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일, 충격에 휩싸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전두환 전 대통령(사진)이 보낸 화환이 도착했다. 일부 조문객들은 불같이 화를 냈다. ‘죽어야 할 자가 누군데’라며 화환을 부숴버리고 불을 붙였다.
애꿎은 꽃과 화분을 상대로 분통을 터뜨리던 중, 누군가 갑자기 ‘이성’을 되찾은 듯 호기심을 보였다. “이 양반은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더니, 화환은 뭐 이렇게 비싼 걸 보냈대?” 이성은 토론을 낳았다. “이거 한 10만원은 할 것 같은데?” “아냐, 15만원은 하지 않을까?” 토론은 다시 ‘감탄’으로 이어졌다. “전 재산 절반에 해당하는 화환이라니, 전두환이 통이 크긴 크구먼!” 그날부터 그의 재산은 15만~19만원으로 줄어들었을까. 전두환의 자금은, 슬플(悲) 땐 나오는 자금, 비(悲)자금인 걸까.
9년 전인 2004년 검찰은 전두환의 비자금을 발견했지만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차남 전재용씨가 보유한 73억5500만원어치의 채권은 2000년 12월 전두환이 관리하던 계좌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증여 시점 5년 안에 소송을 냈다면 이 돈을 전두환 소유로 돌려놓고 추징할 수 있었다. 그땐 아직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소송을 내지 않았다. 왜인지는 알 수 없다. 검찰도 설명하지 않는다. 이젠 소송 시한이 지났다. 검찰은 이 돈이 돈으로 보이지 않았던 걸까. 전두환의 자금은 돈이 아닌(非), 비(非)자금인 걸까.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선 전두환을 ‘전땅크’ ‘땅크성님’이라 부르며 추앙하는 분위기가 있다. “삼청교육대를 부활시키자”는 구호도 있고, “일베만큼은 전두환을 찬양하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는 다짐도 있다. 일베가 전두환 추징금 모금을 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금액이 너무 커서인지 아직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일베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도 있지만, 일각에선 ‘집에 해충을 들이지 않으려면, 앞마당에 고기를 묻어 거기에만 모여살게 하면 된다’는 격리론도 나온다. 어쨌든 일베는 스스로 ‘일베충’이라 비하하고 바퀴벌레 같은 취급을 받는다. 전두환의 자금은, 바퀴벌레(蜚)들의 지지를 받는, 비(蜚)자금일까.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국내외 비자금 조성 경위와 재산 증식 과정에 초점을 맞춘 최근 검찰 수사엔 대표적인 조세회피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가 등장한다. CJ그룹이 버진아일랜드에 만든 페이퍼컴퍼니가 자사주를 매입한 뒤, 내부 정보를 이용해 60억원이 넘는 이익을 보면서 되팔았다는 것이다.
비영리 온라인매체 가 발표한 조세회피처 한국인 이용자 명단에도 버진아일랜드가 등장한다. 이수영 OCI 회장 부부 등 재벌 기업인 5명이 이곳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버진아일랜드가 위치한 카리브해까지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할 텐데, 거기까지 날아서(飛) 왔다갔다 하느라 돈도 고생이 많다. 혹시 전두환의 자금도 비(飛)자금은 아닐까.
‘비(秘)자금’이란 표현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1987년 발생한 범양상선(STX팬오션의 전신) 금융부정 사건 때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해마다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책정해 고위 공무원들에게 뇌물로 줬다고 했다.
‘전두환의 자금은, 아무래도 비(秘)자금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돈이나 그가 돈 쓴 일 또는 그의 주변 사람이 떠오르는 분들은 또는 에 제보해주시기 바란다. 여러분의 제보는 전두환의 자금을 비수(匕) 같은 비(匕)자금으로 만들지니.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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