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을 속보로 접하고 매우 놀랐다. 그 피해자가 장혜영 의원임을 알았을 때는 절망했다. 김종철 대표는 미래세대와의 가교 역할을 자임했다. 그게 이런 식의 가해로 이어졌다니, 믿기지 않는다. 장혜영 의원의 심경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다른 ‘미래세대’가 받은 충격도 컸을 것이다. 류호정 의원은 2020년 11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힘들 때 떠오르는 사람을 묻는 말에 “김종철 대표”라고 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는 권력조차 성폭력 피해를 막는 방패가 되지 못했다. 성별 기득권에 속한 사람 중 하나로서 너무나 부끄럽다.
당분간 진보정치의 국민적 신뢰 회복은 어려울 것이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과거 심상정 의원은 “더 이상 소금 정당에 머무를 수 없다”고 했지만, 지금은 소금 구실을 해야 할 때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용서와 화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잘못을 반드시 하게 돼 있기 때문에, 그걸 바로잡고 피해를 치유하는 방식에도 전범이 있어야 한다. 기성 정치권은 그걸 만드는 것에 실패했다. 정의당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정치권에서 성폭력 사건이 또 벌어졌을 때 ‘정의당 사례’가 기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장혜영 의원과 정의당이 형사적 대응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일부 시민단체가 김종철 전 대표를 고발해 수사 가능성이 열렸다. 가해자가 범행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조직이 사건 은폐를 시도하는 것도 아니다. 비공개 조사를 진행한 배복주 부대표는 “이 사건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성추행 사건”이라고 했다. 무엇을 위한 고발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시에, 정의당은 공당이다. 지지자나 시민의 형사 책임 요구가 있다면 그 형사적 절차를 외면만 할 수도 없다.
친고죄가 어쨌다는 논란은 본질이 아니다. 과거 사건을 돌이켜보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구체적 피해 사실이 드러나면서 2차 가해가 끝없이 이어지는 사례가 대다수였다. 정치권과 언론은 정파적 유불리에 따라 피해 사실을 자기들 좋을 대로 활용했고, 2차 가해 우려나 피해자 중심주의는 자기 정파에 유리할 때만 중요한 가치로 취급됐다. 친고죄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수사와 재판, 언론 취재와 보도에서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나 장치의 강화를 논의해야 한다.
더불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후궁’에 비유했다가 사과했다. 보수 정치권에서 차별적 언어가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말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것이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왔는지를 돌이켜보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남인순 의원이 뒤늦은 사과를 했다지만 지지자들의 태도는 달라진 게 없다. 박원순 전 시장 성희롱 사실을 확인한 직권조사 결과를 내놓은 국가인권위원회를 공격하고 피해자를 고발하겠다고도 한다. 인터넷 어느 공간에 모여 피해자 신상을 공유한 일도 있다. 이 모든 일을 여당은 지금도 바라보고만 있다.
누가 누구보다 낫다는 식의 비교를 할 마음은 없다. 정의당이 이번 일에 제대로 대응해야, 비교당하는 게 싫어서라도 기성 정치의 태도가 바뀔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역사적 과제를 기꺼이 짊어질 때다. 이후 정의당의 대응을 주목한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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