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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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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고위공직자 되기 어려운 이유


부동산·전과·이중국적, 인사 대상자가 넘어야 할 세 가지 늪
등록 2009-03-06 10:54 수정 2020-05-03 04:25

“검증이 가장 쉬운 직종은 공무원이다. 행정자치부에 재산등록 서류를 비롯해 자료가 많이 축척돼 있는데다, 국장급 이상으로 장·차관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 관리를 한다. 2~3일이면 검증을 마칠 수 있다. 가장 어려운 직종 중 하나가 언론인이다. 언론인에 대한 자료는 논란에 휘말릴까봐 어느 기관이든지 제대로 축적을 해놓지 않아 검증에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문제가 많이 드러나는 직종 중 하나는 교수다. 교수들은 학교에 요청하면 검증 자료를 챙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외국에서 공부를 해, 아이들의 이중국적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또 부동산과 병역 등에서도 문제가 드러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여기에 최근 들어선 논문 표절이 새로운 검증 가이드라인이 되는 바람에, 교수를 고위직에 등용하는 건 훨씬 위험부담이 커졌다.”

이명박 정부 첫 조각에는 교수 출신이 유독 많았다. 교수 기용은 인사에 활력을 불어넣지만 검증 측면에선 위험부담이 많다.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정부 첫 조각에는 교수 출신이 유독 많았다. 교수 기용은 인사에 활력을 불어넣지만 검증 측면에선 위험부담이 많다.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부동산’ 가장 넘기 힘든 산, 다음은 음주운전

정권에 관계없이 청와대에서 인사 검증에 참여했던 복수의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다. 이들은 부동산과 전과, 그리고 이중국적 문제를 ‘고위공직자들이 넘어야 할 세 가지 늪’이라고 표현한다. 갑작스레 장관을 교체할 때 또는 장관 후보자가 뜻하지 않은 결격사유로 낙마했을 때, 대개 관료 출신으로 후임을 정하는 건 상대적으로 단시일 내에 검증을 끝낼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반면에 교수와 언론인의 기용은 인사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만 검증 측면에선 위험부담이 크다. 이념 성향에 관계없이 정권들이 초기엔 교수 출신 인사들을 많이 기용하다가 후반기로 갈수록 줄어드는 건 이런 이유 탓이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첫 청와대 수석비서관 진용이 교수 일색으로 구성되면서 이런저런 구설에 오른 게 대표적이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 들어선 한 가지 항목이 추가됐다. 논문 표절 또는 논문 중복 게재 문제다. 교수 출신 인사에 대한 검증의 벽이 더 높아진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임기 말에 공개한 고위공직자 검증 결과 통계는 시사적이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중 고위공직자 1만6849명을 검증해 그중 452명을 탈락시켰다고 밝혔다. 탈락자가 비율로는 2.68%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검증 절차’를 밟은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다. ‘공직 후보자 리스트’에 올리기 전에 비공식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에서 탈락한 인사들까지 합치면 탈락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452명을 탈락 사유별로 보면, 전과가 171명(37.8%)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부동산(101명·22.3%), 병역(46명·10.2%), 징계(37명·8.2%), 기타 사유(97명·21.5%) 순이다. ‘전과 경력’ 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음주운전 사례가 71명(전체 탈락자의 15.7%)인 점을 감안하면, 단일 항목으론 부동산이 고위공직자들로서 가장 넘기 힘든 산인 셈이다. 부동산 검증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지난호에서 살펴봤다. 그러면 병역과 전과는 어떤 검증 과정을 거칠까?

