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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 만들기’ 할당 전략

등록 2008-11-28 11:01 수정 2020-05-03 04:25
정치후원금.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정치후원금.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매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국회의원 보좌관들의 손발은 바빠진다. 정치후원금 모금 때문이다. 현직 국회의원들은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 선거가 없는 해는 1억5천만원까지 정치후원금을 모을 수 있다.

올해는 4월9일 18대 총선이 치러졌기 때문에 모금 한도가 3억원으로 불었다. 하지만 사실 법정 한도를 모두 채우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2007년에는 고작 5명의 국회의원이 3억원 한도를 채웠고, 지방선거가 있던 2006년에도 11명이 3억원을 넘겼을 뿐이다. 게다가 올해처럼 경기마저 좋지 않은 해에는 후원금 모금이 더욱 부진할 수밖에 없다.

법정 한도를 채우지 못한다고 해서 잔여 한도만큼 이듬해 모금 한도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은 12월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후원금을 많이 긁어모으는 수밖에 없다.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정치후원금이 아니라면 지구당 성격의 당협위원회(한나라당)나 지역위원회(민주당) 사무실 운영 경비와 인건비 대는 것조차 빠듯해진다.

사정이 그나마 나은 쪽은 경험이 있는 재선급 이상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 그래도 수월하고, 지역 조직을 갖고 있으면 이 역시 정치후원금 모금에 큰 도움이 된다. 반면 초선의 비례대표 의원이라면 후원금 모으기가 쉽지 않다. 이성남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 의원의 경우 아무래도 비례대표이다 보니 정치후원금 요청하는 것을 대단히 민망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며 “원래 알고 있던 지인들을 중심으로 후원금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처럼 보좌관에게 후원금 모금 액수를 할당해주는 경우도 있다. 의원으로부터 5천만원을 할당‘당했다’는 보좌관의 고백이다. “지난 6월까지 1억5천만원 정도를 모금했는데, 나머지 1억5천만원은 의원이 직접 1억원을, 내가 5천만원을 책임지고 끌어오기로 했다. 뭐, 평소 같으면 불가능한 액수도 아니지만 올해는 경기가 안 좋은 탓에 11월 말 현재 2천만원밖에 모으지 못했다.”

정치후원금 모금이 쉽지 않다 보니 피감기관 등에서는 각종 편법을 동원해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한다. 법인이나 단체의 정치후원금 기부가 불법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이를 여러 개인 명의로 쪼개서 보내오는 것이다. 이런 정치후원금은 ‘법안 심의 과정에서 잘 좀 봐달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한국노총 서울시버스노조가 최근 한국노총 출신의 한나라당 의원들을 위해 대규모 정치후원금을 조성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736호 줌인 ‘버스기사 주머닛돈이 한나라당 쌈짓돈’ 참조). 11월 초 서울시버스노조로부터 문제의 정치후원금을 제안받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인 김성태 한나라당 의원은 오히려 이를 거절했다. 특히 김 의원은 피감기관인 ○○○○공단에서 수십 명의 개인 명의로 보내온 700여만원의 정치후원금도 계좌번호를 일일이 추적해 돌려보냈다. 김 의원은 “조금이라도 이해관계에 있는 기관이나 개인에게는 정치후원금을 일절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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