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은 노무현 정부엔 기억하기 싫은 인사 파동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새해의 문이 열리자마자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아들의 대학 특례 입학과 부동산 임대소득 탈세 의혹 등으로 1월7일 낙마했다. 이어 두 달 만인 3월7일엔 경제팀 수장인 이헌재 부총리가 20여 년 전 위장전입에 의한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물러났다. 3월19일엔 역시 위장전입 의혹으로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이 사퇴했고, 3월27일엔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이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여 옷을 벗었다. 불운은 4월에도 계속됐다. 4월15일엔 홍석현 주미 대사가 1980년 무렵 위장전입으로 경기 이천 등지의 농지를 산 사실이 드러났다. 이미 사퇴한 다른 고위공직자들과 똑같은 사안이었지만, 한국이 아니라 워싱턴에 있던 탓에 홍 대사는 사퇴 압력을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도덕성을 최대 강점으로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의 타격은 컸다. 청와대 인사 검증의 부실을 질책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노무현 정부는 일련의 인사 파동을 계기로 ‘인사 검증 매뉴얼’을 훨씬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을 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되돌아본다면,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에 결정적인 구멍이 뚫렸다고 보긴 어려웠다. 이헌재, 최영도, 강동석, 홍석현으로 이어진 인사 파동의 핵심인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을 청와대는 이미 검증 과정에서 파악하고 있었다. 이기준 교육부총리 아들의 이중국적 문제도 알고 있었다. 청와대가 유일하게 모르고 있던 사안은 이기준 부총리 아들의 부동산과 관련한 탈세 의혹이었다.
언론에 이기준 부총리 아들의 증여세 탈루 의혹이 보도되자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이 부총리 아들이 2001년 10월 경기 수원의 아버지 소유 대지 위에 건물을 지어 소유주로 등록하고 임대업을 했다는 것이었다. 현행 세법은 아버지 땅에 아들 명의의 건물을 등록하더라도 토지 무상 사용에 대해선 증여세를 내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부총리 아들은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아침에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비로소 사실 확인에 나섰다. 전직 청와대의 한 인사는 “이 부총리 건이 참여정부 5년간의 인사 검증에서 가장 실패한 케이스일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검증 문제에서 이렇게 언론에 ‘물을 먹은’(정보에서 뒤처졌다는 뜻의 정치·언론계 속어)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고위공직자들의 검증 의혹이 불거지는 건 청와대가 내용을 먼저 알았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언론 보도 이후에 파장이 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기준 부총리의 인선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한 인사는 “이 부총리의 부동산 내역은 우리도 다 파악하고 있었다. 경기 수원에 10억여원대의 땅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 땅 위에 어떤 건물이 있고 그 건물 소유와 임대 문제는 어떻게 되는지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거기서 허점이 생겼다”고 밝혔다. 이건 직접 현장에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사안이었던 것이다. 그 뒤 청와대의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매뉴얼’엔 공식적으로 한 가지 사항이 추가됐다. “의심이 가는 임야나 토지는 해당 지역의 경찰서 정보과 형사를 보내 건물 유무와 문제점 등을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인사 검증 시스템은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촘촘하고 세밀하다. 1993년 공직자 재산 공개가 처음 시작된 이후 고위공직자들의 무수한 낙마를 거치면서 다져진 사전 검증 노하우가 상당하다. 몇 주간 연방수사국(FBI)이 달라붙어 고위공직 후보자의 뒤를 캐는 미국보다는 못할는지 모르지만, 단기간에 검증을 하는 데엔 놀라운 수완을 발휘한다. 이런 노하우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더 정교해지고 다듬어졌다. 노무현 정부 때는 백악관의 ‘표준검증 절차’를 본떠, 고위공직자의 사전 검증 작업에 필요한 절차와 내용을 담은 ‘인사 검증 매뉴얼’을 만들었다. 전임 정부에 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갑자기 낙마해도, 스크리닝 오케이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인사는 “가령 어느 부처 장관을 바꿔야 한다면, 그 부처 장관 후보자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의 각종 자료를 행정자치부, 검찰, 경찰, 국정원, 기무사, 국세청, 금융감독원,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에서 모두 받는다. 전산화가 잘돼 있어 이런 기초자료 수집엔 큰 어려움이 없다. 이와 별도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 나와 있는 각 부처 국장급들이 자기 부처 장·차관 후보자에 대한 내부 평가를 담은 보고서를 낸다. 업무능력과 통솔력 등을 판단하기 위한 자료다”라고 설명했다.
장관들이 대통령과 4년 임기를 대개 같이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보통 1년이면 장관을 바꾼다. 예상치 못한 정책 실패나 개인 비리가 터지면 갑작스레 장관이 책임을 지고 옷을 벗는 사례도 허다하다. 그런 경우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며칠 안에 장관 후보자를 스크린해야 한다. 전직 청와대 민정수석은 “그런 데 익숙해져 있다. 정부 전산화가 잘돼 있어 2~3일이면 중요한 사안들은 거의 체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고속 검증이 가능한 비결은 전산화인 것이다. 불과 몇 시간이면 장관 후보자의 부동산, 위장전입, 병역, 전과 등등 온갖 자료들이 청와대에 도착한다. 그 규모와 질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우선 행정자치부에서 받는 자료를 살펴보자. 후보자의 주소지 이전을 파악할 수 있는 주민등록 서류와 종합토지세 관련 자료가 넘어온다. 주민등록은 전산화가 잘돼 있어 1970년대 이후의 개인 주소 이전 사항을 싹 파악할 수 있다. 이게 중요한 건 위장전입을 가리기 위해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한 인사의 얘기. “공직 후보자인 남편과 아내의 주민등록지는 대개 같다. 그런데 일정 기간 동안 아내의 주민등록지가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경우가 나오면 위장전입을 의심할 수 있다. 특히 아이들까지 아내의 주민등록지로 주소지가 옮겨졌다면 십중팔구는 아이들 학군 때문에 위장전입한 케이스다.” 우리 사회에서 학군 때문에 위장전입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고위공직 후보자엔 치명적일 수 있다.
