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89년 봄 미국 뉴욕. 유엔총회 연설을 마친 노 대통령이 귀국을 위해 존 F. 케네디 공항으로 향할 때였다. 허드슨강을 가로지르는 트리보로 다리를 막 넘으려는 순간, 노 대통령이 탄 메르세데스 벤츠 리무진의 오른쪽 뒷바퀴가 펑크났다. 미국에서 제공한 의전용 차량이었다. 대통령 리무진 바로 앞의 선도차량에 탑승해 있던 경호실 요원은 백미러로 이 사실을 목격하고 곧바로 이현우 경호실장에게 보고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을 태운 리무진은 시속 80km의 속력으로 그대로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케네디 공항에서 내린 노 대통령은 타이거가 펑크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당시 경호팀에 있었던 관계자는 “다행히 노 대통령이 펑크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이 일은 그냥 조용히 넘어갔다. 미국 방탄차 타이어 보호장치의 우수성을 처음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일그러져 보이는 방탄유리그때까지만 해도 이 장치는 미국만이 보유한 특허 기술이었다. 타이어 휠에 탄성이 강한 실리콘을 둘러서 타이어 기본 형태를 유지하고, 그 위에 공기와 고무를 덧씌우는 형태다. 그러니 공기가 빠지더라도 타이어 형태를 유지하면서 시속 80km 속도로 100km가량을 고속 주행할 수 있다. 당시 국내엔 이런 특수 타이어를 장착한 방탄차가 없어, 청와대 경호실은 이 사건 직후 대통령 전용차량을 한동안 벤츠에서 미국 캐딜락으로 바꿨다고 한다. 요즘 대통령들은 다시 벤츠와 BMW를 많이 타고 있다.
대통령이 타는 방탄차량은 그 자체가 요새다. 방탄판으로 이뤄진 차체는 중기관총인 캐러버50의 탄환을 막아낼 수 있고, 차량 밑바닥은 수류탄과 지뢰가 터져도 끄떡없다. 차체 표면엔 화염병 투척에 대비한 방염 처리를 했고 폭발물 탐지 기능도 갖추고 있다. 총탄을 튕겨낼 수 있는 방탄유리의 두께는 75mm 이상이다. 15mm 두께의 특수 섬유유리를 겹겹이 붙이는데, 여기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유리창이 전화번호부책과 맞먹을 정도로 두꺼우니, 아무리 투명도를 유지하려 해도 일반 차량처럼 바깥을 깨끗하게 볼 수 없고 형상이 항상 일그러져 보인다. 이 때문에 1979년 10·26 사건 직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최규하 대통령은 전용차량을 잘 타지 않으려 했단다. 나이가 많았던 김대중 대통령도 방탄차량을 탈 때 눈의 피로를 호소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화학가스 공격에 대비한 산소공급기와, 연료탱크의 폭발을 막기 위해 특수 폼(foam)으로 이뤄진 연료탱크 보호장치도 장착돼 있다. 이렇게 방탄 기능을 갖춘 대통령 전용차량의 무게는 보통 3~4t에 이른다. 도어 하나의 무게만도 100kg을 넘는다. 보잉 여객기의 도어 무게와 비슷하다.
5공 시절 전두환 대통령이 모내기를 하려고 농촌을 방문했을 때다. 농로까지 대통령 전용차량이 들어갔다가 지반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차가 논두렁에 처박힌 것이다. 청와대 경호실 요원들은 차량을 빼내려 애썼지만 무른 논바닥에서 몇t짜리 전용차를 빼낼 수가 없었다. 결국 전 대통령이 예비차량을 타고 서울로 향한 뒤 기중기를 불러와 간신히 차량을 빼낼 수 있었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인사는 “전 대통령에게 경호실이 엄청 깨졌음은 물론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할 때 미국 언론들이 유난히 관심을 보인 게 하나 있다. ‘오바마 모빌’이라고 불리는, 새 대통령의 전용차량이다. 미국에선 대통령이 바뀌면 전용차량을 새로 제작한다. 전임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4년형 캐딜락 DTS를 탔는데, 오바마 모빌은 이를 약간 개량한 것이다. 제작사 GM은 “차량 안전장치를 개선했고, (두꺼운 방탄유리 때문에 생기는) 차창의 투명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연료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번엔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무리 하이브리드 차라고 해도, 워낙 무겁기 때문에 연비는 동급의 다른 승용차보다 크게 떨어진다. 새 전용차량을 눈여겨본 자동차 전문가들은 “힘을 내기 위해 트럭처럼 디젤 엔진을 쓰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로널드 레이건 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모두 캐딜락을 타고 있다. 이 때문에 GM은 대통령 차량을 ‘캐딜락 원’(Cadillac One)이라고 부른다. 백악관 경호실(Secret Service) 요원들은 이 차를 ‘야수’(The Beasts)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 대통령들이 캐딜락만 탔던 건 아니다. 1933년 덮개 없는 무개차를 타고 마이애미 시내를 방문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어느 이탈리아 이민자의 총격을 받았다. 다행히 무사했지만 대통령 안전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연방정부는 마피아 대부 알 카포네에게서 압수한 1928년형 방탄 캐딜락을 루스벨트에게 제공했다. 알 카포네는 암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일반 캐딜락에 철판을 덧대고 방탄유리를 장착한 차를 타고 다니다 구속됐다. 1939년 포드는 링컨 콘티넨털을 루스벨트에게 보냈다. 대통령만을 위한 첫 방탄차량이었다. ‘선샤인 스페셜’(Sunshine Special)이란 이름의 이 차량엔 특수 철판과 1인치 두께의 방탄유리가 장착됐다. 그 뒤 미국 대통령들의 링컨 콘티넨털 선호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이 캐딜락으로 전용차량을 바꿀 때까지 계속됐다. 1961년 댈러스에서 암살당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탔던 차도 덮개가 없는 링컨 콘티넨털이었다.
