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9일 국회 본청 간담회실에서 ‘산불특별법의 한계와 개선방향’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제공
“도대체 내 지원금이 왜 이 금액인지 알 수가 없다.”
2025년 3월 말 발생한 경북 산불 피해 주민들이 9개월이 지난12월이 되어서도 계속 반복하는 말이다. 경북 의성군 단촌면에서 자두나무, 호두나무, 포포나무를 심어서 기르는 윤운용(64)씨는 ‘깜깜이 행정’에 속이 터진다. 윤씨는 2009년 의성으로 귀농해 농사를 지었다. 과수 농사만으로는 소득이 충분치 않아 아내와 같이 공사 현장에서 일하기를 병행했다. 이번 산불로 자두밭 1천 평, 호두나무·포포나무를 심은 밭 2700평이 불탔다. 집도 불탔다. 모듈형 임시주택에서 산불 피해 22가구가 모여 사는 가운데 다들 조금이라도 받고 있는 생계비와 농업복구비 등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사회재난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 비용 부담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서 ‘농업·어업·임업 및 소금생산업에 피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지원은 해당 업종으로 인한 소득이 50% 이상인 경우로 한정한다’는 문구 때문이었다. “호두나무는 10년을 길러야 수익이 나고 올해가 7년째니, 수익이 적어요. 미래를 보고 나무를 심은 거죠. 당장 먹고살려고 목수·미장 등 온갖 공사 노가다를 해서 부부가 합해서 일한 소득이 3750만원이 넘는다고 멀쩡한 농가 피해를 하나도 보전받지 못하는 게 말이 되나요?”
부당함은 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직접 나서야 한다. ‘농가외소득’을 올린 산불 피해자에 대한 지원금을 일률적으로 지급하지 않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면서 11월27일 해당 규정의 문구가 빠졌다. 하지만 윤씨는 여전히 보상금이 ‘언제 지급된다’ ‘얼마가 지급된다’ 등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했다. 산불 피해 주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투사’가 되는 이유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은 재난과 참사가 있지만, 한국에서도 역시 수많은 재난과 참사가 있었다. 국민 모두의 마음에 각인돼 ‘참사 피해자 권리’를 일깨운 사건은 4·16 세월호 참사다. 4·16 세월호 참사는 최초로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조문’을 통해 재난 피해자의 13가지 권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피해자의 ‘알권리’, ‘존중받을 권리’와 연결되는 권리들이 있다. “모든 사람은 재난을 초래한 환경과 이유를 포함한 진실을 알 권리”(진실에 대한 권리)와 “책임자를 엄정하고 공정하게 처벌해야 하며, 유사한 재난의 발생을 막기 위해 철저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책임과 재발 방지)하고, “정부와 책임 있는 대표자로부터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받고”(피해자의 권리), “치유와 회복을 위해 적극적이고 충분한 조치를 취할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치유와 회복)고 확인하는 기본적인 사항들이다. 이번 산불 재난에서 가장 존중받지 못한 ‘재난 피해자의 권리’다.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센터장은 2025년 3월 경북 산불 재난에서 특히 이 알권리 영역이 재난 발생 초기부터 현재까지 “매우 참담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60대 이상 노인 인구가 대부분인 산불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조차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다. 대피소 정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재난정보 전달’의 실패 속에서 마을 주민들이 ‘행정’이 해야 할 역할을 대신했다. 안동시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최미영(61)씨는 “멀리서 불꽃을 보고 안 되겠다 싶어서 차 갖고 도망 나오는데, 어르신들은 다 집에 있었다. 그래서 차에 있던 짐 다 버리고 어르신 13명을 태워서 움직였다”고 했다. 대피소를 몰라 무작정 향한 초등학교 두 곳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이어서 간 한 초등학교는 거의 ‘만석’이었다. 어르신들을 태운 채 물어물어 대피소를 찾아야 했다.
대피소 안에서 재난 피해자에게 제공돼야 할 정보는 ‘두꺼운 책자 한 권’에 담겨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점곡초등학교 대피소에서를 오가며 봉사를 한 최기철(50)씨는 “그걸 보고 이해해야 하는 분들은 대부분 70대 이상 어르신”이라며 “글자 크기가 10포인트인 책자에 지원금을 받기 위한 절차 같은 것이 안내돼 있었는데, 비교적 젊은 나도 접근하기 매우 어려웠다”고 말했다. 유해정 센터장은 “재난 피해를 입은 사람은 피해 회복의 주체로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어떤 보상과 어떤 지원이 있었고, 절차상의 문제와 법·제도의 문제는 무엇인지 알아야 그에 대한 대처가 가능하다”며 “명확한 정보 제공 없이 일방적으로 보상을 집행하는 행정은 재난 피해자를 회복의 주체로서 보지 않고 수동적으로 대상화시킴으로써 진정한 일상으로의 회복을 막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민들이 간절히 원했으나 결국 주민이 원하지 않는 지역 개발·재건 관련 내용 위주로 만들어진 ‘경북·경남·울산 초대형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과 그 시행령 제정 절차도 피해 주민과의 소통이나 의견 수렴 절차가 전혀 없이 이뤄져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별법의 상당 부분이 ‘산림투자선도지구 지정’ ‘선도지구 내 기업지원 특례’ 등 산림 개발에 특혜를 주는 내용으로 채워졌고, 기존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이하 재난안전법)에서 지원되지 않는 피해 주민의 실질적인 지원은 대부분 시행령에 위임돼 있다. 그런데 12월15일 입법 예고된 시행령 또한 주민들의 기대를 배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보미 사단법인 선 변호사는 “역시나 개발 시행령처럼 만들어져서 놀랐다”며 “주민 지원과 관련해서는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른 생계지원 최대 지원 기간은 6개월을 초과할 수 없다’고 적시한 반면, 산림경영특구의 요건과 절차 등을 세세히 지정하고 자연휴양림 조성 기준 완화 등 개발과 관련한 기준을 느슨하게 정해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항우 경북산불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특별법은 기존 재난안전법에서 빠진 ‘산불 피해로 인한 주민 삶의 복구’의 사각지대를 채워주기 위해서 제정을 촉구한 것인데 그것을 위한 조항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아 절망이 깊다”고 말했다.
재난과 참사가 일어날 때 피해자는 절망에 빠지지만, 그 모든 피해자를 절망의 순간에서 건져 올릴 책임과 의무는 국가와 정부, 행정에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에서 결정한 재난안전 정책을 집행하는 주체이자, 총체적인 재난안전관리 체계를 완성”(‘재난피해자권리 안내서’ 공무원 편)하는 종착점에 있다. 행정안전부가 2020년부터 매년 주요 재난 중심으로 하는 ‘재난 피해 회복수준 실태조사’를 보면 재난 이후 갈등 발생의 가장 큰 이유가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2022), 지원 격차(2023), 소통부족(2024)이었다. 담당 공무원의 정확한 소통과 전달이 중요한 이유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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