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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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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제주 민주공화국 탄생?!


사흘간의 독립전쟁과 좌충우돌 ‘유채꽃 혁명’…
무한재생 청정에너지 발견한 제주의 독립선언을 상상하다
등록 2011-04-15 11:44 수정 2020-05-03 04:26

김포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를 타는데 나도 모르게 여권을 내밀었다. 항공사 직원이 피식 웃었다. “외국인이세요?” 멋쩍은 일이지만, 이런 실수를 나만 한 건 아닐 게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언젠가 에서 이런 뉴스를 내보낼지? “오늘 한반도 남쪽, 동중국해 북쪽 바다 위에 신생 공화국이 출범했습니다. 전날 벌어진 분리독립 투표에 93%의 높은 참여율을 보인 주민들은 91.4%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만약 유엔이 이 독립을 인정한다면 194번째 회원국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독립국가의 명칭은 ‘제주 민주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륨’이 발견됐다!

유럽 축구리그를 보다 보면 바스크나 카탈루냐 등지의 분리독립운동 이야기를 듣게 된다. 참 낯설다. 왜 저 사람들은 번듯한 나라를 둘로 쪼개려고 할까? 평생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온 나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한번 생각해본다.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이 있다면, 어디일까?

201×년 어느 날 제주대학교에서 긴급 기자회견이 열린다. 내외신 기자들 앞에 선 사람은 이어에너지(Ier Energy)의 양구종 박사. “오랫동안 기다려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지난해 서귀포 앞바다에서 발견된 신물질 ‘이어륨’(Ierium)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추장스러운 화석에너지, 공포의 핵 시대는 끝났습니다. 차원이 다른 열효율과 무한재생에 가까운 활용도를 지닌 청정에너지를 발견했습니다. 서귀포의 이어륨으로 매년 전세계 석유 소비량 4분의 1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전체에서 폭죽이 터져나왔다. 꿈에 그리던 산유국, 아니 그 이상의 독점적 에너지 자원국이 된 것이다. 전설의 섬 ‘이어도’에서 이름을 딴 ‘이어륨’은 칠레의 남극해, 오키나와 인근에서도 발견되었지만 순도와 매장량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경제지에서는 한국의 우수한 산업 기반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경우, 3년 내 1인당 국민소득 20만달러의 초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 주말 로또 판매량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외교부에는 한국으로 역이민을 신청하는 문의가 빗발쳤다.
섣부른 기대였다. 애초 남한 정부와 석유공사는 제주도의 신에너지 사업을 철저히 무시해왔다. 이 사업을 추진한 것은 정부에 등을 떠밀려 제주도로 본사를 옮겨온 몇몇 정보기술(IT) 업체, 일본계 민간자본, 그리고 아일랜드 유전개발회사의 컨소시엄이었다. 2011년의 대지진·쓰나미·방사능을 피해 일본인들이 대거 제주도로 이주해와 있었는데, 이들은 핵을 대체할 에너지라면 무엇이라도 좋다며 과감한 투자를 한 것이다. 남한 정부는 뒤늦게 이 사업에 막대한 세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내지의 소득이 2배 성장할 때, 제주도민의 소득은 15배로 뛰어올랐다.
제주도는 황금의 과실을 즐겼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완전 무상교육에 무상급식을 실현했고, 하버드·옥스퍼드 등 세계 최고 수준 대학들의 분교를 유치했다. 제주와 서귀포에는 초고층 빌딩과 호텔들이 줄을 이었고, 버즈 하루방 빌딩은 888m로 세계 최고층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 대규모 간척사업을 통해 건설된 알뜨르 국제공항이 인천공항 이용객의 절반을 가져갔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제주도와 내지 사이의 다툼이 본격화된다. 졸부가 되어 수도권의 땅과 건물을 사재기하는 제주도민에 대한 내지인들의 질투와 불만은 점점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피의 말머리’ 사건과 ‘3무 선언’

