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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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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지휘’ 나선 윤석열, ‘답정너’ 열연 김용현

[윤석열 탄핵심판 3·4차 변론기일]
피청구인이 직접 ‘신문’ 나서며 증인 압박… 김용현 “포고령, 최상목 쪽지 다 내가 썼다”
등록 2025-01-31 15:10 수정 2025-02-20 08:58
윤석열 대통령이 2025년 1월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변호인단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2025년 1월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변호인단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4년 12월3일 한밤의 ‘비상계엄’을 벌인 두 남자가 그로부터 51일 만에 마주 앉았다. 2025년 1월23일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 법정에 대통령 윤석열은 피청구인,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은 증인으로 참석했다. 12월8일 일찌감치 체포된 뒤 ‘내란 피의자’ 중 처음으로 구속기소됐던 김용현은 이날 법정을 ‘지휘’하는 듯한 윤석열 앞에서 ‘답정너’와 같은 답을 반복했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 진행 상황을 상세히 기록 중인 한겨레21이 1월21일과 23일 열린 3·4차 변론을 정리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열렸던 3·4차 변론은 ‘윤석열의 출석’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앞서 1월19일 새벽, 윤석열 지지자들이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몰려가 유리창과 외벽을 깨뜨리는 등 초유의 난동 사태를 벌인 뒤 돌연 윤석열은 “앞으로의 변론기일에 모두 나가겠다”고 밝힌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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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기억나시죠?” 김 “말씀하시니까 기억납니다”

 

지지자들이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윤석열이 출석을 예고하자 헌재 주변 경비가 강화됐다. 변론기일에는 헌재와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안국역부터 통제가 시작돼 헌재 방향으로 통하는 길이 봉쇄됐고 용무가 있는 이들도 3차에 걸친 경찰 방어선을 통과해야 헌재로 접근할 수 있었다. 재판 시간인 오후 2시가 다가오자 모여든 윤석열 지지자들이 헌재 접근을 막는 경찰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2025년 1월21일 대통령 탄핵심판 3차 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접근을 통제당한 시민들이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주변에 몰려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임지선 기자

2025년 1월21일 대통령 탄핵심판 3차 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접근을 통제당한 시민들이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주변에 몰려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임지선 기자


1월21일 3차 변론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윤석열은 구속된 신분임에도 정장에 붉은색 넥타이, 잘 정돈된 머리 모양을 한 상태였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탄핵 재판에 나와 직접 변론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발언 기회를 얻은 그는 “나는 철들고 난 이후로 지금까지 특히 공직생활 하면서 자유민주주의란 신념 하나를 확고히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라며 거드름을 피우는가 하면 변론 중인 변호인들의 팔을 툭툭 치며 지시를 내리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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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청구인이 앞으로도 심판정에 출석하게 되면 그 면전 상태에서 (증인들이) 사실대로 진술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적어도 피청구인과 증인이 직접 눈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도록 가림막이라도 설치한 상태에서 증인신문이 이뤄질 수 있게 해주십시오.” 1월21일 3차 변론에서 국회 소추인단 쪽은 이러한 요청을 했지만 이틀 뒤 4차 변론의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은 윤석열과 눈을 마주치며 답변하게 됐다. 윤석열은 적극적으로 직접 증인신문에까지 나서며 김용현을 압박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2025년 1월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윤석열 대통령 쪽을 바라보며 답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2025년 1월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윤석열 대통령 쪽을 바라보며 답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윤석열 “질문은 제가 그냥 하겠습니다. 포고령과 관련해서 아마 제 기억에는 12월1일 또는 2일 밤에 우리 장관께서 제 관저에 그걸 가져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억나시죠? 써오신 계엄 담화문하고 포고령을 보고, 포고령에 뭐 법적으로 검토해서 손댈 것은 많지만 어차피 이 계엄이라는 게 길어야 하루 이상 유지되기도 어렵고, 이런 국가 비상 상황이 국회 독재에 의해 초래됐으니 추상적이긴 하지만 상징적이라는 측면에서 집행 가능성은 없지만, 이게 상위 법규에도 위배되고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집행 가능성은 없지만, 뭐 그냥 둡시다 하고 말씀을 드리고 놔뒀는데 기억이 혹시 나십니까?”

