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병이다
권력에 대한 개인의 정보 공개 요구에서 출발한 ‘알 권리’범죄 확정 전, 연예인 사건의 선정적 보도 알리바이로 이용돼
‘박시후’라는 이름으로 포털 사이트 뉴스 면이 도배된 지 꽤 되었다. 고소, 그리고 맞 고소, 전 소속사 음모론과 새로운 소송, 고 소인과 피고소인이 반박 자료로 언론에 제 시한 카톡 메시지 전문, A양의 지인인 B양의 박시후를 향한 사과, 2년 전 A양이 유사한 사건에 연관됐다는 주장, 거짓말탐지기…. 우리는 이제 박시후 성폭행 혐의 사건을 둘 러싼 온갖 이야기들에 관해 별걸 다 안다.
아직 기소 전의 사건이다. 이제 겨우 경찰 조사 과정이 끝을 보았다. 그러나 언론 보도 는 일찍부터 이니셜이 아닌 박시후의 실명을 공개했다. 파장이 커지고 검증 없는 추측성 기사가 쏟아지자 고소인이나 피고소인들도 자처해서 카톡 자료를 공개하는 등 여론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애썼다. 연예계뿐만 아 니라 정치·사회 전반의 논란들은 사실 가십 의 형태로 대중에게 소비된다. 이러한 가십 을 입에 담으며 흥분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과시욕에 심취해 있다. 기소 전이든 후든, 단 지 소송이나 논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확 정적인 범죄자로 치부한다. 조회 수를 위해 선정적인 기사를 대량 생산하고 유포하고 때 로 조작하는 언론매체들은 차고 넘쳐난다.
이러한 행태를 들여다보면 전가의 보도처 럼 등장하는 말이 ‘국민의 알 권리’다. 국민 의 알 권리를 위해 이렇게 개인적이거나 확 실하지 않은 선정적인 정보도 알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헌법에 ‘알 권리’에 대한 명문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알 권리라는 개념은 정부나 자본권력이 비대해져 개인이 특정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등 장했다. 개인이 특정 사안에 대한 판단을 내 리기 위해 정부나 기업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정보공 개 청구권이 여기에 속한다. 그들의 카톡 메 시지와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는 별다른 상 관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그걸 왜 알 아야 하나. 공해다. 되레 ‘모를 권리’를 주장 하고 싶어진다. 사회에는 엄연한 법체계가 존재한다. 판단은 법적 판결 이후 이루어져 야 마땅하다.
얼마 전 한 매체에서 ‘연예인의 성폭행 피 소 보도는 국민의 알 권리에 속한다’는 대법 판례를 거론하며 선정 보도를 변명한 경우 가 있었다. 정확한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연 예인 주아무개씨 사건, 국가배상 청구 판결 문의 맥락을 축약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 은 강간치상 혐의로 재판이 진행되다가 합의 이후 치상 부분이 부정되면서 강간으로 소 송 내용을 바꾸려니까 강간은 친고죄이고 이 미 합의가 된 상황이라 결국 대법원에서 무 죄취지 공소기각이 된 사례였다. 그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사건의 판결문에 등장한 저 맥락을 명확한 ‘판례’로 인식하는 건 문제가 있다. 당시 주씨가 고소인과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청구한 민사 손해배상 청구 에서 승소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음증을 설명하는 ‘피핑 톰’이라는 일화 를 기억할 것이다.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백 작의 과도한 세금을 무마하기 위해 그의 아 내 고디바 부인이 알몸으로 말에 올라탄 채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주민들은 부인의 숭 고함을 존경하는 차원에서 커튼을 내리고 집 안에 틀어박혔다. 그러나 재단사 톰만은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부인을 훔쳐보았다. 여기 흔히 간과되는 마지막 결말이 있다. 톰 은 눈이 멀었다.