‘피의 말머리’ 사건은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K리그 결승 1차전에서 터졌다. 제주 유나이티드 FC가 막대한 자금을 들여 메시, 드로그바, 호날두 등의 슈퍼스타를 영입해 K리그 전승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전반전이 지났을 때 이미 7 대 0으로 제주가 앞서자, 서울 팀의 팬들이 제주 응원석에 목 잘린 말머리를 집어던졌다. “섬으로 돌아가서 말고기나 씹어!” 양쪽의 몸싸움이 시작되었는데, 경찰의 호위 속에 제주 팬들이 일방적으로 구타당하는 형국이었다. 결국 3명이 죽고 67명이 중상을 입는 대참사. 전세기로 알뜨르 국제공항에 옮겨온 주검은 검은 말총머리 두건을 쓴 자들에게 인계되었다. ‘검은 말총단’이라는 제주 독립운동 게릴라였다.
남한 정부의 강경책이 이어졌다. 중앙정보부 제주지부는 제주대학교를 급습해 ‘탐라문화연구회’의 성원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및 내란죄로 구속했다. 반합법적인 활동을 벌이던 제주 독립연맹에 대한 검거도 시작되어 고유채 위원장을 비롯한 조직원들이 체포되었다. 이들을 내지로 실어가려던 경찰의 움직임은 제주 항만노조의 ‘불복종 선언’으로 저지되고, 집권당 소속인 조재수 도지사조차 ‘제주의 일은 제주에서’라며 이들의 이송을 반대했다. 결국 남한 정부는 해군 함정을 동원해 이들을 실어가는데, 조직원 김귤밭이 완도 해상에서 떨어져 죽는다. 해녀들에 의해 주검이 건져진 뒤 고문이 자행되었음이 밝혀지고, 제주 전역에서 추모와 독립을 위한 시위가 벌어졌다. 토착 경찰과 제주 출신 공익요원들까지 중앙정부의 명령에 불복종하게 된다.
사흘간의 ‘제주 독립전쟁’은 21세기에 벌어진 가장 짧고도 강렬한 전사로 기록되고 있다. 애초에 제주의 독립 시도는 남한 정부와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으로 즉시 통제될 것으로 보였다. 제주 독립 세력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옛 소련의 핵잠수함과 아일랜드공화국군(IRA), 바스크 출신의 용병들을 배치했지만, 군사력은 10 대 1 정도로 열세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남한군이 제주도 전역을 에워싸자, 중국과 일본의 함대가 자국민과 영해 보호를 이유로 대치했다. 게다가 미군이 북한의 도발 위협을 이유로 남한 정부의 무력 제압을 은근히 반대하고 나섰다. 뒤에 밝혀진 바로는 제주 자본가들이 수조달러의 미국 채권을 매각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미 해군의 강정 해군기지 사용을 허가한다는 당근을 제공했다고 한다.
여기에 전세계 문화예술인들의 제주 독립 지지 선언이 이어졌다. 제주도는 경제 부흥 이후 ‘문화 망명’을 적극 추진했다. 각국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제주도로 이민올 것을 권했다. 구겐하임 우도, 테이트 삼방산 등 21세기 건축사를 빛낸 갤러리들이 곳곳에 자리잡았고, 탐라 랠리 등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도 끊이지 않았다. “제주 독립전쟁은 21세기의 스페인 내란”이라며 의용군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강경 진압에 적극 찬성하던 내지인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제주 독립연맹이 내지인들을 향해 발표한 3무 선언이 결정적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기도 없다. 게임도 없다. 야동도 없다.” 연맹은 제주도에서 해남으로 연결되어 남한 전력의 4분의 3을 공급하던 고압 직류송전선(HVDC)을 끊었고, 제주도의 IT 업체 서버를 통해 공급되던 온라인 게임, 그리고 아시아 전 지역을 포괄하는 야동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다. 제주도의 ‘땀나 밸리’는 도박·섹스와 관련된 인터넷 업체들의 본거지로, 전설적인 야동 조달자인 김본좌의 동상이 서 있다.

혁명이 오래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울돌목에서 벌어진 21세기 명량해전은 이 전쟁에서 유일하게 벌어진 전투다. 해전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진도대교 위에서 벌어진 교전인데, 양쪽 부대장은 동포끼리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육탄전을 펼치기로 했다. 이때 남한군이 비겁하게 진돗개 부대를 풀자 제주군은 몽골계 이민들로 구성된 기마병으로 맞섰다. 치열한 전투 끝에 개 7마리와 말 5마리가 죽었고, 병사들은 이를 나누어 섭취한 뒤 평화로운 방식으로 전쟁을 마무리해달라고 상급부대에 청했다.
결국 남한 정부의 미온적 태도 속에 독립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가 이루어지고, 제주 민주공화국이 탄생했다. ‘유채꽃 혁명’이라 불리는 이 꿈같은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제주국은 ‘문화 망명’을 주장하며 몰려드는 각국의 어중이떠중이들로 몸살을 겪었고, 환락에 물든 국민을 다스리기 위해 싱가포르보다 강경한 도덕 정치를 펼쳐야 했다. 결국 10년 뒤에 재통합을 위한 투표가 시행되었고, 67%의 찬성으로 대한민국의 자치령으로 복귀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내지에 갈 때 여권을 챙겨가는 게 귀찮아서’였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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