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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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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탈퇴 안하면 인센티브 없다” 국정원의 공작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최소 21곳, 청와대도 관심 가진 민주노총 탈퇴 총력전
등록 2020-05-16 14:02 수정 2020-05-19 17:56
5월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 사무실에서 2011년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의 민주노총 탈퇴 반대 운동을 벌였던 최병윤(왼쪽), 오선근씨가 국가정보원 문건을 보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민주노총 서울교통공사노조 조합원이다. 박승화 기자

5월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 사무실에서 2011년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의 민주노총 탈퇴 반대 운동을 벌였던 최병윤(왼쪽), 오선근씨가 국가정보원 문건을 보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민주노총 서울교통공사노조 조합원이다. 박승화 기자

“그런 것도 좀 확실히 해가지고 전교조 자체가 불법적인 노조로 해서 우리가 정리를 좀 해야 될 것 같고, 그리고 민노총도 우리가 재작년부터 해서 많은 노동조합이 탈퇴도 하고 그랬는데 좀더 강하게 하고.”

2011년 2월18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전 부서장 회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2015년 <한겨레> 보도로 그의 발언이 처음 알려졌지만, 국정원이 노조들이 민주노총을 탈퇴하도록 어떤 일을 펼쳐왔는지 지금껏 밝혀지지 않았다. 의혹으로만 존재했을 뿐이다. <한겨레21>이 입수한 국정원의 ‘노조 파괴 공작 의혹’ 내부 감찰자료인 ‘수사참고자료’와 원 전 원장 등의 국고손실 혐의 1심 재판기록 1만 쪽을 통해 회사 쪽의 회유와 일부 노조 활동가의 ‘변절’로 인식돼왔던 민주노총 탈퇴 배경에는 국정원의 검은손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에 국정원이 개입한 곳은 최소 21곳에 이른다.(표 참조) ‘최소 21곳’인 이유는 국정원이 자체 조사한 범위가 원 전 원장이 ‘재작년’이라고 언급한 2009년부터 2011년까지로 한정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2017년 감찰을 벌인 국정원은 민주노총 탈퇴에 개입한 유형을 크게 ①유관기관 협조와 노사관계자 직접 설득 ②노조위원장 선거 때 온건 후보 당선 지원 ③보수단체 활용 ④국민노총(제3노총) 설립 지원 등으로 분류했다.

2010년 4월 한국관광공사 산하 공기업으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운영하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노동조합은 민주노총 탈퇴 찬반 투표를 진행한다. 전진수 현 노조위원장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민주노총에서 탈퇴하면 성과급도 올려주고 인원도 충원해준다고 했다. 찬반 투표 때 분란 만들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2006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로 노조가 설립될 때 사무국장을 맡았던 전 위원장은 2010년 민주노총 탈퇴 투표가 있을 때는 3년 임기를 마치고 현장에서 근무 중이었다.

실제 국정원 수사참고자료에는 GKL 노조와 관련해 인센티브(성과급) 언급이 나온다. “(국정원) 구 국익정보국은 노사 측을 접촉해 민주노총 탈퇴를 설득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에 ‘민주노총 미탈퇴시 인센티브 철회’ 등을 압박하도록 협조, 민주노총 탈퇴를 유도했습니다.” 그다음에 “문화부는 2010년(2011년의 오기로 추정) 1월부터 지급한 장려금(1인당 30만원)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2012년 3월 노조위원장 선거 때 이러한 압박이 실존했다고 전 위원장은 전했다. “위원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회사 쪽에서 (민주노총 소속 집행부였던) 제가 당선되면 민주노총에 재가입할 것이고, 저를 정부에서 싫어해 직원 복지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얘기했어요. 국정원도 개입됐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어렵게 당선된 뒤 국정원 정보관을 만나 물어보기까지 했어요. ‘왜 나를 막았냐’고. 그랬더니 ‘내가 막은 것이 아니라 회사 쪽에서 그런 보고를 받았던 것뿐’이라고 하더군요.”