허지웅 영화평론가
그의 혐의는 경범죄가 아니지만
공권력의 ‘위력’을 증명할 필요 있을 때 잘 터지는 연예인 사건‘4대악 말소’ ‘경범죄 개정’ 시기, 오비이락처럼 터진 사건의 효과[%%IMAGE3%%]
현시점에서 박시후 사건은 유명 연예인이 연루된 성폭력 진실 논란인 게 맞다. 누가 거짓말하는지, 경찰이 잘 가려내야 할 것이 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가 법적인 처벌을 받 는 것은 당연한 일. 약자를 상대로 한 강자 의 폭력은, 성폭력을 포함해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사법적인 처리는 물론이고, 사회적인 징계가 마땅하다. 이런 공통의 판단에 이의 를 걸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테다. 그렇기에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려야 하고, 당사자가 아닌 우리는 차분히 그 추이를 지켜보면 된 다. 그렇다. 일반 시민독자의 몫은 딱 여기 까지다.
그 이상의 과잉된 몰입이나 섣부른 판단 은 금물. 수준에 맞는 정도의 반응만 보이면 된다. 더 많은 재미를 기대하거나 관심을 기 울이는 건 피해야 한다. 자칫 이상한 대중여 론 조작의 회로로 빨려들 수 있다. 사회적으 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도덕공황 유발→ 공권력 강화’의 덫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한 자충수다. 또 다른 연예인들, 유명 헤 어디자이너 등이 연관된 ‘마약’ ‘성폭력’ 사건 이 줄줄이 터지고 있다. 국가(공)권력이 ‘사회 악 척결’ 구호를 외치고 ‘경범죄 처벌’ 법안을 내놓은 시점에 맞춰서다.
정치(공학)적으로 현 사태를 읽어내야 하 는 이유다. 문맥에 비춘 사건의 비판적 독 해. 사실 연예인들은 늘 단골 메뉴였다. ‘강 력한’ 국가 법 집행, ‘엄정한 공권력’ 행사, 그 리고 ‘단호한 사회악 처벌’의 모범 케이스. 죄 를 묻고 벌을 주는 국가의 훈육권력을 효과 적으로 가시화하고 일반에 주입시킬 절묘한 학습 소재. 연예인 사법 처리를 통해 국가권 력은 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치안단속의 스 리쿠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얼마나 편리한 가? 연예인들은 국가권력의 문화통치를 위 해 선거 때는 홍보선전의 도구로, 그리고 지 금과 같은 타이밍에는 치안 스테이트 조성의 채널로 적극 이용된다.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이번 정권 들어 새롭게 구사되는 방식도 아니다. 어느 때나 유용하게 쓰이던 카드고, 현실정치에서 반 복돼온 낡은 레퍼토리다. 연예인의 정치도구 화. 선거의 시간에 그치지 않는다. 일상적 시 민사회에서도 통용된다. 국가권력이 편의적 으로 가져다 쓰는 통치의 테크닉, 치안의 기 술. ‘사회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정권, ‘법질 서’를 확립하겠다는 국가는 항상 연예인에게 관심을 둔다. 특히 정권이 아래로부터의 도 덕적 지지, 즉 헤게모니를 끌어올리려 할 때, 늘 툭툭 튀어나오는 게 연예인 관련 스캔들 이다. 입지가 불안해진 검찰이나 경찰 또한 자신의 정당성 확립을 위해 연예계를 예의 주시한다.
그게 한국 권력통치의 후진 양상이고 한 국 연예계가 처한 우울한 비극이다. ‘4대 사 회악 말소’와 ‘경범죄 처벌’을 내세운 정권의 출범과 때를 맞춘 논란의 구성. 나쁜 한 연 예인 혹은 그렇고 그런 연예계의 일로 비난 하고 궁금해할 텐가? 이슈 전후의 정치적 문 맥, 여론 제조의 공학적 패턴이 핵심이다. 사 건을 터뜨리는 쪽의 정치적 이해관계, 뉴스 에 홀리다보니 빚어질 통치의 효과성을 짚어 봐야 한다. 그럴 때만 선정적 뉴스에 담긴 중 대한 뉘앙스가 의미심장하게 그 정체를 드러 낼 것이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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