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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돌아선 민심, 1년 만에 돌아설까 [4·7재보궐]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참패… 높은 투표율로도 확인된 ‘정권 심판’
등록 2021-04-10 01:29 수정 2021-04-10 03:58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4월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4월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꼭 1년 만에 여당을 향한 민심이 사나워졌다. 2020년 4·15 총선에서 여당에 180석을 줬던 민심이,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에 참패를 안겼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57.5%(279만8788표)를 득표하며 39.2%(190만7336표)를 획득한 박영선 민주당 후보에게 18.3%포인트 차이로 큰 승리를 거뒀다.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 49명 중 41명, 구청장 25명 중 24명, 서울시의원 109명 중 101명을 보유한 민주당의 탄탄한 조직력도 맥을 못 췄다. 민주당이 주장했던 ‘샤이 진보’도, 지지층 결집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대한 맵찬 ‘정권 심판’의 바람이 여당의 유리한 조건들을 압도한 선거였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2021년 4월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상상마당 앞에서 열린 집중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2021년 4월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상상마당 앞에서 열린 집중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남자’의 압도적 지지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특징은 ‘2030세대(18·19살 포함) 이탈’이다. 2030세대는 2016~2017년 전직 대통령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촛불을 들었고, 이후 문재인 정부의 집권과 집권 이후 전국선거에서 민주당 3연승(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 든든한 지지층이었다. 이러한 2030세대가 이번 선거에서 오세훈 지지로 돌아서면서 민주당 핵심 지지층인 40대만 고립된 모양새가 됐다.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가 실시한 투표소 출구조사(방송 3사가 참여한 공동예측조사위원회(KEP)가 보궐선거 당일인 4월7일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서울 50개, 부산 30개 투표소에서 투표자 1만5700여 명을 조사함. 신뢰수준 95%에 조사오차 서울 ±1.7%포인트, 부산 ±2.3%포인트) 결과를 보면,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유일하게 40대에서만 49.3%를 얻어 48.3%를 획득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예측됐다. 4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오 후보가 박 후보를 앞섰다.(18~29살 박영선 후보 34.1%/오세훈 후보 55.3%, 30~39살 박 38.7%/오 56.5%, 40~49살 박 49.3%/오 48.3%, 50~59살 박 42.4%/오 55.8%, 60살 이상 박 27.2%/오 71.9%) 이러한 연령별 투표는 ‘18~59살 대 60살 이상’으로 뚜렷한 세대별 대립각을 보였던 2020년 총선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18~29살 민주당 56.4%/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32%, 30~39살 민 61.1%/통 29.7%, 40~49살 민 64.5%/통 26.9%, 50~59살 민 49.1%/통 41.9%, 60살 이상 민 32.7%/통 59.6%)

특히 ‘이남자’로 불리는 20대 남성(공정·젠더 이슈 등에 민감)은 72.5%가 오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박 후보는 22.2%). 이 수치는 60살 이상 여성의 오 후보에 대한 지지(73.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데, 60살 이상 남성(70.2%)보다도 높았다. 2030세대의 오 후보에 대한 지지는 여론조사에서도 줄곧 나타났다. 2030세대의 지지를 두고 오 후보는 청년들이 참석한 유세 현장에서 “정말 꿈꾸는 것 같다. 너무너무 가슴이 벅차다”라며 감격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2030세대가 문재인 정부에서 ‘친여 성향’으로 여겨졌는데, 이번 선거에서 이들은 ‘스윙보터’(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이들)로서 상황과 이슈에 따라 투표한다는 게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2021년 4월6일 저녁 서울 신촌,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유세장에 모인 시민들. 김진수 기자

2021년 4월6일 저녁 서울 신촌,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유세장에 모인 시민들. 김진수 기자

