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9일 오전 10시40분, 청와대 지하벙커의 위기관리센터 류희인 센터장에게 송민순 통일외교안보실장의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앞으로 20분간 상황을 특별히 주시하라.” 그해 7월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시험 발사로 동북아 상황은 긴장 상태였고, 이제 핵실험 수순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 끊이지 않던 시기였다. 위기관리센터 상황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요원들은 즉각 한쪽 벽면을 온통 차지한, 대형 모니터 10개로 이뤄진 전자상황판에 북한을 클로즈업시켰다. 지진파를 탐지하는 대전의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엔 비상령이 내려졌다. 현 시점에서 특이사항이 없는지 확인했다. 연구원 쪽은 “바로 몇 분 전에 북한 함경북도 해상에서 진도 3.1과 3.3의 지진파가 발생했지만, 특이사항으로 볼 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하 핵실험을 실시할 경우, 진도가 최소한 3.9 이상은 될 것으로 판단했다. 다른 나라 전례로 보면 그 미만의 진도로 핵실험이 이뤄진 경우는 없었다. 위기관리센터 상황실의 판단은 달랐다. 지진파가 몇 초 간격으로 발생했고 진앙지가 핵실험 예상지역 부근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실은 핵실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즉각 노무현 대통령에게 상황 1보를 보고했다. 뒤이어 지진파의 진앙이 계속 함북 길주 쪽으로 접근한다는 지질자원연구원의 분석이 나왔다. 청와대는 지체 없이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최종 판단을 내리고, 곧바로 미리 세워둔 비상 대응계획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에 근무했던 인사는 “나중에 들어보니, 송민순 실장이 김하중 주중 대사로부터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이란 정보를 듣고 상황실에 긴급 전화를 건 것이었다. 물론 이 정보가 결정적이긴 했지만, 주요 북한 동향을 즉각 종합해 분석하는 상황실이 없었다면 신속하게 대응 체제를 가동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비서동 부근 지하엔 대형 벙커가 있다. 3공화국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 공격에 대비해 마련한 콘크리트 방공호다. 오랫동안 이 벙커는 거의 버려진 채로 방치됐다. 1년에 한 번, 을지포커스 훈련 때만 지휘본부가 벙커를 활용했다.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와 탄저균 테러가 발생하자, 청와대 경호실은 이 벙커에 주목했다. 적의 공습뿐 아니라 테러단체의 화생방 공격에 대비한 방어시설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청와대는 40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방공호를 전면 개조했다. 화생방 공격 때 대통령과 주요 참모들이 이곳에 머물며 국정을 지휘할 수 있도록 비상식량도 갖췄다. 당시 NSC 사무처 쪽은 새로 개조한 벙커에 첨단 상황실을 설치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 인사는 “서해에서 연평해전과 서해교전이 발생했을 때 청와대에서는 국방부 보고 외엔 현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없어 답답했다.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청와대가 실시간으로 모든 상황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그러나 그때가 김대중 정부 말기라서 상황실 건설에 10억여원의 추가예산을 투입하기가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실 설치는 다시 추진됐다. 노무현 정부는 기존의 NSC를 대대적으로 확대 개편하면서, NSC 산하에 국내 주요 기관들의 상황정보를 종합하는 종합상황실을 두기로 했다. 벙커에 NSC 상황실을 설치하는 공사는 2003년 4월 시작돼 그해 6월 말 끝났다. 16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새로 문을 연 상황실은 최첨단의 시설로 꾸며졌다. 40평 가까운 상황실 전면 벽엔 10개의 대형 플랫TV 모니터가 2단으로 설치됐다. 모니터들은 제각기 다른 정보를 보여줄 수도 있고, 하나의 거대한 전자상황판으로 전환될 수도 있었다. 전자상황판엔 국내 22개 주요 기관으로부터 실시간 전송되는 그래픽 상황정보가 떴다. 육·해·공군 작전사령부와 경찰청, 소방본부, 산림청, 한국전력 상황실 등에서 보는 정보가 곧바로 청와대 상황실로 연결되는 것이다. 가령 공중 상황을 선택하면 한반도 360km 반경 이내에서 운항 중인 모든 항공기가 대형 전광판에 표시된다. 해상 상황을 선택하면 한반도 주변 모든 선박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상황판에 표시된 항공기나 함정을 클릭하면 속도, 진행 방향 등 정보가 나타나고, 우리 항공기나 함정일 경우 상황실에서 직접 통화도 가능하다. 원전의 원자로 가동 현황과 전국 경찰의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지질자원연구원에서 체크한 지진파 상황, 전국의 산불 발생 현황도 이곳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때론 위성 정보도 받는다. 2006년 8월 독도 주변에서 우리 해경 순시선과 일본 순시선이 대치할 때는, 위성을 통해 대치 상황을 청와대 상황실에서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긴급한 위기 발생 때,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정확히 파악하는 건 중요하다. 노무현 정부에서 NSC 위기관리센터장과 사무차장을 지낸 류희인 예비역 공군 소장은 “상황을 단지 유선으로만 보고받게 되면, 중대한 순간에 대통령이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시간적 갭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보고 단계에서 편향과 굴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백악관 따라 지었는데, 직접 방문하니…미국 역시 이 교훈을 2001년 9·11 테러를 통해 얻었다. 9·11 테러 당시 플로리다초등학교를 방문 중이던 조지 부시 대통령은 보고를 받곤 곧바로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으로 워싱턴으로 향했다. 그는 그러나 공중에서 방향을 돌려, 워싱턴 백악관으로 돌아가는 대신 네브래스카 군 지하사령부로 몸을 피했다. 나중에 의회의 9·11 진상조사 때 부시의 이런 행동이 적절한 것이었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9·11 진상조사위원회는 “낡은 통신시설 때문에, 부시 대통령은 에어포스원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백악관은 2006~2007년, 지하 상황실을 전면적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상황실에서 보는 사진과 동영상 등 정보들을 곧바로 에어포스원으로 전송할 수 있는 장비를 갖췄다. 대통령이 에어포스원에서도 백악관 상황실에 앉아 있는 것과 똑같이 현장을 보면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조 해긴 백악관 부실장은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동시에 (위에서) 상황 파악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청와대 상황실의 첨단화는 어떻게 보면 미국보다 빨랐던 셈이다. 물론 상황실에 접수되는 정보의 질과 양은 청와대와 백악관이 비교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장 상황을 대통령이 직접 볼 수 있도록 전자정보를 종합하는 전자화의 측면에선 청와대가 한발 앞선 것이다. 재밌는 건, 새 청와대 상황실의 모델이 미국 영화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백악관 상황실’이었다는 점이다.
