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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매인붕, 전두환

부글부글
등록 2012-03-21 15:29 수정 2020-05-03 04:26

부글부글 사전
매인붕(罵引鵬)
1. 전설적인 새 중 가장 큰 새인 붕새의 유사종. 욕할 매, 끌 인, 붕새 붕. 길이가 3천 리이고 그것을 한 번 치면 9만 리를 나는 붕새의 날개는 퇴화돼 없음. 대신 사람의 말을 할 줄 알며, 한 번 말을 꺼냈다 하면 3천 리 방방곡곡에서 분노를 살 만큼 욕을 먹는 전설적인 주둥이를 갖고 있음.
파생어 맨붕. 주의어 멘붕. 멘붕은 멘탈붕괴의 줄임말이라 알려져 있으나 이는 발음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 멘탈붕괴는 매인붕의 서양종인 멘탈붕이 원인 모를 이유로 정신줄을 놓은 뒤 요괴가 된 것을 일컫는 말로 멘탈붕-요괴(mental鵬-妖怪)의 줄임말임.
2. 현실에서는 입만 열었다 하면 욕을 먹는 자 가운데 으뜸인 자를 두고 매인붕이라고 일컬음. 끈질긴 생명력으로 멸종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음.

사진공동취재단

사진공동취재단

매인붕(맨붕) 전두환씨가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궁민 여러분” 1980년대 한마디만으로도 그는 3천 리를 욕으로 들끓게 하는 무서운 공력을 가지고 있던 자다. 과거 “내 재산 29만원”처럼 잊혀질 만하면 나타나 자신이 매인붕임을 각인시켜왔다.

전씨의 “민주주의를 했다”는 한마디는 역시 매인붕이라는 칭호를 아무나 받는 게 아님을 각인시켰다. 매인붕의 한마디로 부적절의 상징 클린턴이 졸업했던 미국 예일대는 단숨에 듣보잡 수준이 됐다. 전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한 예일대 경영학석사(MBA) 27명과 전씨 셋째아들의 친구 신아무개 예일대 교수는 “아차”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인터넷의 세계에서 그들은 매인붕의 먹잇감이 됐다.

아차 한 건 예일대생만이 아니었다. 종로 1번지의 현 주인인 이씨도 무릎을 쳤을 게 분명하다. “내가 해봐서 다 알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등의 유행어로 차곡차곡 이력을 쌓으며 매인붕의 영광을 예상했던 그는 전씨의 위력에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이씨는 ‘주어 없음’(예를 들면, BBK를 설립했다는 문장)이라는 기상천외한 신공, ‘말을 하지 않음으로 말한 것보다 더 큰 욕을 끌어들이는’ 주화입마를 각오한 무공 덕택에 이미 1번지 주인이 되기 전부터 차세대 매인붕임을 예고한 바 있었다. 하지만, 다음 기회에…. 매인붕의 자리,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매인붕의 건재함은 그 자체로 특종. 가 종편 JTBC의 단독 보도를 단독 보도라며, 스스로가 그 단독 보도를 단독 보도했다며 자찬하는 데 토를 달 자가 어딨을까. 전설의 만담 커플 장소팔, 고춘자를 넘어서는 ㅈ과 J의 만남, 앞으로를 기대한다. 매인붕을 붕붕 띄우며 그 역사를 함께할 만한 ㅈ과 J다. 그들이 전하는 매인붕 전씨의 주옷(주옥 아님)같은 말들을 조금 더 전한다.

“내가 모범적으로 (대통령직을) 한 번 하고, 후임 대통령은 5년씩만 하라고 했다” “(재임 시절 국정철학은) 권력 남용이 없는 사회가 돼야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사는 사회”.

정의사회 구현, 제5공화국. 대통령 전두환.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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