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에 관해 우리 모두는 약자다. 특히 ‘공산품’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은 대중 정서가 된 지 오래다. 이제는 식품을 살 때 제조사나 가격, 유통기한만 볼 게 아니라 원재료 표기까지 꼼꼼하게 봐야 할 지경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는 더 유의해야 한다. 각종 이물질 검출과 멜라민 파동 등으로 과자는 백해무익한 불안 식품이 됐다. 과자가 신문 사회면을 장식할 때마다 엄마들은 집에서 간식을 만드느라 지치고, 생협의 과자를 구입하느라 허둥댔다. 최근에는 이런 소비자의 불안 심리를 파고들어 합성첨가물 등을 쓰지 않는- 때때로 유기농을 내세운- 프리미엄급 웰빙 과자들이 늘었다. 오리온 ‘마켓오’ ‘닥터유’, 롯데제과 ‘마더스 핑거’, 해태제과 ‘슈퍼푸드’ 등이 대형마트에서 편의점까지 과자 코너마다 눈에 띄게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조금은 비싼 이 과자들, 믿고 먹어도 될까? 대답은 과자 포장지 옆면과 하단에 쓰인 원재료 표기에 들어 있다.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자세, 영양과 맛의 균형을 맞췄다는 과자들을 대할 때도 필요하다.
마침내 믿고 먹을 만한 과자가 나온 것일까? 제과시장에서 유해성분은 줄이고 맛과 영양은 높였다는 ‘프리미엄’ 과자들의 판매가 늘고 있다. 가격은 일반 과자보다 비싸지만 국산 재료를 사용하고 합성첨가물도 뺐다는 과자들이 소비자의 지갑을 열고 있다. 오리온 ‘닥터유’ ‘마켓오’, 해태제과 ‘슈퍼푸드’, 롯데제과 ‘마더스 핑거’ 등이 대표적인 브랜드들. 각종 이물질 검출과 멜라민 파동으로 조용할 날 없던 제과업계에 모처럼 해가 반짝 떴다.
“안 먹이려 했는데 애들 때문에…”주부 김정연(29)씨는 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과자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딸 예은(4)이에게 먹일 과자를 고르기가 쉽지 않아서다. 김씨는 “멜라민 파동까지 겪으면서 과자는 안 먹이려고 했는데 마트에 올 때마다 애가 떼를 써서 할 수 없이 과자를 사게 된다”며 “아이들의 건강을 고려했다고 광고하는 제품들을 주로 고른다”고 했다.
직장인 이영민(38)씨도 프리미엄급 과자를 즐겨 먹는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비싼 가격에 비해 양이 적다는 것. 이씨는 “야근할 때마다 찾게 되는 야식이니 여성 직장 동료들도 가능하면 재료가 믿을 만하고 칼로리가 낮은 제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식품업계가 웰빙 트렌드를 좇은 지는 오래다. 특히 2006년 3월,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한국방송 ‘과자의 공포, 우리 아이가 위험하다’편이 방영된 뒤 제과업계는 바닥까지 떨어진 매출을 끌어올리느라 안간힘을 썼다. 심혈관계 질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트랜스지방을 0%로 낮추고 천연색소를 사용하는 등 건강을 해치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롯데제과 홍보팀 안성근 과장은 “지난해 멜라민 파동을 겪으면서 소비자가 과자의 재료뿐 아니라 성분까지 꼼꼼히 따지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최근에는 나트륨을 줄이고 비타민과 철분, 칼슘 등의 영양소를 보강한 제품들은 소비자 반응도 빨리 온다”고 전했다.
이런 흐름 속에 각 제과사가 내놓은 프리미엄 제품은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2008년 제과시장 총매출 규모는 1조9천억원. 지난해 12월 프리미엄 시장 개척에 나선 오리온은 매출 5천억원을 기록했고, 이 중 프리미엄 과자 매출이 400억원을 차지했다. 오리온 홍보팀 황창희 차장은 “출범 4개월 만에 이토록 큰 성과를 보일 줄은 몰랐다”며 “올해는 1천억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잇따라 프리미엄급 과자를 출시한 롯데제과와 해태제과도 새 브랜드에 거는 기대가 크다. 출시 한 달 만에 롯데제과는 10억원, 해태제과는 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해태제과 홍보팀 유리영씨는 “극심한 불황인데도 소비자들은 믿고 먹을 수 있는 제품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 같다”며 “올해는 더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프리미엄급 브랜드도 점차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과업체들은 이런 프리미엄 제품들이 국내산 원료를 사용하거나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줄이는 등 아이들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과자라는 점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국내산 100%’ ‘NO 밀가루’ 등의 선전 문구들이 먹을거리 앞에서는 늘 약자일 수밖에 없는 소비자의 불안한 마음을 파고들었다. 한편으론 “몸에 좋은 과자는 맛이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애를 썼다. 제과업체들은 텁텁하고 푸석한 느낌을 주는 곡물 크래커, 담백한 대신 씹는 맛이 적은 감자칩 등 영양을 위해 맛을 포기했던 기존 제품들과 달리 “맛과 영양이 모두 풍부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브랜드별 차별화 전략도 눈에 띈다. 오리온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마켓오는 “0% 합성첨가물, 자연이 만든 순수한 과자”를 표방한다. 출시된 제품은 ‘워터 크래커’ ‘브레드칩’ ‘리얼 브라우니’ ‘순수감자 프로마즈’ 등 총 4종. 합성첨가물, 쇼트닝, 마가린, 색소 등을 사용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성분 표시를 보면 광고대로 제과제품 생산 공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합성착색료, 합성팽창제, 산도조절제, 향미증진제 등의 합성첨가물은 찾아볼 수 없다.
