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대군’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또 ‘상왕 정치’ 논란에 휩싸였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의 성향을 파악한 문건을 국회 본회의장에서 보다 사진을 찍힌 탓이다(사진). 이 의원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냐”고 역정을 냈지만,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 안에서도 “대통령 형님이면 다냐”는 노골적인 비판이 쏟아졌다.
사실 본회의장에서 ‘문건’을 보는 것은 권력 실세들의 지표다. 비밀스런 서류를 전달받거나 다른 의원과 머리를 맞대고 은밀한 필담을 나눌 필요가 있는 사람이 바로 실세들인 탓이다. 이 때문에 본회의장에서 일차적으로 카메라의 주목을 받는 사람도 실세들이다.
이 의원은 지난 1월에도 권철현 전 의원과 교육과학기술부 인선과 관련한 필담을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바 있다. 이 의원은 권 전 의원이 쓴 이름 가운데 박종구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었고, 권 전 의원은 곧바로 그의 이력서를 꺼내 이 의원에게 건넸다. 박 전 본부장은 얼마 뒤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에 임명됐다. 이 의원은 강력히 부인했지만, 이 일은 그의 ‘힘’을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총선 때까지만 해도 실세 중의 실세로 꼽혔던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도 ‘문건 정치’의 현장을 두 차례나 본의 아니게 공개당했다. 한나라당이 공천 신청 접수도 시작하기 전인 지난 1월, 인수위 자문위원을 비롯한 공천 신청자 20여 명의 이력서를 보다가 사진을 찍힌 것이다. 당시 정 의원은 아무런 당직을 맡지 않은 초선 의원이었다. 지난해 11월엔 정 의원이 또 다른 실세인 이재오 전 의원과 함께 박근혜·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의 이름이 적힌 ‘당 대표 문제’라는 제목의 메모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벌써부터 당권 경쟁에 신경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문건은 때로 너무 솔직해, 적에게 아군의 고민을 그대로 드러내주기도 한다. 올초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의 공천 배제 문제로 폭발 직전이던 박근혜계 의원 35명은 본회의장에서 행동 통일을 결의했다. 그 직후 유승민 의원이 쓴 메모가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찍혔다. 거기엔 ‘또 (이명박계를) 믿는다’ ‘집단행동’ ‘각자도생’ 등의 시나리오가 적혀 있었다. 박근혜계 의원들은 집단 탈당도 불사하겠다며 배수진을 쳤지만, 유 의원의 메모는 그들이 쉽게 ‘결단’을 내리진 못할 것이라는 추측을 낳았다.
교실에 앉아 있다고 수업 시간 내내 강의에 집중하는 건 아니듯, 본회의장에 앉아 있다고 매순간 법안 처리에만 집중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실세가 아니어서 살펴볼 문건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딴짓’은 많다. “처리되는 법안의 70%는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는 의원들은 오늘도 본회의장에 앉아 회의가 끝나면 어디서 밥 먹자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고,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고, 자신의 홈페이지를 들여다본다. 그렇게 국회의 2008년 12월은 흐르고 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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