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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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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은 트럼프 아니라 레이건이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이준석식 공정을 만든 시대
등록 2021-06-19 18:35 수정 2021-06-24 11:23
2020년 7월 인천국제공항공사 노동자들이 협력사 직원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7월 인천국제공항공사 노동자들이 협력사 직원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지는 글의 주인공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이하 직함 생략)로 보일 수 있다. 이준석은 현상으로 여겨졌다. 이를테면 새로운 시대정신의 등장.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왔다.” 6월11일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로 당선했다. 36살, 반짝이나 진중한 표정인 젊은 당대표 옆에 선 익숙한 정치인의 모습이 문득 초라했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새로운 세대의 지지를 받아 새로운 세계를 만들지 모른다는 생각에 누군가 들떴고 누군가 절망했다. 그 시대정신은 “다름 아닌 실력, 실력주의”라고 했다.
이어지는 글의 주인공은 이준석일 수 없다. 아직 갓 당선한 야당 대표일 뿐 그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전망도 섣부르다. 다만, 새로움에 대해서는 톺아봐야 했다. 새로운 시대정신, 새로운 세대, 새로운 세계라는 주장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그 새로움은 어째서 이런 말들인 걸까. “강자가 다 먹는 세상” “약자에게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어” “수당은 특정 계층에만 혜택”, 그러므로 새로운 세계의 생존법은 “무한 경쟁, 어찌 되었든 공정한 경쟁”. 흩어진 개인, 때로는 다른 개인을 경쟁 상대로, 어쩌면 심지어 혐오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개인의 모습이 그의 말 속에 숨 쉬었다. 우리는 그를 청년 ㄱ이라고 상상했다. 청년 ㄱ이 이어질 글의 주인공이다.
ㄱ을 둘러싼 세상의 불평등은 생애 내내 확대했다. 세계화에 성공적으로 올라탄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의 아랫자리를 점한 채, ㄱ은 분노했다. ㄱ은 별별 이름의 청년세대로 불렸는데, 규정될 때마다 분노의 대상이 다양해졌다. 숱하고 다양한 50대가 ‘586’으로 퉁쳐지니 기성세대에, 할당제의 피해가 부각되니 나와 다른 젠더로 분노가 향했다. 정규직이 된 비정규직, 노조에 속한 노동자, 복지수당을 받는 약자…. 분노의 대상이 늘어갈수록 ㄱ, 이라는 개인만 남았다. 다만 하나, 아주 오랫동안 불평등의 책임자로 지목됐던 기업과 국가는 잊혔다. 희망은 기업에 요구하고 복지국가로 향하는 연대가 아니다. 희망은, 그러니까 역시 나의 실력뿐이다. 마침내 무엇이든 실력주의를 가로막는다면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불평등의 아랫자리를 점한 ㄱ을 위해 마련한 제도라 할지라도. 이 놀라운 전복에 이르게 된 과정, 거기에 끼어든 정치적 담론을 되짚었다.
아, 물론 청년 ㄱ은 허구의 인물이다. 다만 ㄱ은 가짜이고 날조이며, 그러므로 기사의 주인공으로 부적절하다고 말해주는 정치가 없다. ㄱ에 기대는 정치만 보인다. 이어지는 글은 너무 멀지 않은 미래 어느 시점, 교정되길 바라며 쓰였다.
*모든 인용문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쓴 책 <공정한 경쟁>에서 인용했다._편집자주
1. ‘불평등’의 시대: 개인적인 공정

2021년, 청년 ㄱ의 모습이라 말해지는 풍경이 있다. 청년 ㄱ은 청년 ㄴ과 다르며, ㄴ 탓에 피해를 본다. ㄱ과 ㄴ은 같아질 수 없다. 함께할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포기하지 마.”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청년 ㄱ은 건보공단 정규직을 응원한다. “(건보공단 직원들) 너희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입사했는데 다른 회사 정규직 콜센터 직원을 무슨 직고용을 해. 들어오려면 똑같이 시험 치고 면접 보고 들어와라.” 이기심은 아니다. ‘나’로부터 출발했으되, 나름의 가치는 있다. 건보공단 한 직원이 적는다. “우리는 공정의 가치를 지키고 싶다. 결과의 공정이 아닌 과정의 공정, 절차의 공정을 지키고 싶다. 콜센터 직고용 직영화를 막아달라.”

