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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안동 산불 9개월, ‘피해 증빙’하다 검게 탄 가슴

행정 사각지대에 회복 요원한 피해 주민의 무너진 삶… 현실과 동떨어진 피해 지원 기준과 체계
등록 2025-12-26 21:20 수정 2025-12-30 10:12
2025년 12월17일 경북 의성 산불 피해 주민 최기철씨(왼쪽)와 박기 사촌1리 이장이 불에 탄 나무를 둘러보고 있다. 의성(경북)=김진수 선임기자

2025년 12월17일 경북 의성 산불 피해 주민 최기철씨(왼쪽)와 박기 사촌1리 이장이 불에 탄 나무를 둘러보고 있다. 의성(경북)=김진수 선임기자


 

2025년 12월16일.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서 점곡면으로 올라가는 길은 오전 10시에도 새카맸다. 9개월 전 불이 지나간 뒤에도 쓰러지지 않은 나무들이 까맣게 그을린 수피에 화마의 흔적을 새긴 채 서 있었다. 2025년 3월22일 의성군 안평면에서 성묘객 실화로 시작된 불씨가 사흘 뒤인 3월25일 점곡면 사촌1리를 휩쓸었다. 사촌1리 윗마을 10집 가운데 9집이 모두 불탔다.

2025년 12월17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1리 주변 산이 다 불타 그을려 있다. 산 사이에는 집이 전소된 사촌1리 피해 주민을 위한 임시주택 다섯 동이 모여 있다. 의성(경북)=김진수 선임기자

2025년 12월17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1리 주변 산이 다 불타 그을려 있다. 산 사이에는 집이 전소된 사촌1리 피해 주민을 위한 임시주택 다섯 동이 모여 있다. 의성(경북)=김진수 선임기자


등운산 너머에 있던 고운사를 전소시키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온 불길은 농협에서 2억5천만원을 융자받아 4년 전 새로 지은 최기철(50)씨 다섯 가족이 살던 이층집을 여지없이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12년 전 귀농해 2년 전에 큰맘 먹고 새로 집 짓고, “고생한 우리 집 할머이(아내) 좀 편하라고” 냉장고, 세탁기, 소파 등 살림살이를 싹 바꾼 박기(67) 사촌1리 이장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이 고마 폭삭 내려앉아 있는 걸 보니까, 진짜 눈물이 많이 나대예. 진짜 마이 울었다.” 12월16일 점곡면 사촌1리에 세워진 임시주택에서 만난 박기씨의 아내 채현숙(67)씨가 그을린 나무들이 서 있는 산을 텅 빈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장님이 매일 도청과 군청 오가는 이유

경상북도가 2025년 9월2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월22일 발생한 ‘경북 산불’은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까지 5개 시군에 걸쳐 9만9289㏊를 태우고 주택 3819동, 농작물 2003㏊, 농기계 1만7625대, 축사 473동, 문화유산 31개소, 중소기업 91곳, 소상공인 사업장 977곳을 집어삼켰다. 피해 규모로 역대 최대 산불이었다. 이전까지 가장 피해가 컸던 산불은 2000년 동해안 지역 2만3794㏊를 태운 산불이었다. ‘역대 최대 산불 피해 면적’이 이전보다 네 배 넘게 늘어났다.

정부는 산불 발생 한 달 보름 뒤인 5월2일, ‘산불로 무너진 삶, 정부가 일으켜 세우겠다’며 산불 복구 예산을 1조8809억원으로 확정해 기존 피해지원 기준을 상향·확대한다고 대대적으로 밝혔다. 주택 지원금도, 산불 피해 농작물·농업 시설 지원 단가도 일부 상향했다. 그러나 산불 발생 9개월이 지나도록 산불 피해 지역 주민들의 일상은 ‘이재민’에 머물러 ‘타버린 재산’을 증빙하는 데 온통 소모되고 있었다.

