
오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과 미투 운동 이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나 소수자가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괴롭힘을 당하는지 이야기했는데, 대선 국면에선 ‘누구를 통해 대의 해야 하나’로 이슈가 빨려 들어갔다. 좁은 선택지 사이에서 많은 게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등을 정치가 고민하고 확장하는 장이 되지 못했다.
대선에서 기억에 남는 결정적 장면을 꼽아달라.오매 심상정 후보가 TV토론에서 김건희씨의 ‘미투’ 관련 발언에 대해 윤석열 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한 장면, 추적단 불꽃의 박지현씨가 민주당에 가서 이재명 지지를 호소하고, 신지예씨가 윤석열을 돕겠다고 갔던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홍성수 윤석열 당선자가 ‘여성가족부 폐지’ 단문 메시지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장면이다.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위터를 이용해 짧고 저열한 글로 지지를 이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전략을 흉내 낸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류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항의에 대해 “다 했죠?”라고 말한 순간이다. 이 후보는 ‘태도’의 문제로 얘기했지만 나는 후보와 시민의 ‘관계 설정’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목소리를 모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시민의) 요구를 확인한 뒤 (자신이) 선택하는 문제 정도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정희원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의 활동, 특히 집회 연설이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권력화의 시공간을 공유하는 경험을 하면 그 힘으로 전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페미니스트들이 (그곳에서) 받은 에너지를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나눌 거라 생각한다.
홍성수 ‘이대남’식 정치가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유용하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이렇게 ‘갈라치기’ 하는 정치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성소수자, 장애인, 다른 소수자 집단에 대해서도 비슷한 방식의 정치가 작동할 가능성이 생겼다. 가장 우려되는 지점이다.
오매 언제부터 (이런 ‘배제의 정치’가) 세력화되고 효능감이 생겼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2021년 5월 이른바 ‘GS25 논란’이 있었다. 재보궐선거(4월)와 이준석 당대표 당선(6월) 사이다. (이대남이 주축인 남초 커뮤니티에서) 특정 손가락 모양을 홍보물에 썼다는 이유로 기업과 정부 부처, 공공기관에 담당자 교체와 경질을 요구했고 대부분 이를 수용하고 사과했다. 이런 방식으로 ‘좌표 찍기’를 통해 혐오와 차별 선동이 이뤄져왔다. (이대남들은) 이 과정에서 정치적 효능감을 차곡차곡 쌓았다.
미류 이대남이 정치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 유의미한 집단으로 등장한 계기는 2019년 초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20대 남성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에 대응방안 보고서를 작성했을 때다. 민주당이 깔아준 주단을 이준석이 밟았다고 생각한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윤석열 당선자의 발언은 (자신이) 남성의 위치에 서겠다는 걸 확인시켜줬고, 이재명 후보도 성차별 구조 자체에 대한 대안과 정책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이대남 현상은 두 정당이 공조한 결 과다.
김정희원 공감한다. 좌표 찍기는 일종의 네트워크화된 폭력과 혐오다. 이대남론은 전체 청년 남성을 대변하지 못하는데도 일부 (커뮤니티의) 목소리가 온라인에서 가시화되고 특정 타깃에 대한 폭력으로 효능감을 얻는 구도가 반복되며 만들어졌다. 정치인들은 이를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이며 오히려 폭력의 메커니즘을 적극 활용하고 방조하고 부추겨왔다.
오매 변화를 만들려면 20대 남성, 20대 여성, 장애인, 재계 각각 따로 집단을 호명해 공약을 나열할 게 아니라 20대가 겪는 어려움이 불로소득을 얻는 계층과 어떻게 연결됐는지 말하고 설득해야 한다. 나열되기만 하면 나중에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포기된다. 3선 지자체장의 위치가 왜 성폭력 가해 원인이 됐는지 연결 지점을 말했을 때 2차 가해가 돌아왔다. 연결점을 논하는 정치적 공론장은 아직 부족하다고 본다.
김정희원 국민의힘은 ‘공정한 경쟁’을 이야기하고 민주당은 ‘공정 성장’을 이야기한다. 한국에선 특이하게 ‘공정’이란 가치가 ‘경쟁’ ‘성장’하고만 붙어다닌다. 즉 ‘평등이나 재분배를 위한 어떤 종류의 개입도 하지 말라’는 얘기다. ‘내 몫을 챙기고 싶다’는 걸 공정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사실 다른 국가는 팬데믹, 전쟁, 기후위기 등을 말하며 ‘통합, 돌봄, 보편’ 이런 가치를 논의하는데 한국은 공정(으로 포장된 것)을 이야기하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파괴적인 담론을 양당 후보가 앞세운다는 생각이다. 대안 가치를 적극 논하는 정치가 시작돼야 한다.
미류 한국 사회가 제대로 된 평등과 재분배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평등이란) 목표가 있더라도 할당제 속에서 인구 집단이 분류되고 그게 다시 차별적 효과를 낳기 때문에 할당제 자체를 지키는 게 ‘평등’의 요구일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 제도조차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공천(순번제)이나 남성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공무원 양성평등채용목표제 정도다. (‘왜 할당제냐’가 아니라) ‘공무원 채용에 왜 이렇게 경쟁이 몰리냐’를 물어야 하는데 이런 질문은 다 사라지고 집단을 분류하는 것만 남았다.