잠복돼오던 ‘공정과 정의’ 이슈 재점화

2030세대 민심 이반은 ‘조국 사태’ 이후 잠복돼오다, 2021년 3월 초에 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투기 의혹 등으로 재점화된 ‘공정과 정의’ 이슈, 이어 불거진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의 전셋값 인상으로 인한 ‘내로남불’ 비판 등과 관련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성난 민심에 직면해 선거운동 기간 중 “‘내로남불’ 자세를 혁파하겠다”(4월1일)며 고개를 숙인 김태년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선거 다음날인 4월8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이 됐다고 할 정도로 당 내부의 공정과 정의의 기준을 높이겠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20대 여성의 경우 15.1%가 거대 양당의 후보인 박영선(44%)·오세훈(40.9%) 후보 외에 다른 정당의 후보들에게 투표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이번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것에 반발해 성평등, 소수자 차별 금지 등을 공약한 군소정당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율은 58.2%로 역대 광역단체장 재보궐선거 가운데 가장 높았다(이전 최고 투표율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48.6%). 이번 보궐선거는 2022년 대선을 11개월 앞둔 ‘대선 전초전’ 성격도 있는데, 정부·여당의 잇따른 부동산 정책 실패와 LH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 등에 성난 민심이 ‘정권 심판’ 의지를 투표 열기로 분출했다. 자치구별로 보면, 서초구가 64%로 가장 투표율이 높았고, 강남구 61.1%, 송파구 61%로 종합부동산세·재건축 등 부동산 정책과 밀접한 강남 3구가 나란히 투표율 1~3위를 기록했다. 이어 양천구(60.5%), 노원구(60%), 종로구(59.6%), 동작구(59.3%) 순이었다.

정권 심판 의지는 득표율로도 명확히 확인된다. 서울 자치구 25곳 모두에서 오 후보가 박 후보에게 승리했다. 두 후보의 득표율 차이가 가장 큰 곳은 강남구(박 24.3%/오 73.5%)로 49.2%포인트였다. 이어 서초구(박 26.7%/오 71%) 44.3%포인트, 송파구(박 33.3%/오 63.9%) 30.6%포인트로 역시 강남 3구에서 두 후보의 격차가 가장 컸다. 득표율 격차가 가장 작은 곳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강북구(박 45.2%/오 51.2%)로 6%포인트였고, 이어 은평구(박 44.9%/오 51.2%) 6.3%포인트, 관악구(박 44.4%/오 51%) 6.6%포인트로 나타났다. 득표율 격차의 최소치가 6%포인트인데 이를 표수로 환산하면 8876표로 작지 않은 차이다. 게다가 서울 425개 행정동에서 박영선 후보는 단 5곳에서 승리했다. 이마저도 근소한 표차였다. 종로구 창신2동 41표차, 구로구 항동 96표차, 마포구 성산1동 179표차, 강서구 화곡8동 309표차, 박 후보의 옛 국회의원 지역구인 구로구 구로3동에선 가장 큰 863표차였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그동안 문재인 정부에서 누적된 불만과 비판 등이 분출된 정권 4년에 대한 종합평가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샤이 진보’는 없었다

