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실에 있는 이보라 보좌관이라고 합니다. 최근 단체에서 출간하신 <어웨이크닝>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엄청난 인사이트를 주는 책이었습니다. 특히 ‘위험을 매핑하다’와 ‘아름다움을 매핑하다’, 이 두 가지 방법론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래서 책에도 일부 인용하신 것처럼
-통계청의 음식 서비스 거래액 자료 등을 이용해서 일회용 배달 쓰레기 지도 매핑
-덧붙여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도 있으니 국립공원의 ‘아름다움’과 ‘위험’ 매핑
-이뿐만 아니라 지금은 기후위기에 따른 국지성 호우로 주민들의 피해가 극심한데, 그런 위험 지도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봤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국회에서 자료를 요구해 정부 부처의 통계 자료 등을 센터에 보내드리면 이것을 지도에 올려주시는 작업을 공동으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만간 직접 찾아뵙거나 화상으로든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8월26일 오전 10시28분안녕하세요. 커뮤니티매핑센터입니다. <어웨이크닝>을 읽고 많은 영감을 얻으신 것 같아 무척 반갑고 기뻤습니다. 내일이나 다음주 월요일 오전 10시에 화상회의 가능하실까요? 그날 궁금한 사항들을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내 전자우편함에 저장된 커뮤니티매핑센터와의 대화 내용이다. 의원실에서 축사·강연문·질의서를 쓰면서 ‘지금은 디지털민주주의 시대’라는 도입을 언급하곤 했지만, 고백하건대 쓸 때마다 실체 없는 거대담론만 읊는 듯한 느낌이었다. 디지털은 왔지만 민주주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대에 살면서 클리셰(진부한 표현) 덩어리에 수식어만 바꿔 단장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시기에 갓 나온 임완수 대표의 책 <어웨이크닝>을 읽었고 처음으로 그 개념을 손으로 만진 느낌이었다. 이런 때면 아드레날린이 솟는다.
책을 덮자마자 시간을 보니 오후 5시40분, 아직 퇴근 시간 전이니 이 책이 나온 커뮤니티매핑센터에 바로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누군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전화를 끊고 첫 전자우편을 보낸 시간이 그날 오후 6시37분, 그때부터 대화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책을 쓴 임완수 대표가 미국에 거주해 온라인으로 첫 회의를 했다. 커뮤니티매핑센터팀은 자신들의 일이 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다는 것에 무척 기뻐했고, 나는 머릿속에 있던 구상을 눈앞에서 그려낼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그 뒤 임 대표를 포함한 센터 활동가들과 약 두 달간 서로의 시차를 고려해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에 화상회의를 했다. 밤낮없는 열띤 토론 끝에 하나의 모델 사례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그 사례는 ‘도심 배수구 담배꽁초 매핑’으로 정했다. 뜬금없이 웬 담배꽁초냐고? 우리가 하는 작업은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① 시민들이 참여해도 그만, 참여하지 않아도 그만인 보충적 역할이 아니라, 없으면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 핵심적 역할이어야 한다.
② 시민들이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은 곧 공동체를 지키고 가꾸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
③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정부는 사전에 플랫폼을 제공하고, 사후에는 매핑된 정보를 공공의 안전과 복리에 기여하는 데 쓸 수 있어야 한다.
담배꽁초 매핑은 이 모든 조건에 들어맞았다. 장마철 집중호우 시기가 되면 도심 한가운데 침수되는 곳이 꼭 생기는데 그게 도심 인프라(기반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하수구 배수 기능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하수구에 담배꽁초 같은 이물질이 끼여 빗물받이가 제구실을 못해 배수가 안 되기 때문이다. 도로변 빗물받이에 각종 쓰레기가 쌓이고 인위적인 덮개로 하수구를 막는 것이 침수 피해를 3배 이상 키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프라가 문제라면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일으켜서 해결하면 되는데, 이렇게 담배꽁초가 문제라면 공공행정이 매번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을 쫓아다니면서 쓰레기를 주울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때야말로 시민들의 힘을 빌려야만 공동체의 재난 위험을 막을 핵심적인 키가 마련된다.
시민들이 동네를 걸어다니며 발견한 배수구에 끼인 담배꽁초 등 이물질을 사진 찍어 매핑센터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앱)에 업로드하면 앱 지도에 자동으로 배수구 위치와 이물질 상태, 주변 환경(주택가·상가·도로 등)이 표기된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에 맞는 배수구 쓰레기 수거 전략을 세우고, 정부는 홍수가 일어나는 시기에 도심 지역 예방 대책을 세울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미리 제공된 플랫폼에 시민들의 공동 데이터가 모이니 재난을 예방하는 훌륭한 모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디지털민주주의가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가 되는 것에 집중했던 이유가 있다. 2018년 12월 마지막 본회의, 내가 ‘법률안작성편집기’(제·개정하려는 법문을 쓰면 기존 법과 비교해 신구 조문 대비표를 생성해주는 프로그램으로, 국회 내부 전산망에서만 접속할 수 있다)를 통해 한땀 한땀 조문을 만들었던 ‘환경정책기본법’이 통과됐다. 그렇게 만든 법이 통과되면 내 자식 같은 느낌이 든다.