2009년 3월 탈퇴한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산업노조 산하 영진약품지회의 경우, “국정원 국익정보국이 노사 대표를 접촉해 영진약품에 부과된 탈세 추징금 85억원 납부시한을 연기하는 것을 조건으로 민주노총 탈퇴를 설득”한 것으로 국정원 문건에 나와 있다. 국정원이 당시 국세청 차장을 접촉해 납부시한을 연장했다고도 돼 있다. 이 탈퇴 과정에는 민주노총 화섬노조 수석부위원장이 소속된 민주노동개혁연대(‘뉴라이트 신노동연합’이 이름을 바꾼 단체)가 개입했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국정원(국익정보국)이 민주노동개혁연대에 활동비 명목의 예산을 지급하고 영진약품의 민주노총 탈퇴를 위해 전·현직 노조위원장을 접촉했다는 것이다. 또 민주노동개혁연대가 발간한 민주노총 비판 책자를 국정원 예산으로 사거나, 현대자동차·KT·LG 등 대기업에 국정원이 구매를 요청했다고 한다. 국정원이 심리전단을 활용해 전교조에 반대한 보수단체를 지원한 방식과 유사하다.

국가정보원이 검찰에 보낸 '수사참고자료' 일부. 

국가정보원이 검찰에 보낸 '수사참고자료' 일부. 

전교조 관련 보수단체 지원과 유사

국정원이 민주노총 탈퇴에 개입했다고 밝힌 인천지하철노조와 서울지하철노조는 의결 정족수 논란에 휩싸였다. 상급단체를 탈퇴하려면 노조 총회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규약에 상급단체 이름이 적혀 있는 경우, 상급단체 탈퇴를 위한 총회가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 규약개정 의결로 봐야 하는지, 2분의 1 찬성이 필요한 상급단체 탈퇴 의결로 봐야 하는지 논란이 생겼다. 인천지하철노조는 2009년 3월 민주노총 탈퇴를 총회 안건으로 부쳤다가 67%에 못 미치는 64% 찬성으로 부결된다. 노조는 고용부에 상급단체 탈퇴 요건을 질의한다. 국정원은 내부 문건에서 “국익정보국이 고용부가 탈퇴 요건을 2분의 1로 완화하는 행정해석을 내리도록 조정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고용부는 2009년 4월 인천지하철노조, 2009년 12월 서울지하철노조의 질의에 50%만 찬성해도 탈퇴가 가능하도록 행정해석을 내렸다. 인천지하철노조는 2009년 4월 행정해석과 무관하게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탈퇴했지만, 서울지하철노조는 고용부 행정해석을 바탕으로 2009년 12월 한 차례 부결(45.4%)된 뒤 2011년 4월 53% 찬성으로 민주노총을 탈퇴한다.

서울지하철노조의 질의 당시 상황을 고용부 출입 국정원 정보관이었던 ㅂ씨가 검찰과 법정에서 진술했다.

검사 8국(국익정보국)에서 원세훈 원장의 지시 방침에 따라 서울지하철노조가 민주노총 탈퇴를 할 수 있도록 고용부에 요청한 것은 아닌가.

정보관 직접적으로 요청하지는 않고 (이때 잠시 생각하다가) 기존의 고용부 정책 기조에 따라 처리해달라는 취지로 전달했다. 다만 고용노동부가 전적으로 우리 뜻을 따라 행하는 부처는 아니다. 고용부에 (국정)원에 대한 입장을 얘기한 정도로 보면 된다.

검사 추가적으로 더 하고 싶은 말 있나.

정보관 (유권해석 부분과 관련해) 당시 이채필 국장을 만나서 ‘(국정)원의 입장이 이러이러하니 거기에 맞게 결정을 내려달라’는 취지로 전달한 사실은 없다. (다만) ○○○ 노사관계법제과장에게 전화해서 서울지하철노조 탈퇴 여부에 관한 동향을 확인한 적은 있다. (국정)원의 입장에 맞게 행정해석을 해주도록 고용부에 요청하지는 않았다.(2018년 5월15일 검찰 진술조서)

검사 유권해석에 대한 국정원의 입장을 고용부 노사협력정책국에 전달한 사실이 있나.

정보관 입장을 전달했다기보다 현재 진행 정도가 어떤지 상황 파악 차원에서 확인했던 적은 있다.

검사 국정원의 의사는 이렇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나.

정보관 기억나지 않는다. (2019년 8월21일 1심 재판 증인신문)

두 건의 행정해석을 담당했던 고용부 관계자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법리적으로 판단했을 뿐, 국정원이나 고용부·청와대 상관으로부터 탈퇴가 쉽도록 행정해석을 바꾸라는 지시를 받은 적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행정해석이 위법이라는 판결은 민주노총 탈퇴에 반대한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이 노조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확정됐다.

