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6일, 서울을 방문한 조지 부시 대통령의 뜻밖의 행동에 한-미 경호팀은 깜짝 놀랐다. 두 나라 대통령이 청와대 녹지원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한 뒤 관저로 이동할 때였다. 부시 대통령이 갑자기 자신의 리무진이 아닌 이명박 대통령 차에 올라탄 것이다. 청와대 경호실 관계자는 “부시 대통령이 ‘같이 타도 되겠느냐’며 이 대통령 차량에 탑승해서 우리가 더 놀랐다”고 말했다. 비록 청와대 경내이긴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 차량에 탑승한 건 극히 이례적이라는 게 경호 관계자들의 얘기다. 미국 대통령은 전세계 어디를 가든, 자신의 전용 차량과 전용 헬기, 전용 비행기만 탄다. 경호실 관계자는 “그만큼 우리 경호 수준을 신뢰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때면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Air Force One)이 도착하기 며칠 전에 오산 미군기지에 거대한 C141 수송기 2대가 먼저 내려앉는다. 수송기엔 엄청난 물량의 경호장비가 실려 있다. 미국 대통령 전용차량인 링컨 컨티넨털 리무진은 물론이고 미 대통령 전용 헬기인 머린원(Marine One)이 분해된 채 실려와 오산 기지에서 다시 조립된다. 통신장비와 각종 소화기 등 총기류도 실려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대통령은 한국 내 어디를 가든 자신의 전용 방탄차량을 탄다. 휴전선을 방문하거나 제주도를 갈 때는 ‘머린원’을 타고 가서, 다시 자신의 전용 차량으로 갈아탄다”고 말했다. 고도로 훈련된 ‘대응 저격팀’(Anti-Assassination Team·암살범을 미리 발견해 선제 저격하는 팀)도 한국에 온다. 에어포스원이 공항에 착륙할 때엔 활주로에 배치된 대응 저격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외곽 경호야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에 맡기지만, 근접 경호는 인원과 장비 모두 미국 내와 똑같은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지 국가원수가 외국을 방문할 때엔 1차 경호 책임은 해당국에 맡기는 게 국제 관례다. 그러나 백악관 경호팀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미국 내처럼 대통령 경호를 자신들이 책임지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을 자부하는 청와대 경호팀과 때때로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일종의 자존심 싸움인 셈이다. 전직 청와대 경호실 인사의 얘기. “지난 정부에서 부시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일이다. 미국의 에어포스원이 성남공항 활주로에 내려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 백악관 경호팀은 자신들의 ‘인텔리전스 카’(통신장비와 화력을 갖춘 검은색 밴)가 에어포스원의 꼬리에 바짝 붙어 경호하겠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성남공항은 군 비행장으로 주변을 우리 군이 지키고 있으니 미국 경호원들은 활주로 안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단 1분도 경호팀이 대통령과 떨어질 수 없다면서 끝내 인텔리전스 카를 활주로에 진입시켰다. 우리 경호 수준을 미국에서 인정하는데도 상황이 이렇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미국은 예외다. 미국 경호팀은 자기 주장을 어떤 식으로든지 관철시킨다.” 다른 나라에 자국 대통령의 생명을 맡길 수 없다는 사명감의 표현이지만, 상대국의 눈엔 오만으로 비친다.
놀라운 한국의 교통 통제 시스템2004년 11월20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벌어진 부시 대통령의 ‘활극’은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부시 대통령 부부를 따라 정상 만찬장에 들어서려던 미국 경호원을 칠레 경찰이 저지하자, 부시는 직접 경찰들과 몸싸움을 하며 경호원을 구해내 함께 만찬장에 입장했다. 는 “경호원을 구한 대통령은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고 묘사했다. 다자회의 때 정상들의 공식 행사에 경호원이 출입하는 건 금지된다. 더구나 주최국 국가원수가 서 있는 만찬장 정문으로 경호원이 들어가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중남미엔 반미 여론이 들끓었지만, 백악관 경호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엔 칠레 대통령 주최의 부시 환영 국빈만찬이 예정돼 있었다. 미국 경호팀은 만찬장 앞에 금속탐지기를 세우라고 요구했다. 칠레 쪽은 “만찬 참석자들은 모두 믿을 만한 고위 인사”라며 금속탐지기 설치를 거부했다. 끝내 양쪽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만찬은 취소돼버렸다.
그러나 미국 내에선 상황이 180도 바뀐다. 우리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할 때마다 한-미 경호팀은 금속탐지기 문제로 씨름을 벌인다. 한국 대통령이 미 상공회의소 등에서 연설을 할 때, 우리 경호팀은 행사장 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백악관 경호팀은 ‘모임 참석자들이 미국 저명인사니까 신분 확인만으로 괜찮다’고 주장한다. 결국 우리 요구대로 금속탐지기를 설치하거나, 금속탐지기 대신 간이 스캐너를 사용해 검색하기도 한다.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서도 자신의 전용 차량을 타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은 미국에서 그쪽 차량을 이용한다. 청와대 방탄차량을 비행기로 공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운전기사도 미국 경호실 요원이 붙는다. 드물지만 우리 대통령과 청와대 수행원들이 따로 떨어지는 상황이 간혹 벌어진다. 2006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노 대통령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가 있는 시내의 공원을 방문하려다 한동안 김세옥 경호실장을 비롯한 수행원들과 분리된 적이 있다. 당시 언론들은 “노 대통령이 10여 분 동안 완전히 혼자 격리된 채 있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 경호실은 “미국 현지 경찰의 실수로 경호실장 등 수행원이 탄 차량이 잠깐 길을 잘못 들었지만, 노 대통령 주변엔 수행 경호팀이 계속 붙어 있었다. ‘경호 공백’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런 일은 한국과 미국의 경호 시스템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주미 한국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국가원수의 차량 이동 때 경찰에서 교통신호 시스템을 통제해 출발부터 도착까지 매끄럽게 진행된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시 전체의 교통신호를 일괄 통제할 수가 없다. 오토바이를 탄 경찰이 교차로 등에서 그때그때 수신호로 교통을 통제한다. 정보가 부족한 현지 경찰이 대통령 차량만 통과시키고 교통 통제를 풀어버리면, 수행원 차량들은 졸지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백악관 경호팀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놀라고 부러워하는 부분도 경찰의 완벽한 교통 통제다. 서울경찰청 상황실에서 전체 교통 흐름을 통제하는 걸 보면, 백악관 경호요원들의 눈은 휘둥그레진다고 한다.
유럽도 비슷하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의 영국 방문 때, 토니 블레어 총리를 만나러 가는 김 대통령 일행을 에스코트한 건 경찰 오토바이 2대가 전부였다. 현지 경찰이 교차로에서 대통령 차량만 통과시키고 교통 통제를 풀어버리자, 다른 수행원들은 그만 길이 막혀버렸다. 몇 분 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통역 등이 헐레벌떡 달려가보니, 현장엔 김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가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고 한다. 이런 해프닝은 웬만해선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대로 묻힌다. 우리 잘못은 아니지만, 우리 수행팀과 대통령이 분리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청와대로선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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