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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팬클럽들 갈라서는 사연

등록 2008-12-02 13:32 수정 2020-05-03 04:25

20~30개로 추산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팬클럽들은 ‘박근혜교 신자’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열성적이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팬클럽 사이의 ‘과잉 충성경쟁’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최근 들어 팬클럽 사이의 ‘기득권 다툼’이 볼수록 가관이다.
지난 10월 회원수 1만여 명의 ‘근혜사랑’은 “‘호박가족’과 모든 제휴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호박가족이) 정광용(‘박사모’ 회장)을 타도한다는 명분으로 박사모와 선 긋기에 급급했다. 결국 (호박가족은) 정광용은 물론 모든 박사모 회원들의 적이 되고야 말았다. 이런 행위는 ‘근혜동산’이라는 또 하나의 팬카페를 만드는 촉매가 되고 말았다”고 이유를 들었다.
팬클럽끼리의 다툼치곤 거창하고 복잡하다. 무슨 소리일까.
박사모는 회원수가 5만명에 이른다는, 가장 유명한 박 전 대표의 팬클럽이다. 그런데 정광용 회장은 지난해 대선 때 이회창 당시 자유선진당 후보 캠프에서 조직국장을 맡았다.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지지유세에 나서겠다고 하자, 정 회장은 이에 반대해 박 전 대표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회창 후보 공개 지지선언을 하기도 했다. 경선에 깨끗하게 승복한 박 전 대표가 팬클럽 때문에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팬클럽의 연합체 성격인 호박가족은 그래서 탄생했다. 박사모의 활동이 팬클럽의 취지에 벗어났다고 판단한 팬클럽 수십 곳이 “저래선 안된다. 우리끼리라도 의견을 모아 박 전 대표를 정말 돕도록 하자”고 머리를 맞댔다. 최종적으론 하나의 팬클럽으로 통합한다는 목표도 정했다. 호박가족은 전체 회원수 7만명을 훌쩍 넘었고, 박 전 대표가 직접 글을 올리고 봉사활동을 함께 하는 유일한 팬클럽으로 성장했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호박가족은 사실상 박 전 대표의 인증을 받은 유일한 ‘공식 팬클럽’”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호박가족에 들어가 있던 팬클럽 근혜사랑이 ‘탈퇴’와 ‘단절’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근혜사랑 운영자 신현철씨는 “호박가족이 사조직으로 오해받을 수 있어 그랬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임산 호박가족 대표의 의견은 좀 다르다. “각 단체들을 통합하려면 지금의 이름을 내려야 하는데, 그걸 주저하는 곳이 적지 않다. ‘회장님’ ‘단장님’이라는 ‘감투’에 애착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감투는 잡음을 부른다. 호박가족 지역 책임자인 광역지부장 온라인 선거 때는 출마 자격을 놓고 내부 불만이 높았다. 지부장 선거에 나가려면 다른 팬카페 대표나 운영자로서 활동을 그만둔 지 30일이 지나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팬클럽 지도부는 박 전 대표를 만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거나 언론과 인터뷰할 기회도 갖게 되는데, 이런 사소하지만 달콤한 ‘기득권’을 쉽게 포기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일부 팬클럽 운영진은 지난 총선 때 친박연대·친박무소속연대 후보들의 선거를 돕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했다는 말도 끊이지 않는다.
한 팬클럽 회원은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팬클럽 안에서 기득권이니 돈이니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박 전 대표한테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박 전 대표의 한 핵심 참모는 “이들이 사고를 치면 박 전 대표만 욕을 먹는다. 정말 누구를 위한 팬클럽인지 모르겠다”고 가슴을 쳤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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