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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법조기자단의 카르텔을 무너뜨렸다

기자단의 폐쇄적 관행에 큰 변화… 보편적 정보 공개 따른 위험도 대비해야
등록 2021-12-10 18:34 수정 2021-12-11 00:21
2020년 4월1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유현정 서울중앙지검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 태스크포스(TF)팀장이 검찰 출입기자들에게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구속 기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0년 4월1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유현정 서울중앙지검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 태스크포스(TF)팀장이 검찰 출입기자들에게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구속 기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여간해선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단단한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법조 기자단’ 얘깁니다. 기자단이 신규 매체의 출입을 자의적으로 결정하고 차단하던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법조 기자단에 출입을 거부당한 <미디어오늘>이 서울고등법원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출입 여부는 기자단이 아닌 해당 기관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겁니다. 서울고등법원은 항소했지만, 1심 판결이 확정되면 기자단의 관행에 큰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기자가 검찰과 법원을 출입하려면 현재로선 법조 기자단의 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문제는 심사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겁니다. 3명 이상의 기자로 구성된 법조팀을 6개월 이상 운영하면서 법조 기사를 꾸준히 써야 합니다. 소규모 매체나 프리랜서 기자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한 기자단 가입 조건이지요.

기자실 문이 열리는 건 언론 개혁의 출발

조건을 갖췄다고 다 받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기자단의 찬반 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전체 기자의 3분의 2가 출석해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대검찰청 각각 기자단의 동의를 얻어도 팀장급이라 할 만한 대법원 기자단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탈락입니다.

이처럼 가입 문턱이 높은데도 기자단에 들어가려 애쓰는 이유는 취재 환경이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법원 출입기자들은 재판 방청과 법정 내 노트북 이용이 가능하고 판결문도 받을 수 있습니다. 검찰 출입기자는 보도자료를 받고 압수수색·소환·구속영장 청구와 발부 등 수사 관련 정보를 문자로 통보받습니다. 출입기자가 아니면 모두 어림없는 일이지요. 출입 여부를 기준으로 취재에 응할지를 판단하는 판검사도 많습니다. 기자단에 가입됐다고 취재가 ‘땅 짚고 헤엄치기’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자단에 가입되지 않으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가 되는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제 기자단이 배타적 특권을 누리고 정당한 사유 없이 다른 매체의 취재를 봉쇄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일간지 몇 개가 언론의 전부이던 시절에는 기자단의 정보 독점이 가능했지요. 지금은 언론사가 셀 수 없이 늘어났고 시민 개인이 모두 자기표현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자단이 엠바고(일정한 시간까지 보도를 금지함)로 판결 정보를 막아도 반나절 뒤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세상입니다. 더는 정보를 좁은 기자실 안에 가둬놓을 수 없습니다.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도록 공개하고 공유하는 길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출입처에서 말썽 많은 기자단을 전면 해체하는 게 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취재원과 유착한 ‘받아쓰기 저널리즘’이나 담합을 통한 ‘패거리 저널리즘’의 온상인 것처럼 인식되면서 ‘공공의 적’ 기자단을 없애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기자단 제도에도 분명 순기능이 있습니다.

정보 감추려는 정부에 맞서는 순기능도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기자단은 정보를 감추려는 출입처에 맞서 언론의 방패 구실을 합니다. 기자들은 기자단을 결성해 공동 대처하면서 출입처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난관을 돌파합니다. 기자 한 명의 힘은 약하지만, 기자들의 모임은 힘이 셉니다. 그 힘을 작은 매체들을 향해 쓰지 않고 권력기관에 대항하는 데 쓴다면, 기자단은 시민에게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개별 기자의 취재 요청을 거부하는 검찰총장도 기자단의 취재 요구를 거부하긴 힘듭니다. 입을 다물려는 취재원의 입을 열어 시민이 알아야 할 정보를 캐내는 힘이 기자단에는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 언론들도 주요 권력기관에는 출입기자단을 구성하고 있지요.

물론 여러 출입처에서 기자단이 취재 편의를 위한 출입처와의 ‘알권리 투쟁’에는 소홀하고, 소속 매체와 기자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밥그릇 투쟁’에 더 충실했던 게 사실입니다. 폐쇄적 기자단 관행은 그런 흑역사의 산물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안 없이 기자단을 전면 해체하면, 몰래 뒤돌아 웃는 건 권력을 가진 취재원일 겁니다.

출입처들은 그간 울며 겨자 먹기로 제공하던 정보를 더는 제공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기자단 소속이 아닌 기자의 전화를 받지 않던 취재원들은 모든 기자의 전화를 받지 않을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기자단 관행에 대한 수술이 전보다 정보 접근을 어렵게 하고 취재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기자단이 해체된다면, 투명한 정보 공개와 적절한 취재 지원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마련해야 합니다. 최소한 기자가 출입처에 등록만 하면 현장 출입과 자료 취득 권한을 비롯해 과거 기자단에 제공됐던 취재 편의를 똑같이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한 가지 우려가 더 있습니다.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지만, 정보의 보편적 공개가 위험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유괴된 아동의 안전이나 국가안보 등을 위해 일시적 정보 통제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럴 때 신뢰가 축적된 언론사들로 구성된 기자단과 협의해 엠바고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기자단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중구난방 취재와 정보 유출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자극과 관심만 좇는 유튜버들이 관련 정보를 취득해 무분별하게 유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찔합니다.

이런 경우 기자의 취재 경력, 소속된 매체 성격 등에 따라 예외적으로 차등화한 취재 편의를 주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언론단체들이 추진하는 ‘통합형 자율규제 기구’에 가입해 윤리적 보도를 실천하는 언론사들에 한해 백브리핑 등 차별적 정보를 제공하는 아이디어도 가능합니다. 물론 이런 차별이 남용되거나 기준이 불분명하면 안 됩니다. 기존의 ‘원칙적 배제, 예외적 개방’을 ‘원칙적 개방, 예외적 배제’로 바꾸자는 겁니다.

대안 없이 기자단 해체하면 권력에 유리

극소수 언론사들만의 배타적 카르텔이 해체되는 건 예정된 운명입니다. 하지만 기자단 제도 자체를 색안경 끼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기존 제도를 무조건 부수는 게 언론개혁이 아닙니다. 우리 목표는 언론을 파괴하고 청산하는 게 아니라 좋은 언론을 만드는 것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기자실 문이 열리는 순간은 언론개혁의 종착점이 아니라 언론개혁의 출발점입니다.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배타적 기자단’이 아니라 ‘알권리를 지키기 위한 개방적 기자단’을 만들어낸다면 시민들은 더 유능한 ‘감시견’을 얻을 겁니다.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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