청년 ㄱ의 가치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화 같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켜켜이 굳어온 것으로 보인다. 시험을 통해 능력을 증명하지 않고 정규직이 되려는 이들은 ‘무임승차자’다. 표준화된 시험으로 능력,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험을 위해 투입한 시간과 노력의 양을 증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시험이 주는 자격, 말하자면 기득권이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되는 기제라고 굳게 믿고 있다. 절차의 공정성을 따지기보다 자신이 가진 자격 조건이나 생계에 대한 위협의 반작용에 가깝다.”(김정희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 교수) 우려 앞에도, ㄱ의 마음은 이미 굳었으므로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2021년 6월11일 이준석 대표(왼쪽 넷째)가 국민의힘 당대표로 당선된 뒤 최고위원 당선자들과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년 6월11일 이준석 대표(왼쪽 넷째)가 국민의힘 당대표로 당선된 뒤 최고위원 당선자들과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MZ세대가 목격해온 불평등

2021년 6월11일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이하 직함 생략)가 탄생했다. 청년 ㄱ과 공명(울림)하는 말, 최소한 그렇게 풀이되는 말들과 함께. 시험을 통해 자격을 증명하라. 토론 배틀을 통해 대변인이 되라. 그는 “시험에 기반한 실력주의(능력주의)를 강화한다”는 비판에 대해, “그러면 그것보다 공정한 제도가 있느냐에 대해선 물음표”(<경향신문> 6월16일 인터뷰)라는 식으로 되받는다. 여기 더해, 기존 정치의 구태와 약점이 공명 중인 당대표와 ㄱ의 확신을 더한다. “정치인들이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소화해서 아웃풋(output·결과물)으로 낸다기보다 보좌관들이 써주는 대로 읽는다는 정서가 있는 걸 치고 들어가는 거다. ‘입법’이란 아웃풋이 부족한, 기존 정치의 취약한 부분을 건드린다.”(박선경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 ‘공명’에 ‘기성’이라 불리는 것들의 무능이 더해지니 놀라운 힘을 낳는다. 청년 ㄱ의 마음과 이준석의 말이 엉키며 믿음은 강해지고 행동은 단호해진다. 공명의 자장은 넓어진다. 마침내, 청년 일반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그 바탕에 무엇이 있는지에는 대체로 비슷한 분석이다.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가 태어난 뒤 줄곧 보아온 2000년대의 불평등을 짚는다. “2000년대(세계화)를 거치며 한국에 특유의 이중경제체제가 자리잡았다. (…) 두 영역(경쟁력을 잃은 대내 영역과 수출 대기업 위주의 대외 영역)의 격차는 계속해서 커졌다.”(임명묵, <케이(K)-를 생각한다>) “불평등의 세대라기보다 불평등 시대의 세대라고 보는 게 맞다. 청년은 동질적이기보다 그 안에 극심한 세대 내 불평등을 포함한다.”(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불평등은 명확하고, 우리는 서로 다른데, 다른 그들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으므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는 자연스럽다. ‘이준석식 공정’이다. 공정이라는 말은 매우 추상적이다. 이준석식 공정, 더 넓게(혹은 손쉽게) ‘이대남’의 공정이라 부르는 것은 그 숱한 의미 가운데 일부이며 부정확할 수 있다는 게 함정이다.