김용현 “네, 제가 이제 느낀 것은 대통령님이 평상시보다 꼼꼼하게 안 보시는 것을 느끼면서 평상시 대통령님 업무를 하시는 스타일이 항상 법전을 먼저 찾으시거든요. 뭐 이렇게 보고가 들어오거나 하면 좀 이상하다 하면 법전부터 먼저 가까이하셔서 찾아보곤 하시는데 분명히 전 그렇게 생각했는데 안 찾으시더라고요.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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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말 자르며) 하여튼 이게 어쨌든 이거는 실현 가능성, 집행 가능성이 없는데 상징성이 있으니까 놔둡시다 했던 게 생각나고. 또 왜 전공의 이걸 왜 집어넣었냐 웃으면서 얘기하니 이것도 계고한다는 측면에서 뒀습니다 해서 저도 웃으면서 놔뒀는데 그 상황은 기억하고 계십니까?”

김용현 “지금 말씀하시니까 기억납니다.”

윤석열 “(특전사를 더불어민주당사와 ‘여론조사꽃’에 보낸 것도) 국회 독재가 망국적 위기 상황의 주범이라는 차원에서 그와 연관해서 민주당을 생각했던 것이고, 중앙선관위를 스크린 해보라고 했는데 부정선거 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게 여론조사의 문제점도 있기 때문에 연관해서 이(여론조사꽃)를 골랐던 거죠. 근데 계엄 선포한 날 저녁에 (김 장관이) 그 얘기를 저한테 해서 제가 절대 하지 마라, 민주당에 보낼 거면 국민의힘도 보내야 되고 그건 안 된다. (여론조사)꽃도 제가 자른 것 얘기 들으셨습니까?”

김용현 “나중에 지시하신 것 들었습니다.”

 

말맞춤 행각 속 비집고 나온 ‘진실’

 

이렇듯 윤석열이나 윤석열 쪽 변호인이 말하면, 김용현은 맞장구쳤다. 이런 패턴으로 김용현은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하는 포고령도,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건넨 ‘국가비상입법기구’ 언급 쪽지도 자신이 썼다고 진술했다. 계엄군을 국회에 투입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박종근 특전사령관의 증언도 사실은 자신이 “사상자가 날까봐 ‘요원’을 내보내라 지시”했는데 부하들이 잘못 알아들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대리인단의 질문 차례가 되자 김용현은 돌연 “개인적으로 형사재판 진행 중이어서 지금 반론질문에 답하게 되면 사실 왜곡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증인신문을 거부하고 싶다”고 발언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그럴 경우 재판부가 증인 진술의 신빙성을 낮게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한 뒤 휴정을 선언했다. 이에 방청석에서 “창피한 줄 알아라”와 같은 야유가 나왔다. 이후 대통령 변호인단이 권하자 김용현은 또다시 말을 바꿔 증인신문을 이어갔다.

김용현의 증언 중간중간에 뒷자리에 동석한 변호인들이 과도하게 증인석에 다가와 귓속말해 재판부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다른 사람 보기에는 증언을 코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허가 없이 증인에게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말맞춤 행각 속에서도 진실은 말 사이사이 비집고 나왔다. 김용현은 이날 소추인단 쪽이 ‘정치인, 대법원장, 법조인 이런 사람이 포함된 체포 명단을 여인형(전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알려줬냐’고 묻자 ‘체포 지시는 아니고 포고령 위반 우려 대상자여서 동정을 살피라고 한 것’이라 답해 이러한 ‘타깃 명단’이 실존했음을 증언했다. 또 김용현은 “체포를 하려면 혐의와 체포기관이 있어야 하는데 계엄 당일 밤 10시30분쯤 확인했을 때 합동수사본부가 구성되려면 서너 시간은 걸린다고 했다”고 말해 만일 계엄 해제가 늦어졌다면 체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또 계엄 직전 국무회의 당시 계엄에 찬성한 국무위원도 있었으며 김용현이 총리와 행정안전부 장관 등에게도 따로 지시사항이 담긴 쪽지를 건넸다고 증언했다.

