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강창광 기자
형! MBC 사장 하다가 잘린 재철이 형! 멋있었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지난 3월26일 MBC 대주주 자격으로 형을 해임하기로 결정하자, 이튿날 형이 먼저 자진 사퇴한 거 말야. 난 처음에 그 소식 듣고 형의 남자다운 마지막 모습인가보다 할 뻔했어. 불미스레 해고되기보다 떳떳하게 내 발로 나간다는 건 줄 알았지.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다”던 멕시코의 혁명 영웅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결연함마저 느낄 뻔했어.
그런데 웬걸! 사퇴 다음날 3억원이 넘는 퇴직금을 일시불로 챙겼담서? 그 돈은 해임되면 못 받고, 자진 사퇴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람서? 그게 전부가 아니람서? 파업 기간에 노조원들 대신 일 시키려 ‘친위대’로 뽑았던 시용직원·계약직 7명에 대해, 사표 제출 직전에 사장 자격으로 정규직 전환도 시켜줬담서?
형, 이게 뭐야! 남자다운 게 아니라 꼼꼼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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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국정원장 하다가 백수 된 세훈이 형!
형이 미국인지 일본인지 간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무진장 공항에 몰려갔더라. 출국장 근처에서 형이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던걸. 와, 난 형의 인기에 놀랐어. 형이 떠난다는 얘기에 아쉬워하는 사람이 이리 많다니, 형은 정말로 훌륭한 행정가이자 국정원장이었나보다 생각할 뻔했어.
그런데 웬걸! 이 사람들은 형이 도망갈까봐 붙잡으러 간 거였담서? 형, 지금 통합진보당, 전교조, 참여연대 등으로부터 고소당했담서? 인터넷 여론조작 지시, 종북·좌파 단체 척결 공작, 4대강 등 국책사업 여론조작 지시, 국정원 정치 개입 지시 등 제목도 다양하담서? 검찰 수사 끝나면 국회에서 국정조사도 하기로 했담서?
형, 이게 뭐야! 딴 데 가지 마! 아직 이렇게 할 얘기가 많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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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로 이름 날리던 광수 형! 형 수업 듣는 학생들한테 형이 쓴 책 2권 사서 영수증 제출하라고 했다는 기사에 누리꾼들이 난리가 났더라. 책을 빌려볼 수도 있고 물려받을 수도 있지 않느냐, 책 내용만 알면 됐지 책을 왜 꼭 사야 하느냐 등 학생들 볼멘소리가 대단하더라고. 난 10~20년 전 교수직이 위태로운 형을 학생들이 든든하게 지켜줬던 ‘은혜’를 잊고, 책 장사에 나선 건가 의심할 뻔했어.
그런데 웬걸! 요즘 학생들이 책을 그렇게 안 산담서? 지난 학기 형 과목 수강생 600명 중에 교재 산 학생이 불과 50명이었담서? 요새 비싼 책은 학생들 여럿이 공동구매한담서? 그 책은 북스캔 업체에 보내서 PDF 파일로 만들고, 학생들은 그 파일을 책보다 훨씬 비싼 자기 아이패드에 넣어다닌담서? 형도 열받아서 “불만이 있는 학생들은 당장 수강 철회를 하라”고 했담서?
형, 이게 뭐야! 우리 끌어안고 눈물이라도 흘릴까? 책이나 기사나 사람들이 다 공짠 줄로만 알아!
아! 순진한 나는, 우리 형들을 향한 내 마음을 담아 노래라도 불러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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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철이 형) 떠나는 마지막 네 모습 너무 보고 싶지만, 일그러진 얼굴조차 창피한 사이/ (세훈이 형) 가지 마, 가지 마, 가지 마, 가지 마/ (광수 형) 1초에 한 방울 남겨진 눈물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의 전부겠지. 조금만 천천히 흐르면 안 될까 -케이윌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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