경북 의성군 산불 피해 주민들은 산불피해대책위원회를 꾸려 매일 아침 경북도청 서문 앞에서 1시간 정도 손팻말 시위를 한다. 그들이 시위하는 동안 자세히 들여다보는 도청 직원은 없다. 박수진 기자

경북 의성군 산불 피해 주민들은 산불피해대책위원회를 꾸려 매일 아침 경북도청 서문 앞에서 1시간 정도 손팻말 시위를 한다. 그들이 시위하는 동안 자세히 들여다보는 도청 직원은 없다. 박수진 기자


“지금 지원금은 현실 여건과 너무 맞지 않아요.” 박기 이장은 요즘 매일 경북도청과 의성군청을 오간다. 경북도청에 갈 때는 공무원이 출근하기 전인 아침 7시부터 ‘산불 피해 주민 보상 현실화’를 내건 손팻말을 들고, 의성군청에 갈 때는 공무원이 점심 먹으러 나오기 전인 오전 11시에 가서 손팻말을 든다. 취재하는 내내 그의 전화기는 경북 산불 피해 주민이 모인 ‘산불피해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의 연락으로 쉴 새가 없었다.

“집이 불타면, 국가가 특별구호금 6천만원을 더해서 최소 8천만원에서 최대 9600만원까지 지원해줘요. 그런데 집을 지으려고 하면, 2억원 가까이 들어가거든요. 결국 1억원은 빚내서 또 지어야 하는 거라요.” 박기 이장이 설명했다. 이미 2년 거치 18년 상환 조건으로 2억5천만원 주택건축자금 융자를 내어 집을 지었던 최기철씨는 집이 불탄 직후부터 담보물권이 없어졌으니 ‘전액 상환’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대출금 2억5천만원에 새로 집 짓는 데 드는 비용이 더해졌다.

행정편의주의적 재난 피해 입력 시스템

“누락되는 것도 너무 많아요.” 산불은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사회재난’에 해당하고 그 지원 규정에 따라 △구호금(사망·실종한 유족과 부상자에게 지급) △생계비 △주거비(주택복구비) △농업·어업·임업·소금생산업 종사자 및 소상공인·중소기업 경영안정지원자금 △농림시설·농작물 및 산림작물 복구비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 시설 복구비 등이 지원된다.

산불 피해 주민들이 말하는 ‘누락’은 주로 ‘농림시설·농작물 및 산림작물 복구비’ 등에서 발생한다. 불로 인해 생산 기반이 타버린 농업·임업·수산업 종사자가 다시 생산 기반을 복구하도록 기초 비용을 지원하는 복구비는, 기본적으로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에 입력할 수 있는 표준 항목에 대해 정해진 단가로 지원된다. 산불 피해 주민들은 이 ‘표준 항목’을 입력하는 NDMS 입력 방식이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입은 피해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비표준’ 항목이 많기 때문이다.

이전 해에 수확해 저장해둔 사과 수천 상자, 정부 수매 시기를 기다리며 보관해둔 쌀, 건고추와 목재는 물론이고 농사를 위해 필수적인 관수시설이나 38만원 이하의 모터펌프 같은 소농기계, 팔레트라고 불리는 농작물받침 등도 NDMS 입력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의성군에서 사과농사를 하는 농민 문헌준씨는 “표준화된 재산 피해만 계산하는 시스템과 기계적 ‘증빙’을 요구하는 방식은 사각지대를 계속 낳을 것”이라며 “농업재해보험 등에서 사용하는 표준단가·표준수확량을 기준으로 증빙이 어렵지만 농업·임업 등 경영한 것이 분명히 입증되는 경우 통계에 기반해서 지원하는 것이 농민들의 피해에 대한 불안과 갈증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이 이렇게 ‘피해 증빙’에 온 힘을 다하는 것은 소득 회복이 온전히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피스, 녹색전환연구소,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산불 피해 지역 가운데 경북 안동·영덕·의성 세 곳의 300가구 피해 주민에 대해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경제활동을 통한 소득이 산불 이전과 비교해 회복된 수준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1%가 ‘이전보다 50% 미만으로 회복됐다’고 했다. 10% 미만이라고 답한 가구는 전체의 37.3%였다. 특히 과수 농가가 많은 의성 지역은 응답 가구의 절반 이상인 50.8%가 산불 이전보다 소득이 회복된 수준이 10% 미만이라고 했다. 사과 등 과수 작물은 키운 지 5년은 지나야 제대로 수확해서 이득을 볼 수 있다. 농업복구비와 생계지원금이 ‘5년’을 버틸 주춧돌이 될 수 없기에 농민들은 그저 한숨이 난다고 했다.

