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는 전작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이전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속 퓨리오사는 의수에 의지해 싸운다. 그는 결핍을 극복하는 것이 아닌, 결핍을 당당히 드러내며 껴안고 질주한다. 네이버 영화
삭발한 머리, 검게 칠한 얼굴, 의수를 끼운 팔….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2015)의 퓨리오사는 그동안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캐릭터였다. 호평 일색인 매력적인 세계관 안에서도 그의 존재는 단연 돋보였고 관객의 호기심도 뜨거웠다. 그러나 우리가 퓨리오사에 관해 아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분노의 도로’ 개봉 뒤 9년 만에 베일을 벗은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2024)는 전작의 이전 이야기를 다룬 속편이자 퓨리오사의 서사를 갈구하던 팬들에게 주는 화답이기도 하다. 영화는 주인공의 일대기를 따라간다. 퓨리오사가 어떻게 시타델(매드 맥스의 주요 배경이자 임모탄이 지배하는 바위 도시)의 총사령관이 됐는지, 임모탄의 아내들을 탈취해 녹색의 땅으로 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서히 밝힌다.
퓨리오사는 풍요로운 녹색의 땅에서 태어났다. 바이커 군단의 우두머리인 디멘투스가 어린 퓨리오사를 납치하고 딸을 구하려던 엄마는 고문 끝에 살해당한다. 황무지에 홀로 던져진 퓨리오사는 독재자 임모탄의 예비 아내가 되지만 가까스로 도망쳐 트럭을 관리하는 남성 집단에서 성장한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생을 건 복수를 준비한다.
관객이 ‘퓨리오사’를 통해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퓨리오사가 팔을 잃은 이유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퓨리오사의 절단된 팔은 캐릭터의 외형이 아니라 영화의 윤리를 가르는 핵심 장치다.
조지 밀러 감독이 장애를 다루고 표현하는 방식은 기존 액션 영화와 다르다. 일반적인 영화에서 장애가 있는 인물은 장애만으로 정의되기 쉽다. 대표적인 예가 ‘킹스맨’의 악역인 가젤과 ‘플래닛 테러’의 주인공 체리 달링이다. 특히 체리 달링은 한쪽 다리를 잃고 기관총을 이식해 의족처럼 활용한다. 평범한 여성에서 전사로 변신한 그는 파괴적이고 섹시한 이미지를 풍긴다. 절단된 몸이 갑자기 위협적인 무기가 되고 관객은 초현실적인 설정에서 비롯된 황당함과 잔혹함을 동시에 소비한다. 여기서 장애는 B급 영화의 장르적 재미와 개성을 더하는 소품으로 쓰인다.
그에 반해 퓨리오사의 팔은 그가 어떤 세계를 통과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이며, 주인공의 생존 방식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다. 퓨리오사는 의수에 의지해서 싸우고 운전하고 지휘한다. 똑같이 장애를 다루지만 조지 밀러 감독은 의수를 신기한 볼거리로 만들지 않고 개연성을 확보하는 장치로 활용했다.
장애를 존중하는 감독의 시선은 액션에서도 드러난다. ‘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와 맥스가 처음으로 맞붙는 장면에서 퓨리오사는 의수를 벗고 있다. 보통 영화에서 장애인은 한번 착용한 의수나 의족을 벗지 않는다. 특히 주인공이 강하게 보여야 할 액션 장면에서 취약한 몸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강력한 무기나 보호구를 장착하거나 전투용 슈트를 입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시퀀스에서 퓨리오사는 얇은 티셔츠를 걸치고 의수도 벗은 상태다.(적의 추격을 따돌리고 한숨 돌리는 중이었다) 실제로 기계로 된 의수나 의족은 무겁고 쉽게 뜨거워져 장시간 착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퓨리오사가 휴식 중에 의수를 벗은 건 현실적이고 섬세한 연출이다.
이후 느닷없이 나타난 맥스와의 격투 장면이 이어지는데, 여기서 퓨리오사는 맨몸으로 치열하게 싸운다. 비장애인 남성에 비해 현저하게 불리한 몸이지만 약점을 애써 감추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낸다. 이는 결코 우연히 탄생한 장면이 아닐 것이다.
그런 그가 팔을 잃은 연유는 ‘퓨리오사’의 후반부에서 알 수 있다. 전투 중에 팔을 다친 퓨리오사는 디멘투스에게 붙잡히고 다친 팔이 쇠사슬에 묶인 채 그의 엄마처럼 고문당한다. 그러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묶인 팔을 자르고 도망친다. 그의 장애는 불운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절대 꺾이지 않는 의지에 의한 선택인 것이다.
‘분노의 도로’가 워낙 빼어난 작품이어서 ‘퓨리오사’는 그에 비하면 액션이 평이하고 서사의 개연성이 부족하며 긴장이 다소 늘어진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퓨리오사의 극단적 의지와 그로 인한 장애를 함께 엮어 서사를 풀어낸 것만으로 나머지 결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팔을 잃은 퓨리오사는 시타델로 돌아온다. 그는 디멘투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무기와 몸을 정비하고 다시 전장으로 간다. 그런데 시타델의 차들이 전부 전쟁에 동원되면서 정작 그가 타고 갈 차가 한 대도 없다. 이때 한 남자가 나서 자신에게 끝내주는 차가 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 차는 바퀴가 없다. 불완전한 차는 팔이 없는 퓨리오사의 몸과 겹친다. 달리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달릴 수 없는 차, 싸우기 위해 살아남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잃은 몸. 그러나 퓨리오사는 멈추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거대한 결핍마저 들이받으며 전진한다.
‘분노의 도로’에서 녹색의 땅으로 가려는 이유를 묻는 맥스에게 퓨리오사는 “구원받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그의 처절한 의지는 외부로 향하지 않는다. 타인을 구하거나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자신을 구하고자 멈추지 않은 것이다.
팔을 자르고도 살아남은 여자, 바퀴 없는 차를 타고 분노의 도로 위를 달리는 여자, 고향이 사라지고 몸이 망가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하는 여자. 퓨리오사는 결핍을 극복하지 않는다. 그는 결핍을 껴안은 채 질주하는, 혁명적인 영웅이다.
양민영 주짓떼라·‘운동하는 여자’ 저자
*액션 읽는 여자: 여성 주연 영화를 보며 여성의 시선으로 ‘싸우는 몸’을 발견하는 시간. 여성의 몸을 향한 협소한 시선을 확장하는 칼럼. 4주마다 연재.
자기방어 팁. 고립되기 전 저항하라
퓨리오사의 시련은 디멘투스의 부하들에게 납치당하면서 시작된다. 현실에서도 차를 이용한 납치는 피해자를 순식간에 고립시킨다는 점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 중 하나다. 이처럼 계획적인 납치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이뤄지므로 피해자가 방어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은 일반적으로 타깃을 물색하고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저항하는 피해자를 지치게 한 다음 범행을 저지르는 네 단계로 이뤄진다. 고립 이전에 자기방어를 시도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고립되면 외부에 도움을 청할 수 없고 가해자의 폭력에 대응하기도 어렵다. 고립되기 전이 자기방어의 골든타임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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