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의 역사적인 미 대선 승리 이후 40여 일간, 오바마 인수위원회에 쏟아진 이력서는 30만 장을 넘는다. 대통령 취임일인 내년 1월20일까지 30만 장 이상 더 접수될 것 같다고 인수위 관계자들은 말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8년 전, 조지 부시 당선자 캠프엔 취임일까지 9만 장의 이력서가 몰려들었다. 이들은 모두 연방정부의 ‘자리’를 찾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돌아갈 ‘자리’는 얼마나 될까.
대통령의 힘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인사권이다. 대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력 대통령 후보 주변에 모여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자리’다. ‘자리’는 사람들을 열정적으로 선거운동에 뛰어들게 하는 동기이자, 일단 정권을 잡으면 정권의 성패를 결정하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얼마나 많은 ‘자리’들을 자기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정무직 자리는 크게 네 범주로 나뉜다. 첫째, 법에 규정된 전임직(Full-time)으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고위직들이다. 여기엔 상원 인준을 필요로 하는 장·차관과 200여 명의 각국 대사, 94명의 지역검사장과 94명의 군 사령관, 세계은행 총재를 비롯해 미국이 실질적으로 임명권을 행사하는 15개 국제기구의 장, 200여 명의 연방판사가 포함된다. 이 범주에 속하는 직위는 1300~1400개 정도다. 두 번째 범주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지는 않고 기관의 장이 임명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실질적으로 백악관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자리다. 백악관 인사보좌관실이 기관장과 긴밀하게 협의하며 대통령의 뜻을 인사에 관철한다. 이런 자리가 2100~2200개 정도 된다. 세 번째 범주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파트타임(Part-time) 직위다.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 위원 등이 이 범주에 해당되는데, 이런 자리의 수 역시 2300~2400개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범주는 백악관 비서실 직원이다. 비서실 인사는 대부분 상원 인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언론도 내각 인선과는 달리 비서실 인사에 대해선 비교적 관대하다. 대통령이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골라 쓰는, 말 그대로 ‘대통령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백악관 비서실엔 대통령의 정식 서명을 필요로 하는 직위가 80여 개, 비서실장이나 보좌관, 비서관들이 임명하는 중·하위직이 500~600개 정도 있다.
이렇게 따지면, 미국 대통령이 직접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는 6478개 안팎이라고 브래들리 패터슨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추산했다. 정부마다 조직개편이 조금씩 이뤄지므로 이 숫자엔 약간의 변동이 생길 수 있다. 〈AP통신〉은 내년 상반기까지 오바마 정권이 새로 채워야 할 공직이 거의 8천 개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60만 장의 이력서가 들어온다고 치면, 아무리 하위직이라도 평균 100 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그러면 한국의 대통령은 얼마나 많은 자리에 자기 사람들을 앉힐 수 있을까? 3천여 개 정도라는 게 전직 청와대 고위 인사들의 얘기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청와대가 간접적으로 인사에 관여할 수 있는 자리는 전부 합하면 3만여 개쯤 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직접 검증에 나서는 자리는 3천여 개 정도”라고 밝혔다. 이 3천여 개가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거나 청와대에서 낙점을 하는, 대통령 인사권의 직접 영향권 아래에 있는 자리인 셈이다. 미국의 6500여 개에 비하면 절반 정도인 셈인데, 정부 규모를 생각하면 한국 대통령의 인사권 범위가 그리 작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대통령이 임명하는 3천여 개의 자리를 크게 보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장·차관과 각 부처의 국장급 이상 고위 공무원 △군·검찰·경찰·국정원의 일정 직급 이상 직위 △대통령이 위촉하는 정부위원회의 비상임 위원장과 위원 △정부투자기관과 산하단체 임원들로 나눌 수 있다.
카터, 선거 여섯 달 전부터 인사팀 가동오바마 당선자의 주요직 인선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다. 12월13일 현재 장관 16자리 가운데 9자리를 내정했다. 과거 정부들보다 평균 13일 빠른 속도다. 백악관의 주요 참모 12자리 가운데선 10자리를 임명해, 역시 과거 정부 평균보다 30일이나 빠르다. 신속한 인선의 비결은, 대선 훨씬 이전부터 인사준비팀을 가동해 후보군을 미리 압축해놓은 데 있다. 투표일 이전부터 정권인수팀을 가동하는 건, 1976년 대통령에 당선된 지미 카터 이후 모든 후보들의 관행이 됐다. 카터에겐 연방정부나 의회 경험이 없었다. 남부의 작은 주 조지아 지사를 한 게 경력의 전부였다. 그는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선거 여섯 달 전인 76년 5월부터 정권 인수팀을 비밀리에 가동했다.
우리나라에선 이렇게 미리 인사를 준비하는 게 어렵다. 정권 출범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전·현직 인사들은 한결같이 “우리 정치 상황에선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을 짜거나 유력 후보군이라도 미리 압축해놓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런 리스트가 외부로 흘러나갈 경우, 대통령 후보가 입게 될 엄청난 정치적 타격이다. 인재풀이 한정된 우리 현실에선, 아무리 조심을 하더라도 후보군에 들어간 인사들의 명단이 어떤 식으로든 밖으로 샐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상대편의 공격보다 내부의 이전투구가 더 무섭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인사는 “미국처럼 제도화된 인사준비팀을 꾸리는 순간, 여러 가지 정치적 오해와 논란을 빚게 된다. 리스트(후보군)에 오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반목도 생긴다. 또 미국처럼 민주당 인재풀과 공화당 인재풀이 뚜렷하게 나눠지지 않는 상황에선, 선거에서 승리하기 전엔 최선의 섀도 캐비닛을 짤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1997년 대선 과정에서 인사준비팀을 가동하지 않았다. 오랜 야당 생활에서 몸에 밴, 인사는 오직 자신만이 해야 한다는 사고가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인사준비팀을 가동한 적은 없지만, 주요 자리의 대체적인 윤곽은 김 대통령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선거를 8개월여 앞둔 1997년 4월, 그는 텔레비전 토론준비팀 11명을 직접 뽑았다. 박상천·이해찬·김원길·조세형·신낙균·정동영·김한길·박지원·박선숙 등이었는데, 이들이 김대중 정부에서 모두 요직에 기용됐다. DJ는 야당 체질이 몸에 박혀서 인사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걸 싫어했지만, 대상자는 머릿속에 담아뒀다.”
첫 조각 실패의 원인지난해 이명박 캠프엔 역대 어느 후보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의 직접 지시를 받은 인사준비팀은 없었다. 이재오·정두언 의원 등이 제각기 집권 이후 인사 프로그램을 나름대로 준비했지만,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건 아니었다. 이 대통령 캠프에서 오래 활동한 한나라당 인사는 “개별적 차원의 인사 준비는 오히려 이 대통령 눈 밖에 나는 계기가 됐다.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이 대통령은 대선 승리 이후, 박영준씨(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를 시켜 백지 상태에서 새로 인사안을 짰다”고 말했다. 첫 조각의 실패엔 이런 다급한 인사 준비가 핵심 원인 중 하나였다.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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