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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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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특검 아들의 커리어 관리법

등록 2012-08-28 17:16 수정 2020-05-03 04:26
조준웅 전 삼성 특검. 한겨레 류우종

조준웅 전 삼성 특검. 한겨레 류우종

아, 그래도 10년째 버티고 있구나. 갑자기 나 자신이 대견스러워요. 섬 아저씨는 고향 섬에 잘 안 가요. 입사 동기 기자들 중에 2주씩 휴가 써본 친구도 있지만, 남의 얘기죠. 휴가는 딱 일주일만. 섬 아저씨도 휴가 길게 쓰면 좋다는 거 알아요. 왜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러다 책상 없어지면? 일도 못하는데. 존재감도 없는데. 알라 뷰 파더! 이름이라도 이렇게 안 지어주셨으면 영화 교실 뒷자리 학생처럼 아무도 기억 못하는 사람 될 뻔했어요. 더 열심히 버텨야죠. 다달이 12만6670원씩 내는 내 국민연금의 결말도 궁금해요. 사랑해요 책상. 사랑해요 직장.

알아요, 저자세라는 거. 이게 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그래요. 섬 아저씨 판단 미스예요. 2003년에 너무 마음이 급했어요. 그깟 월급 몇 푼이 뭐 중요하다고. 2012년까지 집에서 ‘경력’ 쌓고 ‘삼성전자’에 과장으로나 들어갈 걸 잘못했어요. ‘한겨레신문’은 섬 아저씨가 얼마나 전문인력인지 알아주지 않아요.

취업준비생 여러분 저 같은 실수 하지 마세요. 커리어 관리법 가르쳐드릴게요. 잘 듣고 따라해보세요. 일단 10년간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리갈 마인드’를 쌓으세요. 아서라. 제 말 오해 마세요. 그러다 덜컥 사시 붙으면 큰일 나요. 통 크게 마음먹어야 해요. 기냥 1천 명 변호사 중에 ‘원 오브 뎀’밖에 안 돼요. 그건 글로벌 커리어 관리가 아니에요. 그 뒤 2년간 공익근무를 하세요. 나만 잘살믄 먼 재민겨?, 라는 말 잊지 마세요. 공익적 삶을 고민하세요. 공익 마인드를 배울 수 있어요. 글로벌 기업은 사익 추구만으로 입사할 수 없으니까요.

자, 이 정도면 리갈 마인드와 공익 마인드를 어느 정도 갖췄어요. 이제 어학 실력이에요. 세계가 한 지붕인데 ‘통셰’(同學)들을 사귀어야죠. 세계의 공장 중국을 주목하세요. 밤문화도 현란…(으응?)하다고들 하는데 거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를 하세요. 워 스 한궈런! 워 스 한궈런! 워 아이 짜지앙미엔! 한국은 유구한 소중화의 나라예요. 중국어 전문인력이 되기에 1년이면 충분해요. 그리고 삼성전자 중국법인 인사노무팀 과장급 매니저 입사지원서를 쓰세요. 이걸로 끝! 그럼 입사 2년4개월 뒤 한국 본사에 돌아와 ‘과장’으로 일하실 수 있어요.

취업 관련해 더 궁금한 게 있걸랑 조준웅(72) 전 삼성 특검의 38살 된 아드님께 여쭤보세요. 정확히 제가 소개한 커리어 관리로 글로벌 삼성전자에 입사하셨어요. 아니면 8월20일치 10면 ‘조준웅 삼성 특검 아들, 비자금 재판 뒤 특채로 삼성 입사’ 기사를 보세요. 오해 마세요. ‘한걸레’의 흔한 삼성 비판 기사 아니에요. 취업 안내 기사거든요. 아, 맞다. 하나 빠뜨렸네요. 커리어 관리의 시작은 삼성 특검 했던 아빠 만나는 거예요. 이런 망할. 커리어 관리에 38년이 걸리는 거냐, 고 지레 포기하지 마세요. 다시 태어나면 되잖아요. 이도저도 아니면 나처럼 이름이라도 특이하든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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