이를테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박선경 교수는 ‘공정’에 대한 인식이 ‘정치 만족도’와 직결됐다고 짚는다. “국가승인통계인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청년(2030)과 (기성)세대(4050), 성별, 지역(수도권과 지방), 학력, 소득 등의 변수를 함께 놓고 인식 차이를 비교해봤는데 (어떤 변수에서도)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즉, 청년만 더 특별히 공정 인식이 높다는 건 근거가 없다. 오히려 시계열로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가 (공정 인식이) 가장 낮고, 코로나19 방역 성과가 조명된 뒤인 2020년 9월 조사 때는 높게 나타난다. 정치와 행정부에 대한 만족도가 높으면 ‘공정하다’는 인식도 함께 올라간다.”(박선경 교수)

2015년 8월6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구조개혁 담화문을 발표하며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기성세대가 나설 것을 주문했다. 계급 문제를 세대 문제로 풀이한 담화로 평가된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5년 8월6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구조개혁 담화문을 발표하며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기성세대가 나설 것을 주문했다. 계급 문제를 세대 문제로 풀이한 담화로 평가된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엄마·며느리는 없는 알파걸 세계관

당대표가 된 뒤, 다른 세대와 젠더에 속한 이들을 향한 이준석의 공격적인 발언은 한결 누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당대표가 됐으니 여성의 표도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걸 인지했기 때문”(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이다. ㄴ 탓에 ㄱ이 피해 입는 것, ㄷ을 이기고 ㄹ이 앞서가야 할 세상을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노력하면 ㄱ, ㄴ, ㄷ, ㄹ 누구나 승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준석은 동시에 ‘무능한 기득권’인 중년 세대도, 여성도 같은 기울기의 운동장에 서 있지 않다는 걸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지각한다. 정치인 자격시험 과목으로 내건 ‘자료해석·표현·컴퓨터활용·독해능력’은 “본인과 같은 엘리트 계급에게 유리한 과목”(김정희원 교수)이다. 그도 특정 세대에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다. “장년층의 당원이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한다면 선거 때 명함에 쓰여 있는 어떤 이력과 경력보다도 유권자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올 수 있는 평가의 기준이 될 것이다.”(당대표 당선 수락 연설문)

여성 정치인이 남성중심적인 정치판의 문법에서 배제되기 쉬운 환경임도 인지한다. “코로나 때문에 조직 동원이라든지 같이 술 먹고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사라지니까 여성분들이 전당대회에서 굉장히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역시 ‘운동장만 기울어지지 않으면’ 젠더 문제는 공정한 경쟁을 하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6월12일, MBC 라디오 <정치인싸>)

그런데도 이준석은 ‘능력주의’를 교묘하게 끌어들여 불평등을 가린다. 구조화된 차별 맥락을 삭제한 채 능력 있는 엘리트 여성을 호명하는 과거 ‘알파걸’ 담론을 연상시킨다. 그의 알파걸 세계관으론, 비정규직 여성의 비율이 언제나 남성을 상회하는 점이나 돌봄노동의 쏠림 현상으로 그 ‘엘리트 여성’조차 ‘엄마’ ‘며느리’로만 불리는 상황 등이 설명되지 못한다.

불평등이라는 완연한 세계의 바탕, 상대 시민을 향한 분노, 독창적으로 재창조된 공정의 의미, 약육강식 아래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이 모든 게 뭉쳐 혼란한 이준석 현상 앞에서 우리는 청년 ㄱ, 그리고 청년 ㄴ을 다시 생각한다. 개인으로 남겨져 대립하는 둘은 정말 적인 것일까? 함께할 만한 공통의 가치는 어떻게 지워졌는가?

