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낙선하면 유학을 간다. 한국에 머물기 여의치 않은 이유도 있지만, 이점도 여럿이기 때문이다. 정동영 전 민주당 대선 후보와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은 지금 미국의 대학에 있다. 각각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듀크대학과 수도 워싱턴의 존스홉킨스대학에 초청교수로 머물고 있다.
이재오 전 의원은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한국 현대정치’를 주제로 일주일에 2시간 강의한다. 한국어로 한다. 한국어가 가능한 대학생 4명이 수강하기 때문이다. 이 전 의원이 즐기는 것은 특강이다. 이달 초에는 존스홉킨스대학원에서 특강을 했다. 아메리칸대학과 ‘흑인들의 하버드’로 불리는 하워드대학에서도 특강을 했다. 그의 핵심 측근은 “이 전 의원이 중등 교사(국어) 출신이라 워낙 강의를 좋아한다”며 “지금은 완전히 ‘이재오 교수’로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명교수야, 명교수”라며 자기 ‘주군’(主君)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11월에는 조지타운대학과 스탠퍼드대학에서 강연이 예정돼 있고, 프린스턴대학에서도 강연 요청이 와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만난 인연들은 자연스레 이재오의 ‘미국 인맥’이 될 것이다.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한 한나라당 의원은 “이 전 의원이 〈CNN〉의 테드 터너 회장과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회장 쪽과 약속을 잡을 정도로 발을 넓혀놨더라”고 전했다.
정동영 전 후보 쪽은 말을 아꼈다. 정 전 후보는 듀크대학의 ‘공공정책 및 환경정책연구소’에서 강의한다. 주제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문제. 수업은 영어로 진행한다고 한다. 정 전 후보의 영어 실력은 일문일답이 가능할 정도는 된다. 요즘 푹 빠진 책은 몽골의 흥망을 다룬 데이비드 모건의 라고 한다. 그 이상은 공개하지 않았다. 정 전 후보 쪽은 “그냥 당분간 정동영이란 이름까지도 잊어달라”고 했다. 이유는 전략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년 중순에 있을 보궐선거를 전후로 정치 복귀를 모색하는 이재오 전 의원과는 다른 처지다. 정 전 후보의 한 측근은 “미국으로 떠난 이유가 완전히 달라진 ‘뉴 정동영’을 보여주기 위함인데, 자꾸 미련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물론, 정 전 후보 쪽도 활발히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정치인에게 유학의 시간은 동지들을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1998~99년 미국 연수 당시 워싱턴에서 만난 이들을 상당수 요직에 중용하고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가 대표적이다. 홍 대표는 1999년 총선에 낙선한 직후 ‘이명박 선배’를 쫓아 미국행을 택했다. 워싱턴 정착 초기에는 아예 이명박 대통령 집에 머물기도 했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과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 김영호 행정안전부 1차관이 당시 주워싱턴 한국대사관에 근무하고 있었다. 신재민 문화부 2차관은 당시 워싱턴 특파원, 김상협 청와대 미래비전비서관은 특파원이었다.
공교롭게도 현재 듀크대학에는 4명의 정치부 출신 신문·방송 기자가 연수 중이다. 이들은 모두 지난 대선 당시 정치권 취재의 현장 사령관이었던 정당반장 출신이다. 존스홉킨스대학이 있는 워싱턴에도 정치부 출신 기자 2명이 연수 중이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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