오리온의 또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인 닥터유는 지난 2월 출시 1년을 맞았다. 전 서울대 가정의학과 교수 유태우 박사와 공동으로 개발한 이 제품은 가공식품도 건강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과일 담은 콩을 오븐에 통째로 구운 고단백 영양바’ ‘100% 순수 통밀로 만든 다크 초콜릿 케익’ ‘3가지 곡물의 새싹을 틔워 만든 풍부한 식이섬유 크래커’ 등 재료와 가공 과정을 도드라지게 설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롯데제과는 프리미엄 브랜드 출시 전 ‘보통 엄마’들을 대상으로 심층조사를 벌인 뒤 이를 제품 생산에 반영했다. 조사에 참여한 소비자들은 밀가루, 첨가물, 알레르기, 영양과부족 등을 가장 염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는 이를 고려해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국내산 쌀로만 과자를 만들었다. 합성첨가물 4종을 제외하고 나트륨을 줄이는 대신 칼슘을 보강했다. 엄마들의 마음을 담은 ‘맞춤형 건강 안심 과자’라는 점을 마케팅에서 강조했다.
해태제과는 장수식품으로 주목받는 ‘슈퍼푸드’를 과자 성분에 담아냈다. 브로콜리, 단호박, 아몬드 등 슈퍼푸드로 불리는 14가지 식품으로 과자를 만들었다. 홍보팀 유리영씨는 “영양소를 챙기면 맛이 밋밋해지는 프리미엄급 제품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연의 달콤함을 재료에서 맛볼 수 있는 슈퍼푸드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프리미엄급 웰빙 과자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어떨까? 마이클럽 등 주부 사이트와 디시인사이드의 과자갤러리 등을 보면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비싼 게 흠이지만 맛이 좋고, 믿을 만한 것 같다”는 평이 아직까진 많다. 제품 출시 기간이 짧아서인지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소비자 불만 사항도 아직까진 없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 속에서도 가격에 대한 저항감은 센 편이다. 최소 1500원부터 최대 4000원대까지 책정된 고가의 가격은 소비자의 선택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업체 관계자들은 “나쁜 건 빼고 좋은 건 더 넣다 보니 고가가 됐다”고 말하다. 하지만 원재료의 비용이 얼마인지 소비자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거품이 낀 가격이 아닌지 의심되는 건 당연하다. 마켓오와 슈퍼푸드의 경우는 ‘오픈 프라이스제’(최종 판매업자가 제품 가격을 결정하여 판매하는 방식)로 판매하면서 편의점과 마트마다 가격이 몇백원씩 차이가 나기도 한다. 디시인사이드의 한 누리꾼은 “권장 소비자 가격이 안 적혀 있어서 그냥 샀다간 계산 뒤에 깜짝 놀라게 만드는 비싼 과자”라고 평했다. 주부 이혜경(35)씨도 “한두 번 사다 보면 가계 지출에 부담이 돼 유해성이 적은 줄 알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며 “좋은 걸 먹으려면 부자가 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맛’ 표시 앞에선 첨가물 의심을비싼 값을 주고도 소비자들이 과자를 선택하게 만들려면 프리미엄 제품들이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업계 스스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어린이용 ‘닥터유 골든키즈’는 지난 2월에 멜라민 검출 소동에 휘말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조사 결과 멜라민 미검출로 발표돼 판매 금지 조치는 풀렸지만 아직까지 신뢰를 얻지 못한 상태다. 홍보팀 황창희 차장은 “현재 닥터유 판매량은 주춤한 상태로 소동이 있기 전의 매출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프리미엄급 과자를 너무 믿어선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의 저자인 안병수씨는 “기존 제품보다 진전되긴 했지만 ‘합성첨가물 제로’ 등이 표기됐다고 무조건 믿고 먹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실제로 과자들의 원재료명을 보면 이름도 어렵고 먹어도 될지 아리송한 성분들이 들어 있다. 마켓오 ‘순수감자 프로마즈’에는 ‘고다치즈맛 분말’이 표기돼 있다. 닥터유 ‘3가지 곡물의 새싹을 틔워 만든 풍부한 식이섬유 크래커’에는 합성착향료(그래함크래커향)가, 마더스 핑거의 ‘라이스가 좋은 초코쿠키’에는 쇼트닝(대두), 산도조절제 등이 들어 있다. 슈퍼푸드 ‘단호박으로 만든 스낵’에도 복합조미식품(단호박맛 시즈닝), 합성착향료(호박향) 등이 표시돼 있다. 안병수씨는 “불법은 아니지만 법의 허점을 이용해 향료나 조미료를 섞을 수 있다”며 “‘무슨 맛’이라고 성분표시를 하면 첨가물을 섞는 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진짜 웰빙 과자가 되려면 사용이 허용된 화학물질이나 합성착향료도 쓰지 않는 진정한 ‘무첨가’에 도전해야 한다. 안병수씨는 “유난히 풍미가 강하고 자극적인 맛이 난다면 의심해봐야 한다”며 “웰빙 과자를 찾는다면 맛에 얽매이지 말고 생협에서 파는 과자를 먹는 게 낫다”고 말했다.
프리미엄급 웰빙 과자들이 제과업계의 ‘반짝 스타’가 될지, 아니면 각종 사건으로 신뢰를 잃은 제과업계의 구원투수가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분명한 건 프리미엄급으로 가치가 분류되는 것과 달리 프리미엄 제품의 기준과 요건을 감시할 곳이 따로 없기 때문에 업체 스스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점이다. 닥터유 골든키즈의 멜라민 검출 소동은 건강을 생각해야 할 먹을거리에서 신뢰를 잃으면 의혹일지언정 소비자가 얼마나 냉정하게 등을 돌릴 수 있는지를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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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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