지금부터 주인공은 이준석이 아니다. 세대와 계급을 간편하게 구분 짓고 질료 삼아온 정치적 담론 안팎의 시민, 청년이다.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1980년 대통령선거 유세에서 지지자와 악수하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저서에서 자유의 가치를 주장하며 ‘레이거니즘’을 언급한 바 있다. www.reaganlibrary.gov 갈무리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1980년 대통령선거 유세에서 지지자와 악수하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저서에서 자유의 가치를 주장하며 ‘레이거니즘’을 언급한 바 있다. www.reaganlibrary.gov 갈무리

2. ‘지움’의 맥락: 계급 연대의 위축

세대, 특히 청년을 두고 2000년대의 혼란은 이어졌다. 이들은 누구인가? 세계화로 인한 양극화, 정보화로 인한 소통의 변화 속에 교육·취업 등을 겪은 집단은 분명 있다. 불평등의 세대 같기도, 흙수저 같기도, 이대남 같기도 하다. 또한 무엇도 아닐 수 있다. 10년 뒤, 20년 뒤에도 이들은 같은 특성을 간직한 채 존재할까? (동년배 세대) 구성원 모두를 관통하는 뭔가가 있는가? 사회 전반의 경제·사회적 불평등 앞에 의미 있는 구분일까?

세대론의 어려움이다. 어렵지만 세대를 구분해 정리하는 일은 흥미롭다. 무엇으로도 부를 수 있고 무엇으로도 부를 수 없으나, 오직 흥미롭다는 특성은 정치에 활용되기에, 딱이다. “완전 거짓이라기보다 경험하거나 목격하는 사실의 파편들, 즉 부분적 진실을 과장한 담론”(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인 경우가 많다. 이준석도 청년세대를 구분하고 규정한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엉덩이 밑에 깔린 존재가 아닌 독립적인 어젠다… 공정사회”를 말하는 청년들. 실은, 청년을 둘러싼 오랜 말들의 바탕 위에 있다. 무엇보다 6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

2015년 대통령 담화와 세대 전쟁론

2015년 8월6일,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는 2010년대 세대론 흐름에서 의미 있는 사건으로 꼽힌다. “드디어 한국에 세대 전쟁론이 정책 담론으로 수입되었다”(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세대 게임>) 공공·노동·교육·금융 분야 구조개혁을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이렇게. “우리의 딸과 아들을 위해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다.” 누가? “기성세대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 그리하여 “능력과 성과에 따라 채용과 임금이 결정되는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바뀌어야” 했다.

물론 갑자기 툭 튀어나온 말은 아니다. 오랜 시간 들끓던 담론을 정책에 얹었을 뿐이다. 2003년 ‘고용 없는 성장’이 경제적 과실이 제한된 제로섬 상황을 알렸다(그해 성장률은 3.1%였으나 취업자 수는 한 해 전보다 3만 명 줄었다). 2007년 ‘88만원 세대’ 단어가 나왔고, 뒤이어 86세대의 기득권 담론·무능 담론이 50대(기성세대)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확산했다. 청년과 50대의 대립이 완연히 자리잡았다.(신진욱·조은혜, ‘세대균열의 현실, 세대담론의 재현’ 참조)

아무튼 그날, 대통령이 부른 청년은 그 안의 다양한 처지와 계층을 지운 채 특정한 모습으로 선택됐다. 기성세대의 피해자로 불려나왔다. 반박할 수 없었다. 분명 적잖은 청년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해 힘겹다. 어떤 기성세대는 기득권으로 쥔 부의 대물림에 온 관심을 쏟은 것이 사실이다. “계급 내 연대가 부재한 상황에서 기성세대의 이기심을 목도한 청년들에게 세대 프레임에 갇혀서 엉뚱한 방향으로 분노한다는 기성세대 학자와 전문가의 가르침은 말 그대로 ‘꼰대’스럽게 다가온다.”(이재경 한신대학교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세대갈등의 양상, 원인, 대안 모색’) 그렇다고 온전하지도 않았다. “(현재) 50대의 대표자로 표현되는 운동권 86세대는 그 나이대 극소수로 추정되고 최소 15년 이상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비정규직이 많은 연령이 50대였다. 실제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20대의 부모가 50대일 가능성이 높았다.”(신진욱 교수)

