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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빌딩엔 국회의원들이 몰릴까

등록 2009-05-27 19:10 수정 2020-05-03 04:25
진미파라곤 빌딩.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진미파라곤 빌딩.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대망을 품은 ‘잠룡’들은 조용히 발걸음을 재촉할 곳이 필요하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무슨 일인가를 도모하는 이들도 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공간 가운데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순복음교회 옆 진미파라곤 빌딩(사진)이다. 여러 정치인이 같은 빌딩에 세를 드는 일이 드문데, 이 빌딩은 그렇지 않은 탓이다. 지하 8층, 지상 12층 규모로 66.116m²(20평)~175.2074m²(53평)까지 모두 396세대를 수용할 수 있는 이 오피스텔은 2005년 10월 입주가 시작돼 국회 앞에선 ‘신상’으로 꼽힌다.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은 얼마 전 이곳에 복지정책을 연구하는 사단법인 ‘나눔과 키움’의 둥지를 틀었다. 그는 이곳으로 복지 분야 전문가, 중도개혁 성향의 정치권 안팎 인사 등을 초청해 토론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 앞 다른 건물에 있던 사단법인 ‘지역과 세계 연구소’를 지난해 10월 이곳으로 옮겼다. 대북 강경 노선을 주도하고 있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 지난해 ‘좌편향 교과서’ 문제를 제기한 ‘교과서포럼’의 고문인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연구소 이사로 올라 있어 눈길을 끈다.

정치권에선 한나라당 ‘원조 소장파’로 협력관계인 동시에 필연적 경쟁관계인 두 의원의 연구소가 각각의 대권을 향한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총선 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돼버린 박근혜계 인사들을 위해 이 빌딩에 사무실을 얻었다. 박근혜계라는 이유로 그 많다는 ‘낙하산’도 얻어타지 못한 이들이 모여 ‘한’도 털어놓고, 김 의원을 보좌할 방법도 고민한다.

위세로는 국회의원을 능가하는 선진국민연대의 후신 선진국민정책연구원도 이곳에 주소를 뒀다. 선진국민연대를 이끌었던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재직 때 이 빌딩에서 인사권을 휘두른다는 소문이 나돌아, ‘밖와대’(청와대 밖 청와대라는 뜻)로 지목되기도 했다.

많고 많은 국회 앞 빌딩 가운데 유독 이곳이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인근 부동산 사장은 “깨끗하고, 한강 조망도 좋고, 교통까지 편리한 데 비해 임대료는 크게 비싸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월 임대료는 대략 100만~220만원 수준으로, 주위의 새 건물과 비교해봐도 월 20만~30만원 차이라고 했다.

정치권 인사들이 꼽는 최대 강점은 ‘보안’이다. 사무실에 들어가려면 엘리베이터 앞에 설치된 보안문 앞에서 신분 확인을 거쳐야 한다. 또 출입구가 여러 개여서 1년 넘게 이 오피스텔로 출근한 정치권 관계자도 “누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직접 본 적은 없다”고 할 정도다. 꿈은 다른 이가 볼 수 없다. 하지만 ‘큰 꿈’은 유권자의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꿈, 얼마나 검증받을 만한 내용으로 채워질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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