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촐랑아!”
오늘 밤에도 촐랑이는 내 목소리에 어김없이 꼬리를 흔든다. 목부터 등과 배까지 골고루 긁어주자 녀석의 눈이 살살 감긴다. 10년을 함께 살았던 강아지는 죽은 지 3년 만에 닌텐도 안에 부활했다. 사각 화면 안에 있는 ‘촐랑이’는 예전 촐랑이와 같은 요크셔테리어다. 살아 있을 때 산책을 자주 시켜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 지금은 매일 밤 산책을 데리고 나간다. 함께 걸을 수는 없지만 화면 속 촐랑이가 만족한다는 표시로 빛을 반짝이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씻기기까지 마치고 나면 지금까지의 내용을 저장하고 잘 자, 인사를 한다.
“딸, 하늘나라에서 잘 있니?”
자동차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 집을 향하는 아버지가 죽은 딸에게 전화를 한다. “영은이가 보고 싶은 분들은 음성을 남겨주세요”란 메시지를 반복 청취하다가 마지막엔 안부를 묻는다.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SK텔레콤의 광고 ‘사람을 향합니다-전할 수 없는 마음’편이다.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은 ‘심장까지 울린다’ ‘죽은 사람 얘길 광고에 쓰다니 좀 그렇다’며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전할 수 없는 마음까지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마지막 광고 문안을 보니 군대 간 남자친구가 쓰던 전화번호를 누르고는 눈물을 떨구던 여인들도 문득 떠오른다. 늘 갖고 다니는 휴대전화만큼 그 사람의 분신같이 느껴지는 물건이 또 어디 있겠는가.
“산에 부딪힌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일본에서 JAL 123기가 추락해 승객 524명 중 520명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85년이었다. 한데 21세기에 그때 사망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당시 블랙박스 녹음 내용을 누군가가 인터넷에 재생 파일로 올린 것이다. 비행기 이상을 알아채고 추락하기까지 30분 가까운 시간 동안의 상황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장의 고뇌가 담진 지시, 승무원의 떨리는 안내 멘트 등 모든 것이 너무 생생해 소름이 끼친다.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가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도 떠돌아다닌다. 모두들 산소 마스크를 내려 쓰고 있는 모습니다. 보고 싶기도, 보고 싶지 않기도 한 장면, 듣고 있자면 끔찍한 목소리들이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이별을 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애완동물이든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가혹하다. 그래서 때로 사람들은 이별한 대상과 연결될 수 있는 끈을 남겨두고 싶어한다. 주인 없는 미니홈피를 대신 꾸며주며 방명록에 글을 남기기도 하고 얼굴 표정과 목소리까지 생생한 동영상을 보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그래서, 너무 생생해서, 그 사람을 놓아주기가 더 힘이 드는가 보다. 추억은 그저 추억일 때 아름다운 것일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기계 속에서라도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대상으로 남기는 것이 좋을지, 어려운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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