세대갈등은 문재인 정부와 조국 사태를 거치며 견고해졌다. 또한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했다.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정규직이 될) 비정규직, 명문대와 비명문대, 기존 산업 종사자와 4차 산업 종사자, 자영업자와 저임금노동자 등이 갈등했다.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가 개인화됐고 시민 사이의 갈등이 됐다. 문재인 정부는 정책적 역량 부족, 정치력 부족 등의 이유로 갈등 해결에 실패했다.”(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자본가나 권력자에서 기성세대의 책임으로

다시 2015년의 대국민 담화로 돌아가,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사실 따로 있다. 불평등 해결 자체를 난망하게 만든 ‘누락된 것들’이다. 오랫동안 계급 연대가 대항했던 바로 그것, 기업과 국가가 기성세대 뒤로 숨었다. “사회문제의 책임을 자본가나 권력자와 같은 전통적인 기득권자에게 묻지 않고, 새로운 기득권자(기성세대)에게 전가하는 것이다.”(전상진 교수, <세대 게임>) 불평등과 함께 온 경제성장의 가장 큰 수혜를 입었으므로 노동개혁의 중심이 돼야 했을 대기업은 담화에서 책임의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노동유연성이 개선된다면, 그만큼 정규직 채용에 앞장서주시라” 정도로, 부탁받는다. 불평등을 완화하는 복지국가의 역할은 ‘유연안정성’을 위해 실업급여를 확대하는 정도를 얘기했다.(확대는 더디고 사각지대는 여전히 넓다.) 비슷한 장면은 정부가 바뀌고도 반복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은 끝내 민간기업으로 흐르지 못했다. 공공기관에서 벌어지는 노-노 갈등은 그들만의 문제가 됐고 노동자 서로를 향한 혐오를 키웠다.

이제, 계급의 고통은 이익을 셈하고 손해를 막아내야 하는 시민 사이의 투쟁으로 자리잡았다. “계급 격차는 점점 심각해지는데 계급 연대는 더 힘들고 어려워진 상황이다. 계급이라는 전선을 새로운 정치적 언어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신광영 교수) 싸우는 개인만 남겨졌다.

그렇게 이윽고, 우리는 2015년의 담화와 비슷한, 한층 더 적나라한 말들을 젊은 정치인 이준석에게서 듣는다. 새 시대의 정신이라는 확신과 함께. 낱낱이 흩어졌으나 실력은 없는 개인은 부정된다. “저는 시대정신이 실력, 실력주의라고 생각한다.” 약자 역시 기득권자가 된다. “평등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니, 약자에게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어 정치적으로 경제적인 보증을 해주려는 것이다.” 젊은 정치인은 그렇게, 만인에 대한 투쟁에 놓인 개인을 딛고, 더한 투쟁을 예고했다. 그 세계의 모습은 국가정책 전반과 연결된 조세·재정(복지)에 대한 이준석의 태도에서 한층 적나라하다.

3. 진짜 ‘전선’: 복지 연대의 위축

이준석의 조세와 재정 정책, 그를 둘러싼 말의 홍수 속에서도 의외로 널리 이야기되지 않는다. 어쩌면 익숙해서. “이건 한국형 신자유주의라고 해야 할지….”(신광영 교수) 또한 생경해서.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 2000년대 이후 모든 정부는 (표면적으로나마) 복지 확대를 주장해왔다. 그 흐름을 20여 년 만에 뒤집는 데 주저함이 없어 낯설다.