 

그래픽 장광석

그래픽 장광석


식당 상인 1천만원, 서울 사는 건물주 1억원

안동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비닐하우스 열 동에서 포도와 수박을 키우는 강순남(62)씨는 12월17일 기자를 만나 한숨을 쉬었다가, 웃었다가, 불을 낸 사람을 욕했다가, 불을 끄지 못한 산불진화대원들을 탓하기도 하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사과가 올해 이제 6년째라. 6년 전에 사과밭을 사가지고 1년, 2년에는 그냥 나무만 키워. 3년째 되면 사과가 한 몇 개 달려서 맛봐. 4년째에는 그것보다 좀더 달리고, 5년째에는 좀더 달리고, 6년부터 10년까지 이제 개수가 점점 올라가. 해거리(한 해는 사과가 많이 달리고 한 해는 적게 달리는 현상) 안 하고 점점 잘 달게 하려고 기술센터 다니면서 공부하고, 사과 개수를 조절하면서 얼마나 정성스레 키웠는지 몰라. 근데 홀랑, 홀라당 다 탔네.”

2025년 12월17일 불바람이 불어 다 망가져버린 비닐하우스를 모두 철거한 자리에서 안동 주민 강순남씨가 이야기하고 있다. 박수진 기자

2025년 12월17일 불바람이 불어 다 망가져버린 비닐하우스를 모두 철거한 자리에서 안동 주민 강순남씨가 이야기하고 있다. 박수진 기자


3년 전 처음 시작한 포도도 2년 동안 농업기술학교에 다니며 포도 키우는 법을 배워서 시작했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서 키웠는지 몰라. 한번 제대로 수확도 못해보고 다 태워버렸지. 수박농사는 내가 잘 짓기로 안동 바닥에서 유명하거든. 포항에서 늘 사가는 상인이 있어. 짓기만 하면, 6월에 수확할 때 되면 3천만원 고스란히 통장으로 들어오고, 사과도 작년(2024년)에 1억 넘게 했는데…. 6년을 내다보며 키운 게 아무것도 안 남게 됐으니…. 잠도 안 오고, 생각을 안 하려 해도 아침에 일어나면 눈앞에 온통 불탄 산이야. 텅 빈 내 밭인데 우예 생각을 안 하노. 불 아니었으면 내가 이리 됐겠나.”

강순남씨가 더 분통 터지는 건 ‘깜깜이 행정’ 탓도 컸다. “지원금이 적기도 하고, 남들하고 다른데 왜 이만큼 나왔는지 아무도 안 알려줘. 면사무소에 가서 물어봐도 저거(면사무소 쪽도)도 몰라. 내가 참다 참다 쫓아가서 물어봤는데, 저거도 몰라.”

사과와 자두 등 ‘다수가 짓는 농작물’을 짓는 농민들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정부는 사과·자두 등 피해가 큰 여섯 작물에 대해서는 자연재해 등으로 피해 입은 농작물의 파종 비용을 지원하는 ‘대파대’나 농약대를 부족하나마 현실화했다. 자기 집을 가진 피해 주민들도 그나마 사정이 낫다. ‘비현실적’이라 하더라도 보상을 받는다. 아예 지원에서 ‘소외’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이들이 소상공인과 세입자다. 안동에서 10년 동안 식당을 운영해온 최미영(61)씨는 10년간 금이야 옥이야 ‘정성 들여 운영해온’ 식당이 잿더미가 돼, 젓가락 한 짝 건지지 못했다. “쇠붙이도 다 녹아서 바닥에 눌어붙어요. 진짜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요.”

