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자꾸 전화가 왔다. 나 대신 전화를 받은 사람이 서울 마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온 전화라고 했다. 내가 관리자로 있는 사이트의 실명 확인 조치를 잘하라는 메시지였다. 의 온라인 독자참여방을 내 이름으로 개설했더니 내게 연락이 왔다. 며칠 뒤에는 선관위 사람이 사무실로 찾아와 ‘선거실명확인 서비스 이용안내’란 책자를 두고 갔다.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독자참여방에 들어가볼 때면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감시받는 느낌, 내가 게시물을 ‘관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어떤 기관이 내가 관리자로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연락한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웠다.
며칠 뒤, 나는 나보다 훨씬 더 부담스러운 상황에 있는 이들을 만났다. 11월20일 ‘선거법 피해 네티즌 번개’에서였다. 거기 모인 이들은 대선 후보나 정당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온라인에 올렸다가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선관위의 안내 전화를 받은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웠는데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면? 그저 내 의견을 끼적였을 뿐인데 조사받으러 오라면 기분이 어떨까.
특별한 이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이미 11월22일 현재 160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그런 전화를 받았다. 회사원, 대학생 등 그들은 모두 우리 주변의 누군가였다. 단 두 문장의 댓글을 달았다가 조사받은 사람도 있었다. ‘글발’이 좋아서 네티즌 사이에 호응을 얻는 게시물을 올린 사람은 더 부담이었다.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느낀 정당 쪽에서 그를 경찰에 신고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네티즌들은 온라인에서도 소곤대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누구누구가 싫다’ ‘누구누구가 이런 소릴 했다더라’는 말을 결코 크게 하지 못한다. ‘대통령 이명박 괜찮은가’란 엄청난 시리즈물을 만들어낸 김연수씨는 결국 4편까지 만들고 경찰의 부름을 받았다. 워낙 방대한 자료를 갖고 꼼꼼히 만든 사용자제작콘텐츠(UCC)이기에 아까워 선거법대로 고쳐보기라도 하겠다고 호소했지만 그래봤자 소용없단다. 후에 제작한 5편은 원하는 사람에게만 살짝 이메일로 보내줬다. 옷깃 속에 유인물을 숨기고 다녀야 했던 시대가 떠오른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경찰과 선관위는 선거법을 내세워 할 일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사이 네티즌 개개인은 공권력으로부터 호출돼 조사를 받으며 쉽게 치유되지 않을 상처를 받고 있다. 그것은 ‘공포’와 ‘무기력’이다. 이미 네티즌 사이에서는 글 쓰기가 무섭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선거법이 무서워 각 포털이 대선을 위해 마련한 코너는 썰렁하고 토론방에도 연예계 이야기만 넘쳐난다.
네티즌들은 지난 11월22일 국회 앞에 모여 “네티즌은 말하고 싶다”고 외쳤다. 나 역시 이제는 말하고 싶다. 비록 ‘독자참여방’을 내가 열긴 했지만 그곳은 독자들이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광고글은 삭제하겠지만 나머지는 에 대한 비방이라 해도 그대로 두고 싶다. 악플은 자체 정화하면서 익명으로도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 부담스러우니 전화하지 마시라. 나에게도, 네티즌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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