자료: 2018년 국가정보원이 검찰에 보낸 ‘수사참고자료’

자료: 2018년 국가정보원이 검찰에 보낸 ‘수사참고자료’


청와대도 민주노총 탈퇴 총력지원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국정원뿐만 아니라 청와대의 관심사항이기도 했다. 정연수 당시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이 이명박 정부가 원했던 ‘제3노총’ 출범에 주도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민주노총 탈퇴 투표를 앞두고 ‘서울메트로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투표 총력 지원’ 문건(2011년 4월14일)을 보고한다. 이를 보면, “검경은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민주노총) 요주의 인물들의 동선을 면밀 관리하여 사업장 무단출입 등 물의 소지를 원천봉쇄, 조합원들과 철저히 분리”하라고 돼 있다. 또 “서울시는 민주노총 탈퇴 성사시 연말 성과급 배려 시사 등 적극적인 지원 시그널을 보냄으로써 온건 노조의 입지 확대를 최대한 뒷받침”하겠다고 적혀 있다. 모든 기관을 동원해 민주노총 탈퇴에 집중하겠다는 얘기다. 투표 당일 이명박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진영곤 고용복지수석으로부터 찬반 투표 관련 보고를 받은 뒤, 다른 노조의 탈퇴 여부를 묻기도 했다. 진 수석은 “서울지하철노조가 탈퇴하면 새로운 노동운동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 언론계 등을 통해 홍보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들이 낸 소송 1심에서 ‘탈퇴 무효’로 판결 나자, 민정수석실은 2011년 11월30일 ‘서울메트로 노조 내 강성파들의 민주노총 재가입 기도 차단’이라는 문건을 작성한다. “민주노총 탈퇴 이후 긍정 변화 홍보로 현장 내 반민주노총 기류를 확산”하고 “2심 판결에 대비해 중량감 있는 변호인단 구성 및 법적 대응논리 보강 등으로 철저 대비토록 주문”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중량감 있는 변호인단을 구성해야 할 이는 서울지하철노조였다. 국정원은 다음달인 12월 정 전 위원장에게 “국민노총 출범 격려” 취지로 2천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정 전 위원장은 받은 돈이 300만~400만원이라고 주장하지만 법원은 2천만원이 맞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이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에 2010년 2~12월 건넨 문건 176건에서도 어김없이 이명박 정부의 뿌리 깊은 민주노총 혐오가 묻어난다. ‘공공부문 노조 간부 신속 사법처리로 투쟁 무력화’ ‘민주노총의 전국항만예인선노조 결성 기도 원천봉쇄’ ‘발레오노조 투쟁 제어로 외국인 투자환경 악화 방지’ ‘중공업계 노조의 탈민주노총 계기 투쟁 전열 와해 가속화’ ‘민주노총의 삼성 등 대기업 하청업체 대상 세 규합 무력화’ ‘현대차 사내하청노조의 정규직 요구 투쟁 무력화’ 등이 대표적이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재판기록에는 문건 제목만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국정원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삼권을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작성한 ‘서울메트로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투표 총력 지원’ 문건(2011년 4월14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작성한 ‘서울메트로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투표 총력 지원’ 문건(2011년 4월14일)

노조 파괴 컨설팅 기업에도 국정원 관여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밝힌 민주노총 탈퇴 노조 가운데 발레오전장코리아·상신브레이크·대림자동차공업을 주목할 만하다(27~30쪽 기사 참조). ‘노조 파괴 컨설팅’으로 유명했던 창조컨설팅이 회사 쪽을 자문한 사업장으로, 발레오와 상신은 2019년과 2016년 각각 부당노동행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국정원 문건에는 2011년 노조 파괴가 이뤄졌던 유성기업의 파업과 관련해 정아무개 국정원 대전지부 정보처장이 고등학교 동문인 심종두 창조컨설팅 대표에게 연락해 관련 자료를 받았으며, 정 처장 외에도 2011년 국정원 직원이 자료를 전달받았다고 돼 있다. 다만 창조컨설팅 활용 결과를 국정원 내부에 보고하거나, 심 대표에게 국정원 예산을 직접 지원한 현황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덧붙여 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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