홍성수 ‘공정’이 협소하게 이해되고 있다. 시험을 예로 들면 얼마나 좋은 시험문제냐에 대한 관심보다 ‘명확한 규칙’을 요구한다. 형식적 규칙이 존재하고, 그걸 모두 준수했고, 거기서 비롯된 결과면 공정하다는 생각이 형성됐다. 그 과정에서 규칙이 올바르게 만들어진 건지, 그 규칙을 준수하기 어려운 사람은 어떻게 할 건지, 배제된 사람들은 어떻게 할 건지 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라졌다. (이런 형태의) 공정에 열광하는 건 그전의 한국 사회가 형식적 규칙조차 준수하지 않은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매 공정은 원래 비리, 특히 권력과 결탁한 비리를 근절하는 방향으로 사용됐는데 이제는 개인적 차원에서 약자 배제와 혐오를 경유해 우파 포퓰리즘으로 이어지고 있다. 차별 금지와 불평등 해소란 질문에 정치가 답하지 않으면 이런 포퓰리즘이 반복될 거라고 생각한다.
미류 코인이나 주식은 투자와 투기의 경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를 중심으로 논의된다는 건 경제가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안정적 흐름으로 갈 상황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실패 이후 누가 이다음을 얘기할 수 있을지 우리 모두에게 숙제로 남았다.
김정희원 윤석열 당선자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이재명 후보도 비슷한 가치관으로 선거운동을 했다. 이 후보가 유세에서 ‘앞으로 자산 증식(하려면) 부동산이 아니라 주식시장으로 가라’고 한 말에 정말 놀랐다. 수많은 사람이 ‘영끌’을 해서 주식에 올인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뭐겠나. 노동소득으로 안정적인 생존 기반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 때문인데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주식으로 돈 벌게 해주겠다며 표를 달라는 꼴이다. 주식은 벌어도 망해도 내 책임이고 누구도 어떤 안전망을 보장해주지 않잖나. 개인화된 ‘생존’에 대해 문제의식이 전혀 없는 거다.
앞으로 각자가 속한 영역에서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보나.오매 특정 집단, 특정 정체성은 고정된 게 아니다. 미투 운동,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페미니즘 리부트를 보면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변화했다는 고백이 많다. 공정담론이 휩쓴 시대는 타인을 나에게 위협적인 변수로 여기게 하지만, 타인의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반성폭력 운동도 이제는 이주, 장애, 빈곤, 지역 등 다양한 얼굴을 만나는 길을 가야 하리라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듣고 서로 연결되는 지점을 만드는 일에 책임성을 높여가야 할 때다.
홍성수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장이 양적으로는 많이 늘었지만 논의 수준이 질적으로 향상되진 못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장애인 이동권 투쟁 등의 논의를 풀어가는 방식이 여론조사를 통해 단순히 찬반을 묻거나 온라인 공간에서 ‘좋아요’를 몇 명 눌렀냐 정도로 협소해졌다. 즉자적인 반응에 의존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사회 곳곳에 마련하는 것이 이 복잡한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김정희원 평등, 연대, 공공성 등을 이야기하면 ‘나도 힘든데’ ‘나도 바쁜데’ 이런 응답이 많다. 이런 상대에게 어떻게 ‘말걸기’를 해야 하는지 항상 고민한다. 아동학대 사건 때 평범한 사람들이 분노했던 장면에서 힌트를 얻었는데, 결국 많은 사람을 ‘당위’만으론 설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동학대처럼)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일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 트랜스젠더, 이주민과 난민 등이 겪는 상황에 사람들이 분노·슬픔·아픔을 느끼려면 결국 당사자들의 ‘말하기’가 계속되고 이들의 발화가 잘 들리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미류 차별금지법을 제정함으로써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대선 직후부터 또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데 ‘평등’을 중요한 시대적 가치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평등’한 세상에선 피해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취약성’이 실은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라는 걸 확립해가는 과정, 즉 각자의 경험을 꺼내놓고 연결하려는 과정이 중요하다. 취약성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두려움 없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다. 일단 올봄에 힘 모아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말씀을 <한겨레21> 독자에게도 꼭 전하고 싶다.
좌담은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겼고 대화 주제는 ‘우파 포퓰리즘’으로 이어졌다. 포퓰리즘 전략으로 동원됐던 ‘여성가족부 폐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이런 흐름이 실제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어떤 타격을 입히는지, 다른 구조적 차별을 해소하는 운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치열한 토론이 오갔다.
혐오와 차별을 일소하는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혐오의 언덕을 넘기 위해서라면 “(포퓰리즘 전략을 통해) 개별 시민들이 얻는 이익의 실체가 무엇인지 질문을 자꾸 던지고”(홍성수), “민주적인 숙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미류). 이번 대선에서 “여성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목소리를 냈다는 점을 묵과하지 않고”(김정희원), 그동안 시민사회가 쌓아올린 안전망과 법제도를 기반으로 “성평등한 관점으로 국정을 운영”(오매)해야 한다. 이는 곧, 앞으로 5년 동안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숙제기도 하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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