영화는 현실에서 영감을 얻지만, 때론 현실이 영화적 상상력을 쫓아가기도 한다. 상황실이 그런 케이스다. 청와대 NSC 상황실 설치를 지휘했던 류희인 예비역 소장은 “일본 상황실이 첨단장비를 많이 갖추고 있어 직접 눈으로 보려 했지만, 일본은 상황실 견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백악관이 모델이었다. 영화 이나 텔레비전 드라마 에 나오는 것처럼, 대형 전자상황판이 벽에 설치되어 있고 대통령과 참모들이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상황판을 지켜보며 회의를 하는 모습을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그는 “백악관 상황실이 영화와는 영 딴판이란 사실을 2006년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처음 알았다”고 덧붙였다. 백악관 상황실장은 류 장군에게 “상황실을 외국 인사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건, 극비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설이 너무 낡아 창피했기 때문”이라고 조크를 했단다.
할리우드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백악관 시설이 상황실이지만, 상황실만큼 영화 속 풍경과 실제 모습이 다른 경우도 드물었다. 온갖 첨단장비로 치장된 백악관 상황실에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상황을 눈으로 보면서 공습 명령을 내리고, 때론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테러시설을 미 특수부대가 정확하게 타격하는 걸 지켜본다- 이건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는 리노베이션 이전의 상황실을 “낮은 기술 수준의(low-tech) 지하 공간에 불과했다”고 묘사했다. “상황실에 설치된 대부분의 모니터는 브라운관 텔레비전이고, 통신은 주로 팩스를 통해 이뤄진다. 컴퓨터와 전화는 1985년 수준의 장비들이 작동하고 있었다.”
“에어컨은 안 틀지만 훨씬 밝다”부시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는 NBC 드라마 을 시청하곤 “우리 상황실은 전기를 아끼느라 에어컨을 세게 틀지는 않지만, 드라마에 묘사된 것보다는 훨씬 밝다. 또 (대통령과 참모들로 분장한) 배우들이 (상황판 앞에 죽 늘어서서) 지도를 살펴보는 드라마 장면 같은 일은 실제론 없었다”고 말했다. 드라마 제작진과 배우들은 2000년 백악관을 방문해 웨스트윙(대통령 집무실과 참모 사무실이 있는 건물) 지하의 상황실을 둘러봤지만 텔레비전 세트를 바꾸진 않았다고, 백악관 상황실장을 지낸 마이클 본은 저서 (Nerve Center- Inside the White House Situation Room)에서 밝혔다.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스토리 전개에 무게감을 주려면 실제보다 훨씬 크고 어둡게 만드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실제와 가깝게 만들기보다는 아이콘, 즉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상상하는 이미지에 맞춘 겁니다.” 프로듀서 켄 하디의 설명은 이랬다고 한다.
2006년 8월부터 9개월간 전면 개조한 백악관 상황실은, 영화에서 보던 모습을 비로소 갖췄다. 웨스트윙 지하실만으론 부족해, 백악관 뜰 아래로 땅을 파서 공간을 5천 제곱피트(약 140평) 정도로 넓혔다. 상황실 천장과 벽 뒤론 40마일(약 64km)의 통신케이블과 20마일(약 32km)의 전기선이 거미줄처럼 연결됐다. 조 해긴 백악관 부실장은 “미래에 전자장비를 업그레이드할 경우에 대비했다. 또다시 벽에 구멍을 낼 필요는 없도록 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하는 주회의실엔 6대의 대형 플랫TV를 설치했다. 이 플랫TV를 통해 인공위성이 찍은 각종 자료와 사진들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다. 바그다드 현지 미군사령관이나 국립허리케인센터 소장의 화상 브리핑을 받을 수도 있다. 플랫TV의 상표는 ‘LG’다. 청와대 상황실에 설치된 플랫TV는 삼성 제품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두 업체가 백악관과 청와대 상황실 스크린을 각기 나눠서 공급한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 지하 상황실의 전체 넓이도, 상황실과 2개의 회의실 등을 합치면 아마 백악관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지하벙커에도 상황실과 함께, 전 국무위원이 참석할 수 있는 대규모 회의실과 주요 참모들과의 회의를 위한 소회의실이 마련돼 있다. 청와대 상황실에서 눈에 띄는 건 ‘V’형으로 배치된 대형 회의 탁자다. ‘V’자의 꼭짓점에 대통령석이 있고 양쪽 날개로 참모나 각료들이 앉게 되어 있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참모들도 스크린을 쉽게 보면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이런 구조를 채택한 것이다.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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