이준석의 자신감 넘치는 지향은 전형적인 작은 정부다. 감세를 말한다. “감세를 통해 경제의 효율성을 고민해봐야 한다.” “혁신도시보다는 지방 세율에 자율성을 주어, 각 지자체가 경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도록 해야 할 것 같다.” 감세야 경제 상황과 정책적 필요라는 명분으로 많은 정부에서 겪어본 바 있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한 재정지출 증가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세금 회피 방지를 위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선진국이 증세를 논의하는 시점이라 의아할 따름이다. 더 놀라운 건 복지와 사회안전망 축소의 강도다. “청년수당이나 노령연금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대 의견이다.” 미국의 사례를 들며, 급기야.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안전망도 선택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사실 지금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개인이 부담하는 아주 비싼 사회보험이다.”

‘레이거노믹스’가 부러워

아직은 야당 대표일 뿐이므로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복지 축소를 주장하는 근거로 이준석이 소환하는 단어, ‘위화감’에 이르면 고민에 빠진다. (그가 규정한) 청년의 정서를 다시 소환한다. “청년수당이 체계적으로 주어진다면 분명히 위화감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풀이하자면 ‘그들은 복지 혜택을 받는데 나는 왜 못 받느냐는 마음’ ‘나는 세금 부담을 지는데 그들은 왜 무임승차하느냐는 마음’에 호소한다. 그리하여 “특정 계층에만 혜택을 주지 않는” 기본소득에는 다소 우호적이다. 다만 “현재 시행하는 복지 혜택을 기본소득 안에 다 녹여서 포함”하는 전제를 둔다.(복지수당을 기본소득으로 전환하려면 최소한 기존 수당 이상을 줘야 반발에 부딪히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규모 증세를 피할 수 없다.)

이준석의 위화감은 (무려) 1976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로널드 레이건의 ‘복지여왕’ 연설을 떠올리게 한다. 레이건은 네 명의 죽은 남편 덕에 사회보장 혜택으로 부유하게 사는 빈곤층 흑인 여성을 사례로 들며 복지 축소를 주장했다.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역시, 이준석은 미국이 적자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노력보다 자율성을 더 강화하는 쪽으로 갔다. (1980년대 초) 레이거노믹스가 그런 정책”이라고 부러워한다.

증세와 복지 확대의 전선을 위화감을 무기로 오른쪽으로 끌어당겼다. 아직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한 바도 없지만, 그 바탕에 놓인 이준석의 생각과 시민의 반응은 우려된다. 조세와 재정은 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의식과 뗄 수 없어서다. 누구에게나 세금은 부담스럽고 그만큼 시민의 마음도 쉽게 흔들린다. 이를 뛰어넘는 복지국가의 논리는 공동체에 대한 기여와 자부심에서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잊은 듯하다. “증세와 복지는 사회 연대와 공존을 실현하려는 분위기에서라야 확대된다. 이준석뿐만 아니라 여당도 조세를 내고 복지를 사는 시장 거래처럼 조세·재정 정책에 접근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복지 수혜자들의 ‘낙인감’을 우려했는데 ‘위화감’으로 논의가 흐르고 있다니, 우려스럽다.”(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복지, ‘낙인감’ 대신 ‘위화감’으로 흐르다

다시 돌아와, 청년 ㄱ과 ㄴ, 어쩌면 그들의 부모일지도 모를 중년 ㄷ, 어쩌면 이들의 미래일지 모를 노년 ㄹ까지 생각한다. 불평등 구조의 아래쪽에 속한 것만은 모두 똑같으므로, 어쩌면 손잡을 수 있었다. 함께 항의할 수 있었다. 이 구조는 무언가 잘못됐다고, 왜 자본은 한편에 고여 있으며 복지국가는 더디기만 하냐고. 그럴 가능성은 멀어졌다. 분노와 희망을 질료 삼은 이준석의 말 앞에.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은 정글이다. 정글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다. 약육강식이다. 강자가 다 먹는 세상이다.” 그리고, 다른 시대정신을 말하는 정치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방준호 whorun@hani.co.kr·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출처를 밝히지 않은 이준석 대표의 말은 모두 그가 쓴 책 <공정한 경쟁>에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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