국세청에선 과세 자료와 부동산 거래내역 자료를 받는다. 이들 자료엔 1970년대 이후 공직 후보자 개인과 직계 가족의 부동산 거래 내역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어, 목록만 보더라도 대략적인 부동산 투기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지방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면 우선 그 위치가 고향 근처인지를 본다. 고향 근처라면 선산이거나 퇴임 뒤 낙향에 대비해 땅을 샀을 수 있다. 그 다음엔 부동산 보유 지역에서 과거 근무한 적이 있는지를 본다. 과거 근무지와 겹치면 그때 부동산을 샀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에 해당되면 어느 정도 해명이 된다. 둘 다 해당되지 않는다면 그건 거의 100% 투기로 봐야 한다.”(김대중 정부에서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한 인사)
그러나 지방에 보유한 땅은, 거래 내역에 적힌 내용만으론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알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어느 장관 후보자가 강원 홍천에 땅 100평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게 어떤 땅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장에게 물어보거나 때론 직접 현지 실사를 나가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고위공직자 낙마의 가장 대표적 케이스인 ‘위장전입에 따른 부동산 구입’ 여부는 사전에 거의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 “언론들이 전담팀까지 구성해 며칠간 추적 취재를 해야 파악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위장전입 문제를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그것도 단 몇 시간 만에 파악하고 있다.”(김대중 정부에서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인사)
그런데도 막상 인사를 하고 난 뒤 언론 검증 과정에선 예상치 못한 큰 논란이 야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흠집’은 알지만 그 흠집이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지, 나중에 여론의 평가가 어떨지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4년 이헌재씨를 경제부총리로 임명할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 부총리 부인이 1980년 무렵 경기 광주의 농지와 임야를 위장전입을 통해 매입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헌재씨를 경제부총리 후보로 추천한 인사수석실 쪽에서 ‘이미 20년이 지난 사안이고 현재까지 땅을 보유하고 있으니 정상 참작이 된다. 또 그 사람이 지금 경제정책 사령탑으론 최선이다”라고 주장했고, 노 대통령도 이런 논리에 마음이 기울었다. 아무리 흠집이 많아도 ‘그 사람밖에 없다’거나 ‘대통령이 그 사람에 마음을 두고 있다’고 하면, 결국 그쪽으로 인사는 결정된다.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대통령이) 검증을 세게 하라고 하면 민정수석실에서도 세게 하는 거고, 대통령이 이 사람을 시키겠다고 마음먹으면 검증은 허술해지고 민정 쪽의 의견도 완화될 수밖에 없다.”(전직 청와대 민정수석)
이명박 정부가 첫 인사에서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직자 재산 공개를 처음 도입한 김영삼 정부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인사 검증 시스템은 세련되고 정교해졌다. 그러나 정교함이 ‘대통령의 인사 기준’을 넘어서진 못한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의 첫 조각이 발표되자마자 물러난 이춘호 여성부 장관 내정자와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 남주홍 통일부 장관 내정자에겐 모두 자신 또는 배우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문제가 됐다. 남주홍 내정자에겐 아들의 이중국적 문제도 불거졌다. 두 달 뒤엔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이 농지를 매입하고 거짓 자경확인서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 옷을 벗었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과 곽승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도 농지를 불법 매입한 사실이 밝혀져 곤욕을 치렀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쉽게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받았다.
당선자 비서실에서 인사를 총괄했던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2008년 7월 청와대 개편 때 사임했다 2009년 1월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재기)은 짧은 시간에 적은 인원으로 수많은 후보자를 검증하기 어려웠다고 호소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각 부처 파견 직원 10여 명과 밤을 새우다시피 검증작업을 했으나 5천여 명을 제대로 가려내기는 무리였다”고 밝혔다.
‘인사 검증 매뉴얼’은 전달됐을까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 마련된 ‘인사 검증 매뉴얼’엔, 이중국적 문제를 제외한 부동산 관련 의혹들은 모두 주요 검증 대상에 포함돼 있다. 국세청 부동산 거래내역과 세금 내역은 전산화돼 있어 몇 시간이면 자료를 받을 수 있다. 부동산 거래내역과 행정자치부의 주민등록 서류를 대조하면 위장전입은 금방 파악된다. 현지 농지를 스스로 경작하는지 여부(현행 농지법엔 직접 농사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도 노무현 정부 때 새로 추가된 매뉴얼 조항에 따라 해당 경찰서 정보과의 협조를 받으면 파악이 가능하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새 청와대 팀에 ‘인사 검증 매뉴얼’을 넘겼다”고 밝혔지만, 현 청와대 핵심 인사는 “그런 자료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어쩌면 정권 이양 과정에서의 양쪽 불신이 자료의 정확한 전달을 막았을 수 있다.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은 “(새로 백악관에 입성하는 사람들의) 기본 인식은 ‘만약 당신(전임 정권 사람)들이 똑똑하다면 선거에서 우리에게 졌겠나. 우리가 당신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나’라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수많은 고위공직자의 낙마를 거치면서 계속 높아졌던 부동산 검증 기준은 이명박 정부 첫 조각 때는 적용되지 않았다. 부동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너그러운 인식이 검증 기준을 정하는 데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pc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