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측근·친인척 비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최근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박태규씨에게서 부산저축은행 퇴출 저지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경우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십수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해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대통령의 사촌형은 대통령을 팔아 ‘4대강 사업과 건설업에 투자하면 큰 이득을 볼 수 있다’며 3억원을 가로챘다고 고소를 당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대통령은 불같이 화를 냈다. “측근 비리라고 해서 비리가 나오고 있다. 소위 측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인간관계와 공직 생활을 구분하지 못해 일이 생겼다.” 어째 이상하다. 훈계조의 논평이다. 대선 캠프였던 안국포럼 때부터 함께해온 최측근이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데 자책도 반성도 사과도 없다. 사정이 이러니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이 ‘측근 비리’에 대처하는 청와대의 자세로 내세운 의 ‘반구저신’(反求諸身), 곧 ‘어떤 일이 잘못됐을 때 남 탓을 하지 않고 그 일이 잘못된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나간다’는 다짐이 공허할 수밖에. 대통령부터 자기한테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데, 누가 이 경구를 가슴에 새기겠는가.
대통령 측근·친인척 비리는 정권 초부터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 처사촌 김옥희씨의 공천 사기(2008년 8월), ‘4대강 사업 전도사’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알선수재(2009년 3월), 대통령의 후원자를 자처한 천신일 세종나모 회장의 알선수재(2010년 2월), 대선 경제공약 설계자인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의 ‘함바 게이트’ 연루(2011년 2월), ‘BBK 대책팀장’이던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의 부산저축은행 금품수수(2011년 5월), 김해수 전 청와대 정무1비서관의 부산저축은행 금품수수(2011년 6월)…. 갈수록 가속이 붙고 있다. 빙산의 몸체가 드러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한나라당 김문수 경기지사가 “이명박 대통령도 굉장히 징조가 좋지 않다”고 할 정도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역대 가장 깨끗한 정권” 따위의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자책이나 사과는 언감생심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셀프 탄핵’ 뒤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안철수 현상’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도 허무개그에 가깝다. “안철수 교수의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스마트 시대가 왔는데 정치는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 대통령한테 ‘우리 정치권’은 남의 동네다. 듣는 사람 가슴에 스산한 바람을 일으키는 신묘한 재주를 지녔다.
어떤 이들은 이를 일러 ‘방관자적 대통령’ ‘논평가적 대통령’이라 한탄하는데, 추가 해석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훈계하기를 좋아한다. 대통령은 안 해본 일이 없어 모르는 게 없다. 하여 일이 잘못되면 그건 다 ‘뭣 모르는 아랫것들 탓’이다. 무오류의 신적 존재다. 신하를 장기판의 졸 다루듯 하던 왕조시대 왕의 심리를 연상케 한다. 리더십 전문가인 바버라 켈러먼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교수는 나쁜 리더십을 7개 유형(무능·경직·무절제·무감각·부패·편협·사악)으로 구분했는데, ‘MB 리더십’은 이 가운데 몇 가지와 겹칠까?
가을비가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겨울이 머지않았다. 계절만 그런 게 아니다. 세계경제는 대불황 조짐을 보이고 있다. 두렵다. 그래도 대통령은 자신만만하다. “나는 대통령이 돼서 (경제)위기를 두 번이나 맞는다. 하지만 내가 대통령이면서 위기 두 번 맞는 게 다행이다.” 미국 방문 중 동포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썰렁개그다. 이제 그만 듣고 싶다. 지친다.
편집장 이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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