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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칭으로 불러주세요

등록 2009-01-21 17:29 수정 2020-05-03 04:25
애칭으로 불러주세요

애칭으로 불러주세요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최근 의정보고서를 냈다. 제목이 ‘문순c시대’였다. 모두 4쪽 분량의 의정보고서 곳곳에 ‘문순c’가 등장했다. 최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와 블로그 대문에도 문순c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문순c를 발음하면 곧 ‘문순씨’가 된다. 자신을 문순씨로 불러달라는 뜻이다. 동시에 c는 최 의원의 영문 성 이니셜이기도 하다.

최 의원이 문순씨라는 호칭을 고집한 것은 꽤 오래됐다. 문화방송 사장 시절부터 그는 ‘최문순 사장’보다 문순씨로 불리기를 희망했다. 2005년 문화방송 인기 드라마 과 가 방영될 때는 삼순이·금순이와 함께 ‘문화방송 3순이’를 자처했다.

최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 의원은 명함에도 ‘의원’ 직함과 국회 문양을 새기지 않았다”며 “호칭도 그냥 문순씨라고 불러달라고 하는데, 반응이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정치인이 약칭이나 애칭을 얻는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일부 정치인은 언론을 상대로 자신의 이름을 영문 약칭으로 표기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도 수년 전부터 ‘Na’라는 영문 약칭을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 Na는 나 의원의 성을 뜻한다. 나 의원은 홈페이지에서도 ‘언론의 Na’, ‘Na와의 대화’ 등 약칭 노출을 꾀하고 있다. 최근 나 의원이 기자들에게 보낸 연하장에도 어김없이 ‘Na’가 등장했다. “희망찬 대한민국을 만들기 소망합니다. Na와 당신,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의 애칭은 ‘JOY’다. JOY는 Justice(정의), Optimum(공평), Yes(긍정)의 약자다. 이 애칭을 가장 먼저 쓰기 시작했다는 팬카페 ‘재오사랑’(JOY세상) 관계자는 “1차적으로는 정의·공평·긍정의 의미이지만 ‘조이세상’으로 부르면 ‘즐거운 세상’이라는 뜻도 된다”며 “JOY를 이재오 전 의원의 영문 이름 이니셜(Jae-Oh Yi)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도 최근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 이름을 ‘JOY STORY’로 바꿨다.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전통적 방식의 영문 이름 약칭 ‘MJ’를 밀고 있다. 과거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각각 YS, DJ, JP로 불린 것처럼 영문 이니셜은 가장 간편한 약칭이기도 하다. 아직 언론에서는 MJ를 일반적으로 쓰지 않고 있다. 다만 과거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만은 MJ를 적극적으로 쓰고 있다.

약칭이 정치인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 본인의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히트를 하기도 하고 무시될 때도 있다.

현역 정치인 가운데 자신의 약칭을 일반화한 사례는 이명박 대통령이 거의 유일하다. 이 대통령은 2007년 대선 전부터 자신의 영문 약칭 MB를 의도적으로 띄웠다. 자신의 경제 정책에 ‘MB노믹스’란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홈페이지 주소에도 MB를 넣었다. 이제는 상당수 언론에서도 MB 약칭을 거부감 없이 사용하고 있다.

부작용도 있다. 지난해 촛불집회 때 이 대통령을 비하하는 의미로 ‘2MB’라는 약칭이 등장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2메가바이트(MB)란 뜻이다. 자신의 약칭 MB가 컴퓨터 용량 단위와 같아 빚어진 일이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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