GM이 요즘 파산의 기로에 놓여 있지만, 대통령 전용차량을 제작한다는 자부심은 대단하다. 전담팀을 따로 두고 4년마다 새롭게 진일보한 전용차량을 내놓으려 온갖 노력을 쏟는다. ‘캐딜락 원’은 기존 캐딜락 모델에 기초해 제작되기 때문에, 새로운 대통령 전용차량을 내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홍보효과를 갖는다. ‘캐딜락 원’의 제작과 차량 테스트 과정은 모두 일급비밀이다. 하지만 아무리 숨기려 해도 언론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만의 전용차량에 처음 올라탄 건 취임식 날인 2009년 1월20일이었다. 그러나 ‘오바마 모빌’의 모습은 두 달여 전인 2008년 11월 중순부터 <cnn>과 등 케이블 텔레비전에 공개됐다. 자동차 파파라치들이 시험운행을 하는 오바마 모빌의 사진을 찍어 언론사에 제공한 것이다. 언론에선 “역대 어느 ‘캐딜락 원’보다 크다. 전장도 길어졌고 높이도 한층 높아졌다. 흡사 트럭을 보는 것 같다”고 보도했는데, GM은 “차량의 높이가 아주 조금 높아졌지만 길이는 예전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GM은 특히 “외관이나 내부 인테리어 측면에서 아름답고 우아하게 보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밝혔다. 내부 인테리어는 모두 수작업으로 꾸민다. GM은 “내부에 10개의 CD를 바꿀 수 있는 CD 체인저를 장착했다”고 밝혔는데, 오바마의 CD 목록엔 밥 딜런과 스티비 원더가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전기사, 대통령 청와대행 동반자
‘오바마 모빌’을 우리 대통령 전용차와 구별짓는 가장 두드러진 점은 통신시설이다. 우리 대통령 차량도 위성전화를 비롯한 최첨단 통신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차량 운행반경은 국내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반면 ‘오바마 모빌’은 전세계 어디서든지 누구와도 통화할 수 있는 무선 위성전화와, 부통령·국방부 장관과 직접 연결되는 핫라인을 갖추고 있다. 모든 전화엔 도청방지 설비가 되어 있다. 대통령 좌석엔 노트북이 설치돼 있어 언제든지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 미국 대통령이 어느 나라를 방문하든 ‘캐딜락 원’을 갖고 가서 타는 건, 안전 문제 외에도 항상 최고의 통신시설을 이용하려는 측면이 크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전용차량을 운전했던 전직 백악관 경호실 요원 조 펑크는 <cnn> 인터뷰에서 “대통령 차는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고치와 같다. 소음은 사라진다. 사회와 격리됐지만 손가락 하나만으로 외부 세계와 통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오바마는 놀랄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미국에선 대통령 전용차량 운전도 경호의 한 부분이다. 비상사태 때 급히 그 자리를 벗어나거나 테러범의 공격을 피하려면 고도의 운전기술이 필요하다. 영화에서 보는 드리프트(브레이크를 이용해 감속 없이 빠르게 코너링을 하는 기술)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적 훈련을 받은 백악관 경호실 요원이 운전을 담당한다. 우리 대통령 전용차량의 운전기사는 대개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왔다 함께 나가는 ‘측근’의 개념이 강하다. 대통령이 그걸 더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도 10여 년간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던 신용구씨를 경호요원으로 특채해 청와대에 데리고 들어갔다. 이들은 청와대 입성 전에 전용차량 운전에 필요한 특수 운전기술을 몇 주간 교육받는다고 비서실 관계자는 밝혔다.
청와대도 캐딜락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첫 방탄차가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의 캐딜락이었다. 그해 한국을 방문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이 대통령에게 캐딜락 방탄차를 선물했다. 요즘 캐딜락은 주로 의전용으로만 사용한다. 우리 대통령이 이동할 때는 벤츠나 BMW를 탄다. 청와대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5년에 독일 BMW사로부터 최고급 모델인 760Li 5대를 새로 들여왔다. 대통령이 어느 차에 탔는지를 감추기 위해 2~3대의 똑같은 차량이 같이 달리기 때문에, 한번 구입할 때 여러 대를 같이 들여온다. 대당 가격은 보안 사항이다. BMW 760Li 일반 차량 가격이 당시 2억4천만원 선이었으니, 특수 방탄설비가 장착된 대통령 전용차량은 그 3배 가량인 6억5천만~7억원 선일 거라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대통령 차량의 가격도 비밀이다. 가격을 공개하면, 역으로 그 차량에 장착된 특수 설비들이 뭔지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할 때, 일부 자동차 전문 사이트들은 새 ‘오바마 모빌’의 가격이 45만~65만달러 정도라고 보도했다. 지금은 환율이 올랐지만, 2005년 환율(달러당 약 1천원)로 환산하면 우리나라와 미국 대통령 방탄차량의 가격은 얼추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대 기점으로 선호 바뀌어
미국 대통령은 캐딜락을 타는데, 우리 대통령은 유럽 차종인 벤츠나 BMW를 애용하는 이유는 뭘까? 국내 자동차업계의 한 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엔 우리 대통령도 캐딜락을 주로 탔다. 캐딜락이 가장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벤츠와 BMW 등 유럽 차량의 방탄 기능이 현격히 개선됐고, 어떤 면에선 오히려 미국 회사들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청와대의 선호가 조금씩 바뀌더니 지금은 완전히 유럽 차로 기울어졌다. 가격 대비 성능에서 벤츠나 BMW가 더 나으면 나았지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미국 자동차 회사의 몰락은 방탄차 부문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는 셈이다.”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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