최씨는 식당 건물이 전소됨으로써 생업 기반을 잃었다. 그 위로금으로 1천만원을 받았다. 서울에 사는 식당 건물주는 1억여원의 보상을 받았다. 식당 안에서 다 타버린 장사를 위한 필수품들, 가스레인지, 냉장고, 조리도구, 냄비류, 그릇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도 없다. NDMS에는 소상공인을 위한 시설 피해를 입력하는 항목이 존재하지 않는다. 최씨가 10년간 운영해온 식당 주소를 주소 애플리케이션에서 치면 ‘산이 좋은 사람들~ 예약전화 ○○○-○○○○’라는 문구가 다정한 글씨체로 쓰인 식당 건물이 나타난다. 등산객을 상대로 장사해온 식당은 ‘주말 점심은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동네 맛집이었다. “이제 나이 60에 여기서 이만큼 자리를 잡았는데 다른 데 어디 못 가요, 나는.”

최씨는 소상공인 융자 1억4천만원을 받아 식당이 탄 자리에 다시 식당을 짓고 있다. “소상공인은 지원은 없고 다 빌려주는 거예요, 다 빚이라. 내가 빚내서 내가 다 복구해야 해.” 최씨는 다음달부터 이자를 수십만원씩 내야 한다고 했다. “아직 건물 짓는 중인데, 융자금 다 썼어. 아직 집기도 하나도 못 샀어. 식당을 빨리 지어서 열어야 돈을 버는데, 빚을 갚는데…, 마음이 쪼여서 요새 잠을 못 자.” 요즘 숨쉬기도 힘에 부친다는 최씨가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말했다.

87%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의심
12월17일 경북 의성 산불 피해 주민 최기철씨가 초등학교 5학년 딸과 함께 생활하는 8.3평 임시주택. 의성(경북)=김진수 선임기자

12월17일 경북 의성 산불 피해 주민 최기철씨가 초등학교 5학년 딸과 함께 생활하는 8.3평 임시주택. 의성(경북)=김진수 선임기자


트라우마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린피스, 녹색전환연구소,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는 산불 피해 지역 300가구의 실태조사를 하면서 사건충격척도(IES-R) 검사도 함께 했다. 조사 대상 300명 가운데 점수 산출이 가능한 298명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의심 수준(25점 이상)을 보이는 비율이 87%였다. 주민 300명 가운데 261명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의심’할 수준이었다. 검사를 수행하고 관련 보고서를 작성한 김서린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연구원은 “사건충격척도 검사 총점 평균도 약 50.3점으로, 일반적인 국내 재난 연구에서 보고되는 평균 점수인 약 30~40점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박기 이장은 불이 난 다음날부터 70일 동안 소변이 멈추지를 않았다. “하루에 바지를 다섯 번, 여섯 번씩 계속 갈아입었어요. 멈추지를 않는 거예요, 소변이. 이게 지속적으로 이러는 건가, 낫지를 않는 건가 하는 생각에 딱 그만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살고 싶은 의욕이 없어져버리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최기철씨의 12살 딸은 집이 다 타버린 뒤 괴물 그림을 많이 그린다. 커다란 새가 화살을 맞아 피를 흘리기도 하고, 어두운 색채의 그림이 많았다. 그래도 임시주택 건너편, 원래 집이 있던 자리에 다시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딸의 그림도 다시 밝아지고 있다.

임시주택이 있던 마을로 심리치료단이 와서 상담했다는 박기 이장의 아내 채현숙씨에게 ‘계속 치료받는 것은 어떤지’ 묻자 채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걸로 안 나아요. 지금 마을 복구도 바쁜데, 사치야. 시간이 지나야 낫지. 산만 보면은, 저 새까맣게 탄 거 보면은 나을 수가 없어. 한참 있어야 아물지.”

그 말을 듣던 박기 이장이 말을 이었다. “여보, 이거 우리 죽기 전에는 안 돼. 우리가 그냥 잊고 사는 것처럼 그렇게 할 뿐이지, 그게 어떻게 치유되거나 그러지는 않아. 절대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평생 잊히지 않을 거야.”

 

의성·안동(경북)=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12월17일 경북 의성 산불 피해 지역에 쌓여 있는 불탄 나무. 의성(경북)=김진수 선임기자

12월17일 경북 의성 산불 피해 지역에 쌓여 있는 불탄 나무. 의성(경북)=김진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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