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세 장의 사진을 앞에 두고 본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긴장한 표정의 아이 사진, 감옥의 주검 사진, 그리고 친구 커플의 셀카 사진이다. ‘사진 한 장’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러니까 나는 얼마 전 캄보디아 캄퐁참 지역의 ‘오지 마을’로 불리는 곳에 처음 다녀왔던 것이다. 메콩강을 끼고 3시간을 넘게 달리니까 그야말로 흙길이 나온다. 길 양옆은 풀 반 지뢰 반이다. 흙길을 달리던 버스가 결국 웅덩이에 빠져버렸다. 일행들과 픽업트럭의 짐칸에 올라타서 다시 1시간을 가야 했다. 마침내 만난 마을 사람들. 그들은 ‘섬’에 살고 있었다. 길도 끊어졌고 전깃줄도 수도관도 없다. 당연히 전화선도 인터넷 케이블도 연결되지 않았다. 외부 사람도, 차도, 문화도 접근하기 어려운 마을. 마을 밖과 이어지는 ‘선’이란 없어 보였다.
그런 곳에 우리는 디지털 기기로 무장을 하고 갔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디지털 기기들’이노라, 라고 말하는 듯. 자동차 배터리로 TV를 켜 만화영화도 상영하고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로 아이들을 찍어줬다.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은 바로 주고 그날 밤 포토프린터로 사진을 일일이 출력해 다음날 건넸다. 영상도 노트북으로 편집해 보여줬다. 그들이 (어쩌면 그들의 생애 첫 사진일지도 모르는) 한 장의 사진을 얼마나 소중하게 받아들던지. 디지털 기기 덕분에 우리는 마법사라도 된 양, 선물을 뿌리며 뿌듯해했다.
그곳을 나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으로 향했다. 원래는 고등학교인 곳을 크메르루주가 대학살을 위한 감옥으로 사용했다는 ‘대학살 박물관’을 찾았다. ‘정치범’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킬링필드로 보내기 전까지 가둬두던 독방에는 발견 당시 ‘마지막 수감자’들의 주검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그대로 사진으로 남긴 뒤 주검만 치우고 방을 보존했다. 20여 년 전, 주검이 누워 있던 서늘한 기운의 감옥에 들어서면 그 사진이 크게 걸려 있다. 한 장의 흑백사진은 어마어마한 공포와 슬픔을 안겨준다.
우리는 많은 사진들 속에 산다. 매일매일 ‘일촌’들이 업데이트하는 사진만 해도 몇 장인가. 매일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 속에도 수많은 표정의 나와 친구들이 있다.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면서 나름 프로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나와도, 화장이 잘 받는 느낌이 들어도 디카나 폰카를 꺼내든다. 찍고 지우고 또 찍는 일상에 익숙하다. 누군가 미워지면 휴대전화 속 사진을 ‘모두 삭제’해버리기도 한다. 다시 좋아지면? 다시 찍으면 그만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디지털로 쉽게 찍고 쉽게 잊는가를 생각해보게 됐다. 조금 더 소중한 기록, 조금 더 중요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디지털을 활용하고 있을까. 가 아니어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들을 제대로 찍어둔다면, 그 순간 그 표정이 찍힌 사진으로 조금 더 의미 있게 여겨지지 않을까. 그러면 디지털로 몸이 편해진 만큼 그 시간에 더 깊이 아날로그적 사색을 하게 되지 않을까. 역사도 사회도 더 많이 성숙할 수 있지 않을까. 디지털 세상에 너무 불필요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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