 

‘실패한 계엄’ 아니라 “빨리 끝난” 계엄

 

윤석열은 계엄 상황에서 핵심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은 모두 김용현이 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김용현이 계엄의 목적이나 결과에 대한 의견 등을 진술하려 하면 못마땅해하며 “그걸 왜 장관에게 묻나, 내가 더 잘 안다”는 식으로 나서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노골적으로 ‘공은 나에게, 과는 아랫사람에게’ 물으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2025년 1월23일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피청구인인 윤석열 대통령이 증인으로 나온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바라보며 직접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재판 녹화 영상 갈무리

2025년 1월23일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피청구인인 윤석열 대통령이 증인으로 나온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바라보며 직접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재판 녹화 영상 갈무리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김용현에게 “계엄의 목적이 ‘거대 야당에 경종을 울리고, 부정선거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정리하면 되겠냐”고 묻고 이에 김용현이 대략적으로 동의하자 윤석열이 나섰다. 윤석열은 “계엄을 선포한 사람은 대통령인 저 자신이니까, 계엄 선포 이유를 장관에게 물어보셨는데”라며 언짢아한 뒤 “계엄 선포 이유는 야당에 대한 경고가 아니고 주권자인 국민에게 호소해서 엄정한 감시와 비판을 해달라는 것이지 야당에 대한 경고는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은 ‘(최상목 기재부 장관에게 건넨 쪽지에 써 있던) 국가비상입법기구가 5공화국 당시 국가보위입법회의와 같은 성격이냐’는 재판부의 질문이 김용현을 향했는데도 여기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쪽지는 김용현이 썼다면서도 내용에 대해서는 윤석열이 김용현보다 명확한 설명을 내놓은 것이다. 윤석열은 “국보위 말씀을 자꾸 하시는데 국보위라고 하면 이 상황에서 계엄 선포에 반대하는 기재부 장관에게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완전히 난센스”라며 “제가 민생 입법을 반대하는 거기에 대해 긴급재정경제명령 같은 걸 말하는 걸 장관도 들었던 것 같다. 국회의 입법을 기다릴 시간이 없는 민생 입법에 대해 이런 계엄 같은 걸 하는 상황에서 국민 여론이 바뀐다면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하는 걸 한번 검토해볼 수 있지 않나, 오늘 얘기하는 걸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 쪽 대리인들이 ‘계엄 실패’라는 단어를 언급하자 윤석열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그는 “이 계엄이 무슨 실패한 계엄이라고 소추인 측이 주장했는데 이것은 실패한 계엄이 아니라 예상보다 좀더 빨리 끝난 것이고 그 이유는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를 아주 신속하게 한 것도 있고 나 역시도 계엄 해제 요구가 결의가 나오자마자 계엄 해제를 선언했기에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내란 혐의를 전면 부정하고 부정선거 의혹만을 강조하는 윤석열의 ‘정신승리’ 행태는 3·4차 변론에서 이어졌다.

 

2월 첫 주 5·6차 변론기일 이어져

 

1월26일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윤석열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헌재 탄핵심판의 5차와 6차 변론기일은 2월4일과 6일이다. 2월4일에는 이진우(전 수방사령관), 여인형(전 방첩사령관) 등이, 2월6일에는 김현태(707특임단장), 곽종근(전 특수전사령관), 박춘섭(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이 증인으로 나선다. 윤석열 쪽은 백종욱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을 탄핵 재판의 새 증인으로 신청해 앞으로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의지를 드러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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