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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형사사법 최고!

등록 2012-11-13 18:23 수정 2020-05-03 04:27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금 대한민국은 7세기 탐라국 아니야. 남북이 분단되어서 범죄자가 도망치려면 밀항밖에 도리가 없는 사실상의 섬나라라는 점을 빼면, 21세기 대한민국과 7세기 탐라국의 공통점이 뭐가 있겠냐? 탐라국은 마을 원님이 수사하고 원님이 기소하고 원님이 재판하고 원님이 형을 집행하는 나라지만 대한민국은 엄연히 수사·기소와 재판이 분리된 나라지. 인터넷도 발달했어. 형사재판에도 인터넷이 활용돼. 정보가 빠르게 오고 가지. ‘수사·기소-재판-벌금’이 한 방에 효율적으로 처리돼. 조국의 형사사법에 자부심을 가지란 말이야. 생각해봐. 전세계에 200개 넘는 국가가 있는데 나라 경제 규모나 국민소득이 전부 15등 안에 들어가는 게 대한민국이란 말이지.

이건 내 친구 얘기야. 차는 주말에만 모는 주제에 병×같이 음주운전에 걸렸어. 맥주 500㎖ 두 잔 마시고 정확히 1시간30분 뒤에 몰았는데 혈중 알코올 0.051%가 나와버렸다는군. 정신은 은화처럼 맑은데 어쩌겠나. 걸린 장소는 경기도였어. 돌이켜보면 한국 형사사법의 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고 그 친구는 회상하더라고. 그 민주성과 효율성! 음주측정기 마우스피스는 청결했고, 민주경찰은 깍듯했으며, 단속당한 내 친구를 위해 대리운전 기사가 기다리는 근처 전철역까지 승용차를 대신 운전해주기까지 했다는군. 정확히 이틀 뒤 경기도 모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어. 내 친구가 조사받기 편하도록 주거지 관할 경찰서로 사건을 이관해주겠다는 친절한 설명.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집 근처 경찰서 교통조사계에서 전화가 왔대.

법 없이도 살 내 친구는 잔뜩 쫄아서 경찰서에 갔는데 1분 만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구만. 봉지커피도 그냥 ‘맥×’이 아니라 프리미엄 아라비카 원두향이 첨가된, 탤런트 공유가 선전하는 제품이었다는. 음주운전도 엄연히 범법행위라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해야 했지. 경찰서 단말기가 ‘형사사법포털’에 연결돼 귀찮게 종이에 끄적일 필요도 없었다고 하더군. 인터넷으로 사건 처리하는 것에 동의하는지 묻는 ‘전자적 처리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는군. 사인도 마치 신용카드 결제할 때처럼 전자펜으로. 조사는 깔끔했고, 정확히 그로부터 한 달쯤 뒤 친절하게 문자가 왔어. 언제까지 어디에 얼마의 벌금을 납부하라는 문자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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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BBK 특검팀이 2008년에 ‘다스’ 비자금이 조성된 사실을 알고 덮은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야. 다스는 이명박 대통령이 실제 소유주라는 의혹이 일었던 금융회사지.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2008년 BBK 특검이 꾸려졌어. 판사 출신 정호영 변호사(사진)가 특검으로 수사에 나섰지. 11월9일치 1면을 보면, 당시 특검팀은 2003~2008년 다스에서 130억~150억원의 비자금이 조성된 사실을 밝혀냈지만 그냥 덮었다는군. 기소도 안 했고 검찰로 사건을 넘기지도 않았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 벌금 100만원짜리 음주운전 사건이 경기도 경찰에서 서울 경찰로 이관되는 데 일주일이 걸리니까, 그 비율로 계산하면, 비자금 130억원짜리 사건이 특검에서 검찰로 넘어가는 데 9만1천 일이 필요하지. 290여 년이 필요한데 불과 4년 만에 언론에 드러났으니까 얼마나 빠르냐. 조국의 형사사법 최고!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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