병역과 관련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병무청으로부터 병적 자료를 제출받는다. 공직 후보자와 아들의 병적 자료, 공직 후보자가 여성일 때는 배우자의 병적 자료까지 받는다. 그러나 실제로 병역 자체만으로 검증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병무청의 병적 기록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1980년 이전 기록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1980년 이전의 병역 사항은 ‘○○○으로 의병제대’라는 식으로 딱 한 줄만 병적 자료에 기재돼 있다. 그러니 공직 후보자가 “병에 걸려 제대했지만, 지금은 다 나았다”고 말해도 진짜인지 거짓말인지를 확인할 수 없다. 정부의 인사 검증 파트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어느 고위공직자는 ‘아이 오줌을 먹고 병이 깨끗이 나아서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국적’은 신고제, 고백 전엔 몰라

요즘 병역 문제는 이중국적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국적은 신고제이므로 스스로 고백하기 이전엔 공직 후보자 자녀의 이중국적 여부를 파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아들이 군복무를 할 나이가 되면 외국 국적을 버리고 입대를 하든지 아니면 한국 국적을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때 비로소 이중국적 여부가 드러난다. “이중국적을 파악하기 위해선, 우선 공직 후보자가 어느 나라에 체류했는지를 본다. 만약 미국에서 아이를 낳았다면, 그 아이는 거의 100% 이중국적자라고 보면 맞다. 성장한 아들이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우리 군에 입대한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택한다. 이런 경우 고위공직자들은 대개 ‘아들이 스스로 원해서 미국 국적을 택했는데 난들 어떻게 하겠느냐’고 해명한다. 그러나 그런 자녀들 가운데는 미국에서 대학·대학원을 마친 뒤 한국 기업에 취직하는 식으로 국내로 들어와 사는 경우가 왕왕 있다. 병역만 면제받고는 사실상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사회 지도층의 도덕성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부분이다. 어느 후보자는 ‘아들이 장기간 외국 생활을 했기에 미국 국적을 택했다’고 해명했는데, 출입국 현황을 살펴보니 미국서 살지 않고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면서 살았다. 병역 기피를 위해 수시로 가까운 일본을 들락날락한 것이다. 이 후보자는 검증에서 탈락했다.”(전직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

고위공직 후보자 가운데엔 과거의 전과 경력 때문에 탈락하는 사례도 의외로 많다고 한다. 경찰 전과 기록은 전산화가 잘돼 있어, 1960년대 동네 가게에서 물건을 하나 훔쳤다가 소년원에 갔다온 기록까지 다 나온다. 물론 전과 경력 중엔 음주운전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다. 노무현 정부는 음주운전 문제에서 ‘한 번은 눈감아주고, 두 번 음주운전을 한 사람은 인사상 불이익을 한 차례 준다’고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청와대 민정팀이 일반 전과 사항 가운데 눈여겨보는 부분은 건축법이나 산림법 위반 등이다. 이런 사안은 뇌물 등 도덕성 문제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윤락행위방지법은 어떨까? “과거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성매매를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점을 고려해, 윤락행위방지법은 다른 범죄와 병합이 되지 않으면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가능하다”는 게 검증 작업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얘기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일반적 기준보다 훨씬 과다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면, 윤리적으로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중한 사안일 가능성이 높다.

