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2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 서울 시민추모대회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책임자 처벌 0건. 179분이 희생된 이 참사에서 국가는 단 한 명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2025년 12월20일 김유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 마련된 추모대회 무대에 올라 소리쳤다. 그는 참사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을 잃었다.
2024년 말 한국 사회를 경악하게 한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됐지만,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을 위한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참사 직후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 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꾸려졌지만, 조사를 멈춘 상태다. 유가족이 조류충돌 예방 및 관리,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공사 등과 관련해 책임이 있는 국토부가 기관 산하에 사조위를 두고 조사하는 것을 ‘셀프 조사’로 보고 진행을 멈추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애초 사조위는 조류, 운항, 기체, 방위각 시설 등 분야별로 사실조사 보고서를 작성해 2025년 12월 말까지 중간보고서를 작성하고 2026년 6월까지 최종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조사는 12단계 중 6단계와 7단계, 즉 ‘분야별 검사·분석·시험을 통한 사실조사 보고서 작성 단계’에서 중단됐다.
사조위가 공개한 공식 항공사고조사보고서는 지금까지 하나다. 2025년 1월27일 공개한 예비보고서를 보면, 사고 개요에 대해 ‘항공기는 활주로 19로 착륙기어 장치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로 동체 착륙 활주 중 활주로를 초과하여 방위각 시설물과 충돌하여 화재가 발생했다’ 같은 내용을 기술했다.
이 밖에 국토교통부가 7월19일 언론에 ‘엔진 정밀 조사 결과 브리핑’을 예고했다가 취소했을 때 공개된 문서가 있다. 엔진 정밀 조사 결과 △엔진 자체 결함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조류와 충돌한 뒤) 양쪽 엔진은 진동을 동반하면서 작동, 특히 우측 엔진에선 서지(손상으로 이상 연소가 발생하는 현상)도 동반돼 큰 불과 많은 검은색 연기가 발생 △조종사가 비상절차를 수행 중 좌측 엔진을 정지시킨 사실이 확인됐다는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엔진 결함은 없었고, 조류충돌로 양쪽 엔진이 모두 손상됐는데 조종사가 더 심하게 손상된 오른쪽 엔진 관련 비상절차를 수행하다 왼쪽 엔진을 정지시켰다’였다.
사조위는 이런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준비했다가 유가족들의 반발로 언론 브리핑을 취소했다. 유가족은 왜 강하게 반발했을까. 한겨레21이 입수한 당시 유가족 대상 비공개 브리핑 자료를 보면, 사조위는 특히 ‘좌측 엔진은 조종사가 비상절차를 수행 중 정지시켜 정지된 상태에서 충돌’이라고 빨간색 글씨체로 강조해뒀다. 또 조종사의 과실을 설명할 땐 유가족들에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론 이런 장면이 있다.
유족1 “누가 생각해도 오른쪽 엔진이 고장 났으면 그걸 끄는 게 맞다. 그런데 저희는 조종사가 왜 정상적인 엔진을 껐는지가 궁금하다. 오늘 기자회견을 이렇게 한다면 다 조종사 잘못이다.”
유족2 “유족 중에 조종사분 유족이 있다. 한 가족의 인생이 좌우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이 내용을 공개하시려면 프랑스 조사 원본과 이 사안에 대한 확실한 기록을 첨부해 언론에 브리핑을 해주시면 좋겠다.”
유가족은 이 조사 결과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나 조사 보고서 원문 등 추가 자료를 보여달라고 요구했지만, 사조위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부속서13에 명시된 국제 규정을 근거로 조사의 기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직 기장인 장정희 대한민국 조종사노동조합연맹 대외협력실장은 “조종사 실수가 전혀 없었을 것이란 얘기가 아니다.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요인이 겹친 상황에 대한 종합적 규명 없이 성급하게 특정 내용부터 발표하는 건, 개인의 과실로 다른 책임들을 덮고 갈 위험성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난사회학을 연구하는 박상은 플랫폼씨(C) 활동가(전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 역시 “참사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해도 사람의 실수가 개입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그런 결론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고, 인적 과실로 설명하는 게 일단은 가장 쉬운 결론”이라며 “그러나 (공항 입지, 제주항공 여객기 운영, 방위각 시설 개량 공사, 조류 관리 소홀 등) 참사 직후 보도된 다양한 문제가 있는데, 일단 인적 과실이 강조되면 다른 요소들은 안 보이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사조위 사무국은 엔진 정밀 조사를 시행했기에 발표한 것이지, 조종사 개인의 과실로 몰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한다. 미국·프랑스 사고조사 당국과 함께 프랑스에 있는 엔진 제작사(사프란)가 5월12일부터 6월4일까지 엔진 정밀 조사를 시행했기에, 그 시점에 시행한 내용을 브리핑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고재승 유가족협의회 이사 등 유가족들은 “그렇다면 8월에 종료된 콘크리트 둔덕 관련 용역 조사는 왜 아직도 유가족들에게 그 결과를 내놓지 않느냐. 유가족들 입장에선 ‘자료 마사지’라도 하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장면도 있다.
