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아줌마, 섹스 잘해요?” 환급금 운운하며 전화 사기를 치려고 하기에 어디냐고 꼬치꼬치 캐묻자 결국 그 사기꾼은 목소리를 바꿔 이렇게 말했다. 상대가 여자니 알아서 놀라 끊겠지 싶었겠지만 천만에. 오히려 “유치한 짓 하지 마라”고 소리쳤더니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놈의 목소리가 움찔움찔한다. 유치한 놈. 하지만 얼떨결에 이 수법에 당한 사람이 많았다. “지금 다시 같은 방식으로 사기쳐도 얼마든지 돈 벌 자신이 있어요.” 방송에 출연한 ‘전직’ 사기꾼의 말이다. 그는 인터넷 ‘오픈마켓’에 전자제품을 다른 쇼핑몰보다 20만~30만원 정도 싼 가격으로 올려놓은 뒤 ‘최저가’에 눈이 번뜩한 사람들이 연락해오면 현금 입금을 유도한 뒤 돈만 받고 사라졌다. 이 수법을 쓰는 사기꾼들은 여전히 많다. 그러니 ‘전직 사기꾼’은 사기를 ‘못’ 치는 게 아니라 ‘안’ 치고 있을 뿐이라는 식이다.
세상에는 유치해도 뻔해도 시대와 관계없이 통하는 사기 행각이 너무 많다. 인터넷 세계에도 벌써 몇 년째 뻔한 수법의 사기가 판을 치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허위 안티스파이웨어’ 뿌리기다. 보도가 몇 번 나갔어도 일단 그 생소한 용어 앞에 사람들은 시선을 돌린다. 그러니 조금만 이 세계를 아는 ‘사기꾼’이라면 돈냄새를 맡고 모여든다. 원래 스파이처럼 몰래 사람들의 컴퓨터에 설치돼 광고나 띄우곤 했던 ‘스파이웨어’들이 아예 더 벌겠다고 나서서 자기들이 ‘스파이웨어’를 없애주는 프로그램인 양 등장한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들도 일단 스파이웨어처럼 사용자 PC에 몰래 깔리고 나서 매우 긴급한 척 ‘당신의 PC에 악성코드 00개 발견’ 식의 창을 수시로 띄워 치료 결제를 유도한다.
이런 사기 행각은 생각보다 체계적이다. 우선 사기 프로그램을 만드는 집단이 존재한다. 이들은 인터넷상의 중개업소를 통해 이 프로그램을 전파할 ‘요원’을 모집한다. 보수는 철저히 성과급이다. 누군가의 PC에 설치되게 하는 건당 40~45원 정도를 준단다. ‘요원’들은 네티즌이 몰리는 포털 사이트에 부지런히 ‘지뢰’를 설치한다. 포털의 ‘최다 검색어’를 클릭해보면 조회 수 올리기에 혈안이 된 몇몇 언론사들의 낚시 기사 외에도 어느새 그 기사를 스크랩해 검색에 걸리게 해놓은 블로그와 카페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왜 이리 바쁘게 검색어마다 쫓아다니는 걸까? 그들은 검색어를 따라 몰려든 네티즌이 해당 페이지를 여는 순간 스파이웨어를 내려받게 만든다. 내용을 보려면 이걸 설치하라는 식도 있고 그냥 순식간에 뭔가 내려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허위 안티스파이웨어’가 띄워대는 경고창에 놀란 사용자는 치료를 위해 2천~3천원을 결제하게 되고, 이후 그가 눈치챌 때까지 결제는 자동 연장돼 매달 돈이 빠져나간다. 이 수법을 쓰는 스파이웨어 제작업체들의 수익이 상상을 초월한다니 걸려드는 사람이 그만큼 많은 셈이다.
문제는 이 사기 수법을 막을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는 것이다. 정보통신망법 62조에는 ‘악성 프로그램 유포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돼 있고 스파이웨어도 악성 프로그램에 포함시켜두었지만 어디까지가 스파이웨어인지, 누구의 과실로 내려받게 됐는지, 정말 사용자에게 피해를 줬는지 등 애매한 부분이 많다. 당연히 처벌받는 이들은 극소수. 단속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한 상황에서 돈줄은 끊이지 않으니 오늘도 많은 이들이 ‘요원’으로 알바를 뛰고 중개 사이트들은 경쟁을 부추기며 재미를 보고 있다. 어쩌겠는가, 당하고도 모른 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모르는 게 죄’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니. 컴퓨터를 켤 때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와라, 유치한 놈들!’ 하고 외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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