어느 고위공무원의 승진 인사 검증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후보자 A씨가 과거에 지방 근무를 할 때 지역 기관장들과 어울려 룸살롱을 몇 차례 갔고, 그 룸살롱 여종업원과 잠자리를 같이했다. 운 나쁘게도 경찰의 일제 단속 때 그 룸살롱이 걸려들었다. 마침 룸살롱 쪽은 여종업원들이 외박 나갈 때마다 돈을 받고 영수증을 꼬박꼬박 발급해준 기록을 갖고 있었다. 내역을 조사해보니, 그 여종업원은 A씨뿐 아니라 지역의 다른 기관장들과도 모두 외박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더구나 그 여종업원은 미성년자였다. A씨는 “여종업원이 미성년자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고, 성숙한 여종업원의 외모로 보면 실제로 몰랐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미성년자와의 성매매는 일반적 외도와는 또 다른 무거운 사안이라, 그는 승진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국정원 인사파일인 ‘존안 자료’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불법적인 정보 수집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정치 정보를 포함한 국내 정보 수집을 강조하기도 했다.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국정원 인사파일인 ‘존안 자료’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불법적인 정보 수집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정치 정보를 포함한 국내 정보 수집을 강조하기도 했다.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들춰보지도 않는 국정원 ‘존안 자료’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검증에 참조하는 자료는 하나 더 있다. 흔히 ‘존안 자료’라고 불리는 국정원 인사파일이다. 그러나 국정원 자료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인사 담당자들은 지적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한 인사는 “미확인 첩보들이 많아 인사 검증 때 국정원 자료는 아예 들춰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국정원 정보의 수준이 예상외로 높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 정보 전문가들은 “도청과 망원(프락치)을 통하지 않으면 국정원도 100%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이런 방식을 통한 정보 수집이 가능했지만 이젠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국정원 현장요원들이 수집한 전문(傳聞·사람으로부터 들어서 취득한 정보) 정보는 신빙성이 떨어지고 팩트(fact)라고 볼 수 없다. 재확인을 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검증 과정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말했다. 이런 상황은 바꿔 말하면 국정원엔 몹시 수치스런 일이다. 국정원이 믿을 만한 정보를 청와대에 올리기 위해 한정식집 등에 망원을 심고, 주요 정치인·관료들의 전화를 도청하고픈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측근 원세훈씨를 국정원장으로 보내고 원 신임 원장이 정치 정보를 포함한 국내 정보 수집을 강조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정 운영에서 사람에 관한 정보를 손에 틀어쥐는 건 중요하고 유용하다.

검증이 완벽한 건 아니다. 검증에서 밝혀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금융 관련 사안들은 공직 후보자 본인이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 한, 사전 검증에서 스크린을 하기가 쉽지 않다. 부동산·병역·전과 등의 자료는 해당 정부기관에서 협조를 받을 수 있지만, 금융 재산은 본인 동의 없이는 은행에서 받아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떤 주식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그 주식을 소유한 게 도덕성이나 이해 충돌 측면에서 문제는 없는지 등을 알려면, 우선 본인의 ‘자백’에 의존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핵심 기관장에 임명된 인사가 황급히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이 인사는 국내 굴지의 재벌회사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었다.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내가 사외이사를 하면서 스톡옵션을 받은 게 있다. 그걸 지금 언론이 취재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 민정수석실은 “빨리 사외이사를 그만두고, 받은 주식은 돌려주라”고 말했다. 이 기관장은 청와대 조언을 그대로 따랐고, 아무런 문제 없이 기관장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부동산, 전과, 병역, 납세, 이성관계를 비롯한 각종 소문, 회사 또는 대학 내 평가 등등…,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관된 인사파일엔 이런 모든 사항이 담긴다. 아무리 비공개라고 하지만 후보자의 프라이버시가 통째로 권력의 손안에 있는 셈이다. 이게 싫으면 고위공직에 진출할 생각을 아예 접으면 된다.

본인은 모르는데 오르고 탈락하고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때론 본인도 모르게 검증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보통 3배수인 공식 후보 리스트에 오르기 전에, 청와대에서 미리 그 분야의 유력한 인사들을 약식으로 스크린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제가 발견되면, 공식 후보군에 포함되지도 않고 언론엔 이름 한번 비치지 않은 가운데 탈락한다. 본인은 1차 후보군에 올랐던 사실도, 탈락한 사실도 전혀 모르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핵심 인사는 “검증팀에서 나에게 이런저런 자리를 제안하면서 ‘검증 동의서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처음엔 공직에 진출할 생각이 없다고 거절했다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 검증에 동의했다. 청와대에 들어와 보니, 내가 동의서를 내기도 전에 이미 기본 조사는 다 이뤄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 인사가 끝내 공직을 거절했다면, 자신에 대한 검증이 이뤄진 사실을 아예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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