유족3 “(사조위가) 너무 감추거나 (자료를) 오픈하지 않으면 화살이 갈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유족 입장에서는 사조위가 (참사 관련 자료를) 좀더 공개할 수 있다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부분에서 긍정적으로 최대한 공개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사조위 “저희도 희생자 한분 한분 위해 확실하고 명확하게 조사하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 자료 공개가 유족에게 도움이 될지, 아니면 공개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조사 방향이 틀어지는 게 아닐지와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무조건 공개를 하진 않는다.”
유족4 “(콘크리트) 둔덕 조사가 끝나면 유족들에게 알려줄 예정인가. 179분이 돌아가셨다. 그런데 둔덕 조사는 용역을 줬고, 엔진 조사는 직접 (프랑스까지) 가서 했는데, 자료 공개는 안 하겠다고 한다. 왜 유족이 사조위의 독립을 요구하는지 한번 생각해보라.”
사조위의 설명대로 ICAO 규정에 따라 유가족들에게 조사 결과 근거는 공개할 수 없는 것일까. 유가족 법률지원단 김성진 변호사(민주노총 광주법률원 변호사)는 “ICAO 규정은 협약이어서 사실상 강행규정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규정을 보면 ‘사고 조사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와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경우’에 공개를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있는데, 지금 유가족들이 달라는 기록은 훼손되거나 오염될 수 있는 기록이 아니고, 사생활과 연관된 자료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조위 사무국은 12월4~5일로 예정했다가 유가족들의 반발로 취소된 공청회에서 다양한 자료를 공개할 예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김 변호사는 “행정절차법상 공청회는 주요 내용에 대해 14일 전까지 통지하고 공개하도록 돼 있는데, 현 사조위는 유가족들한테 공청회 전에 보고서 공개 자체를 안 해 토론이 불가능한 구조였다”고 반박했다. 공청회는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인데, 일방적 전달 형식의 공청회를 기획하고 유튜브 생중계를 예고했다는 주장이다.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유가족에게 허락된 건 무엇이었나. 유가족 참석은 20명으로 제한, 유가족은 발언하지 말고 유가족이 지정한 전문가만 발언 가능, 게다가 단 5일 안에 명단을 제출하라였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12월23일 국민권익위원회는 무안공항의 방위각 시설이 ‘공항·비행장 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 기준’과 ‘공항 안전운영 기준’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사조위가 조사의 독립성과 신뢰성을 지키려고 유족과 입씨름하는 사이 다른 기관에서 방위각 시설을 놓고 먼저 판단을 내놓은 셈이다.

2025년 12월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들머리에서 열린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사회 긴급기자회견에서 유가족들이 삭발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조사의 독립성과 신뢰성 강화를 위해 사조위 소속을 국토부에서 국무총리실로 변경하는 법안(항공철도사고조사법 개정안)이 12월1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해당 법안은 공포 한 달 뒤 시행된다.
그러나 삭발식 등 유가족들의 본격적인 거리시위가 시작된 뒤에야 국회와 정부가 사조위 독립을 추진한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박상은 플랫폼씨 활동가는 “사조위를 국토교통부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는 지적은 이미 10년도 더 전부터 나왔다. 연구자들은 국제 기준에도 위배되고 독립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해왔다”고 설명했다. 실제 2025년 4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낸 ‘항공·철도 사고조사, 독립성·전문성 강화의 필요성과 개선 방향’ 보고서를 보면 “두 명의 국토교통부의 상임위원은 항공정책실장과 철도국장이 겸직하고 있어, 정책 집행 책임자가 사고조사를 수행하는 구조적 이해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조사기구의 본래 목적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조위가 필요시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인력·장비 등의 지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조사기구가 조사 대상 부처에 인적·물적 자원을 의존해야 하는 구조로 국토교통부의 개입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앞서 말한 항공철도사고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시행과 동시에 현 사조위 위원장과 위원이 교체되면서 사조위 구성원은 전면 재구성된다. 유가족들은 유가족 추천 전문가도 사조위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요구하지만, 진전은 없는 상태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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