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방·권. ‘까임 방지권’의 준말이다. 대중이 환호할 만한 큰일을 해냈거나 강한 인상을 줬기에, 어쩌다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대충 용서받고 넘어갈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을 이르는 말이다. 과거 왕조 시절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공신에게임금이 면책특권을 부여한 상황과도 비견될 수 있다.
최근 축구 국가대표팀 새 사령탑에 오른 홍명보 감독은 흔히 ‘까방권 2장을 획득한 남자’로 통한다. 한 장은 2002년 월드컵때 챙겼다. 4강 신화의 주역이었을뿐더러, 특히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성공시킨 뒤 평소 무뚝뚝한 인상과는 달리 두 손을 치켜들고 활짝 웃던 그의 모습이 워낙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박힌 탓이다. 나머지 한 장은 우리나라가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 종목에서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딴 뒤 얻었다. 당시 그는 대표팀을 이끈 감독이었다. 이 밖에 이런저런 사고를 쳐 여론의 뭇매를 맞던 스타들이 ‘속죄’하는 심정으로 머리 깎고 군대에 가서 고생하다 오면, 팬들이 죄 사함과 더불어 일정한 유효기간을 지닌 까방권을 더러 안겨주기도 한다. 물론 여성이라고 까방권 예외지대가 되란 법은 없다. 예를 들어 피겨여왕 김연아나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선수의 극성팬들은 주저 없이 그들에게 까방권을 선사한다.
이쯤 되면, 까방권 세계에도 한 가지 법칙이 드러난다. 뭐니뭐니 해도 까방권의 획득 요건은 업적, 한마디로 ‘스스로 한 일’이다. 시쳇말로 전쟁에서 나라를 구했거나, 국제대회에 나가 나라의 명예를 높였거나, 아니면 몸으로 ‘박박 기기’라도 했어야 한다. 이 바닥에서 까방권은 결코 상속·증여 대상도 아니고, 매매·양도될 수도 없다.
하지만 천하의 까방권에도 결국 예외는 있는 것일까? 법칙을 거스르는 화제의 주인공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머지않아 취임 5개월을 맞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6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북방한계선(NLL) 논란’ 속에서도 좀체 흔들리지 않는다. 한 가지 특이한 건,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에 대한 우호적 평가는, 역설적이게도, ‘하지 않은 일’ 때문에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모른다, 도움받은 적 없다, 관련 없다…’, 취임 이후 논란이 된 각종 사안마다 박 대통령 본인이 취한 태도는 딱 세 가지뿐이다. 한마디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모든 논란으로부터 거리두기,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주장하기. 속세의 까방권 법칙을 무력화하는 신묘한 전술이다. 그게 아니라면, 재벌가 자녀들이 은수저를 입에 물고 세상에 태어나듯, 유효기간 없는 종신 까방권을 챙기고 태어난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구국전사’ 남재준 국정원장은 온갖 비난에도 NLL 대화록 공개라는 불법행위를 감행했다. 법질서 수호를 외치는 원칙주의자 박 대통령은 ‘셀프 개혁론’으로 화답했고, 이에 남 국정원장은 거듭 NLL 포기는 사실이라며 도발 수위를 한층 높여가고 있다. 이 대목에서, 과연 박 대통령이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현재의 정국 상황을 ‘통제’하고 있기는 하는 걸까라는 의문마저 든다. 정보기관 수장의 역할은 안중에도 없는 남재준의 단순함과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박근혜의 무지, 무능, 그리고 무엇보다 ‘무위’가 한데 만나 서로 경쟁하듯 앞으로만 내달린다면? 눈앞에 펼쳐지는 현재의 파국 상황이 차라리 정권 차원의 ‘전략’의 산물이었음을 바라는 이 불편한 심정이라니….
* 내 ‘주간 신문’으로 을 ‘창간’합니다. ‘새들도 오래 머물지 않는 곳’, 철탑과 종탑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은 하늘 노동자들의 ‘성공적 착륙’을 목적으로 발행되는, ‘폐간을 고대하며’ 만드는 신문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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