반면 민주당이 선거 내내 강조했던 ‘샤이 진보’(여론조사에서 박영선 후보에 대한 지지 응답은 하지 않지만 투표장에는 나가 박 후보에게 투표하는 유권자)는 없었다. 박영선 캠프는 오세훈 후보가 ‘내곡동 땅 셀프보상’ 의혹과 관련해 거짓말한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생태탕 논란’을 벌였지만, 민주당이 바랐던 막판 지지층 결집을 통한 역전극은 펼쳐지지 않았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다. 이 ‘깜깜이 기간’에 들어가기 전인 3월 말까지 발표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가 오 후보에게 15~20%포인트 가까이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은 ‘샤이 진보’와 지지층 결집을 주장하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형준 교수는 “이번 선거 결과에서 나타났듯이 ‘샤이 진보’는 없었다. 득표율을 올리기 위한 민주당의 선거 전략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선 민주당의 ‘무능’보다 ‘태도’ 문제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조국 사태나 부동산 문제 등 일련의 정책과 이슈에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만 하거나 ‘내로남불’로 일관하는 데 여론이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번 선거에서 새삼스럽게 불거진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1년 뒤 낸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패인 분석과 관련해 이렇게 썼다. “민주화를 위한 우리의 헌신과 우리가 가진 좋은 가치들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거리를 두는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당시 이낙연 의원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낙연 의원은 지난 대선의 패인을 이렇게 분석한 바 있다. ‘민주주의, 인권, 복지 같은 진보적 가치를 충분히 중시하지만, 거친 태도, 과격하고 극단적인 접근을 싫어하는 성향을 ‘태도 보수’라고 말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태도 보수의 유탄을 맞지는 않았을까.’ 우리의 주장 자체가 아니라 그걸 표현하는 ‘태도’ 때문에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그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로부터 4~8년이 흘러 이런 분석을 했던 당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됐고, 또 이낙연 의원이 당대표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싸가지 없는 진보’ ‘태도 보수’의 문제는 여전히 민주당에서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또 하나의 주요 특징은 거센 ‘정권 심판’ 바람에 밀려 인물이나 정책이 전혀 부각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은 이 바람을 타고 중도층 공략에 성공했다. 1년 전인 21대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중도층의 52%가 정부 지원론을 지지하고 정부 견제론은 39%에 그쳤다. 그러나 중도층 여론은 불과 1년 만에 역전됐다. 4·7 보궐선거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직전에 실시된 중앙일보-입소스 여론조사(2021년 3월30~31일)에서는 중도층 중 정부 지원론은 28.9%에 불과했지만 정권심판론은 55.5%로 치솟았다. 기울어진 여론 지형 속에 민주당은 박영선 후보의 인물·정책 경쟁력을 살리지 못한 채, 네거티브에 방점을 찍어 ‘네거티브와 생태탕에 빠진 선거’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민주당 내에서조차 “선거 막판 여당이 이번 선거를 ‘생태탕 선거’로 희화화한 것이 패착”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뭉뚱그리지 말고 좀더 구체적인 반성을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3연패를 한 전국선거(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때 국민의힘이 함께하며 중도층의 외면을 자초한 이른바 ‘태극기 세력’과 거리를 둔 전략이 주효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전직 대통령 이명박·박근혜씨에 대한 사과, 5·18 무릎 사과 등을 통해 중도층 지지를 도모했다. 오세훈 후보도 당내 경선에서 강경파 이미지가 강한 나경원 후보에 맞서 “중도 확장성을 기대하려면 나 같은 ‘볶음밥’(보수와 함께 중도층까지 흡수할 수 있는 후보라는 뜻)을 선택해야 한다”고 했고, 중도 이미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에 성공해 선거에서 중도층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선거 참패 뒤 정부·여당은 격랑에 빠졌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4월8일 “4·7 재보선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이라며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인다. 코로나 극복, 경제 회복과 민생 안정, 부동산 부패 청산 등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실현하는 데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은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겸허히 수용한다. 저희의 부족함으로 국민께 큰 실망을 드렸다. 철저히 성찰하고 혁신하겠다”는 ‘대국민 성명’을 냈다. 이어 민주당 지도부는 총사퇴하고 5월2일 전당대회 때까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는 반성이 좀더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쓴소리도 나왔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번 패배가 우리에게는 아픈 패배이지만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다만 지도부가 이번 패배와 관련해 뭉뚱그리지 않고, 좀더 구체적으로 패배의 원인과 잘못한 점에 대해 사과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2022년 3월 대선을 11개월 앞두고 위기에 빠진 민주당은 당 지도부 교체 외에 정책과 개혁 기조를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반면 아직 안정적인 지지율을 얻는 대선 후보를 보유하지 못한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국민의당과의 합당,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과 관련해 향후 야권 재편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됐다. 윤 전 총장은 4월14일 대담집 <윤석열의 진심>을 출간하는 등 대선을 향한 정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1358호 표지이야기 - 4·7 재보궐선거 분석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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