조문을 읽어보면 ‘지당하신 말씀’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국회에서 환경문제를 다루면서 구석구석 목격했던 부정의 때문에 만들어졌다. 법안에는 환경이 가진 자들이 더 많이 누리는 사치재가 안 되기를(백화점의 값비싼 친환경·유기농산물 코너를 볼 때마다), 환경오염을 일으킨 주체들이 더 많은 책임을 지기를(오염물질 다량 배출 기업들이 과태료만 내고 말 때마다), 환경정보가 모든 이에게 고르게 도달되기를(정보를 미리 취득한 기업가들이 본인들 사업에 유리한 방식으로 쓰는 걸 볼 때마다), 환경 피해를 본 시민들이 제대로 신속하고 정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기를(피해 주민들이 국회 앞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보좌관은 법 만드는 게 주업이라지만 하루에도 수십 건의 법안이 발의되고, 그런 신규 법안이 제21대 국회가 개원한 지 2년이 채 안 된 2022년 2월 현재 1만4천 건이 넘어가는 환경에서, 부끄럽지만 모든 법에 영혼을 담진 못한다. 그런데 기후위기에 따른 이변이 일상이 되는 상황에선 가장 약한 사람들부터 무너질 것이고, 국가가 재난을 책임지는 데는 한계가 생길 것이다. 그에 따라 일상의 안위부터 생사까지 결정짓는 정보는 독점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이 환경정책기본법에는 영혼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이 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시민들이 힘써 일궈낸 민주주의의 역사를 뒤로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정의함을 고쳐 쓰지 않는 민주주의는 클리셰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1)절차적 정의 (2)분배적 정의 (3)교정적 정의(신구 조문 대비표 개정안 제2조 참조)를 대한민국 환경정책의 기준점이 되는 ‘환경정책기본법’에 못박고자 했다.
그렇게 시작된 환경정보의 절차적 접근성 문제를 디지털민주주의가 표방하는 수평적 네트워크에 안착시키게 되면 이 추상적인 개념이 우리 삶에 착 달라붙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커뮤니티매핑의 실험을 통해 그 실체를 눈으로 보고 만졌다.
법이 통과되고 3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바뀌었을까? (1)절차적 정의의 관점에서 정보공개 현황을 들여다봤다. 환경부 ‘대국민 웹사이트 현황’ 자료를 요구해서 보니, 총 46개 사이트 중 연간 100명 전후로 이용하는 곳도 있고 그나마 있는 누리집의 정보 제공 방식도 수질·대기·온실가스 등 매체 중심 지표를 공급자 마인드로 공표하는 것이지 시민 중심, 수용자 중심의 데이터 개방 방식은 아니었다. ‘알 테면 알라지(?)’라는 태도랄까. 상임위원회에서 환경정보 공개 시스템의 폐쇄성에 대해 공식적으로 질의하고, 커뮤니티매핑이라는 대안 모델까지 보여준 뒤 3개월 정도가 흐른 2022년 1월, 우리 의원실의 지적사항을 정부가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의원실 질의: 환경정보의 일방적 제공이 아닌 시민들이 역할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방식의 시스템 개편 요구의 이행 현황
-환경부 답변: (환경인플루언서와의 협업) 다수의 고정 구독자로 확산력이 크고 콘텐츠 제작 노하우를 보유한 인플루언서(인터넷 유명인) 14명과 협업해 정책웹툰·홍보영상·정책기사 등을 제작하고 홍보(인스타그램, 유튜브, 블로그 등)함으로써 효과성 증대 등
언제까지 인플루언서 타령만정보의 일방주의를 바꾸라고 하니 인기 많은 인플루언서를 통해 더 열심히 홍보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시민을 객체로 만드는 일방주의가 더 강화되는 아이러니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그리고 계속해서 바뀔 때까지 요구하고 또 요구하겠다.
이보라 국회 보좌관
*‘법 만드는 법’은 국회 10년차 보좌관인 이보라씨가 국민 생활에 밀착한 법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습니다. 이보라씨는 국회여성정책연구모임 대표와 경찰청 사이버성폭력 수사자문단 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고통보다 항상 늦게 도착하는 법이 조금의 쓸모라도 더 가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게 업입니다. 3주마다 연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구속되면 수용복 입고 ‘머그샷’
“역시 오실 줄 알았거든”…윤석열 출석 소식에 지지자들 격앙
윤석열, 1시54분 서부지법 도착…구속영장심사 출석
‘윤석열 수호’ JK김동욱, 고발되자 “표현의 자유 억압”
‘윤석열 영장집행 방해’ 이광우 체포…“정당한 임무일 뿐”
윤석열 쪽 “헌재는 능력 없다” 무시 일관…법조계 “불리한 전략”
[단독] HID 요원, 계엄 때 ‘노상원 경호·선관위원 위협’ 임무
경호처 ‘윤석열, 하늘이 보낸 대통령’ 원곡자 “정말 당혹”
공수처 검사들, 서부지법 도착…지지자 불어나며 충돌 조짐도
‘아메리칸 파이’는 윤석열의 미래를 예언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