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권 주자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1위를 했다고 한다. 국민의힘은 씁쓸한 표정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문재인 정권을 불만스러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과 국민의힘이 이들에게 대안세력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걸 동시에 가리킨다. 윤석열 총장이 야권 지지율을 잠식해 다른 대권 주자가 돋보이지 못하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심정은 좀더 복잡하다. 때리면 때릴수록 윤 총장의 정치적 덩치가 커진다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을 자초한 건 왜인가?
일각에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정치적 계산을 거론한다. 윤 총장과 갈등을 키우는 거로 여당 주류의 지지를 확보해 앞으로 진로 설정에 활용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주도하는 건 추 장관이라기보다 여당이란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특수활동비 소동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1월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특활비 문제를 먼저 거론한 건 여당 의원들이다. 추 장관이 한 일은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용감하게 후속 조처를 한 것뿐이다. 여야는 특활비 내역을 검증한다는 둥 부산을 떨었지만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특활비 특성상 예상된 일이다.
꼬리표 없는 돈은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최소한 사후 검증과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분명한 건 사태를 촉발한, 윤 총장이 특활비를 자의적으로 지급하고 있다는 여당 의원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었다는 거다. 여당 법사위원인 송기헌 의원은 MBC 라디오 방송에서 “말이 한입 두입 건너가면서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했다.
무슨 망신인가 싶지만 여당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특활비는 조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당의 서사가 그렇다. 이들에 의하면 윤 총장은 ‘검찰의힘’ 대표이며 지검 순회는 유세이고 특활비는 대선자금이다. 비유로 보더라도 과한 얘기를 당대표부터 초선의원에 이르기까지 망설임 없이 하는 건 “검찰 수사는 정치적으로 오염됐다”는 결론을 말하기 위해서다.
검찰은 감사원이 넘긴 ‘수사 참고 자료’를 토대로 원전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통령의 질문 한마디가 공무원들의 무리수로 이어졌다는 게 의혹의 큰 줄기이므로 청와대가 수사 대상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여당 처지에선 악몽일 것이다. 이런 사정을 보면 무리수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책이 정당하더라도 집행 과정의 위법 여부는 따져야 하고, 책임질 사람은 져야 한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여당이 할 일은 다소 위법이 있었더라도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은 우리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걸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거다. 그게 통치세력으로서 책임이다.
별로 잘한 일도 없는 윤 총장이 1등을 기록한 건 거대 양당이 각자가 주도한 정권에서 통치 책임은 외면한 채 자기들 좋은 일만 했다는 국민적 인식 덕분이다. 적어도 윤석열 검찰은 이쪽저쪽 공평한 수사를 하지 않았느냐는 거다. 그러나 오직 죄지은 사람과 그걸 잡는 사람만 존재하는 세계관의 인물이 통치를 넘보는 건 한국 정치의 불행이다. 다른 게 아니라 이런 불행을 막는 게 ‘책임정치’다. 핑계가 아닌, 진정한 책임정치를 보고 싶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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