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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평판, 관리하셨쎄요?

등록 2007-12-14 00:00 수정 2020-05-03 04:25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님이 잘못 알고 계신 듯해요. ○○ 브랜드 제품 좋던걸요. ◇◇인증도 받았고….” A기업 홍보실. 김 대리가 자기 회사 신제품을 흉본 인터넷 게시물에 댓글을 달고 있다. 팀장이 출근하자마자 “어젯밤에 이런 글을 발견했다”고 흥분하며 어서 대응하라 지시했기 때문이다. ‘사용해보니 제품이 안 좋더라’는 내용에 위험 신호, ‘리스크 관리’ 출동이다. 팀장이 ‘온라인 평판’의 세계에 눈을 뜬 지 1년. 회사와 관련 있으면 지식인 답글까지 달다보니 팀원들은 어느새 포털의 ‘고수’ 등급이다. 한 팀원이 귀띔한다. “사실 이번 신제품이 좀 별로거든요.”

B기업 홍보실은 온라인에 더 체계적으로 대응한다. 이곳은 매달 30만원 이상을 ‘네티즌 모니터링 전문 회사’에 주고있다. 그곳에선 400여 개의 사이트에 올라오는 새 게시물을 모니터링해 아침저녁으로 보내준다. 보내준 목록을 보고 ‘악성 게시물’엔 법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대응하는 시스템이다. 네티즌 모니터링 서비스로 쟁쟁한 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한 업체는 “온라인상의 모든 네티즌 활동(카페·블로그·미니홈피·지식검색) 및 게시글을 분석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시급 4천~5천원의 아르바이트생들로 인터넷 검색을 ‘돌린다’.

평판이란 ‘세상 사람들의 비평’을 뜻한다. 그럼 인터넷 평판은 ‘인터넷 사람들의 비평’이다. 오프라인 세상이든 인터넷이든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기가 어디 쉬운가. 광고하고 홍보하고 회유할 순 있지만 윽박지르고 입 막는다고 평판이 좋아질 리는 없다. 홍보 담당자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외국계 기업 홍보팀 홍아무개 대리는 “인터넷을 어디까지 관리해야 하는지가 홍보 담당자 모두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일단 그의 회사는 개인적 소감 수준의 게시물은 그냥 두고 ‘진짜 악성’만 대응하는 것이 방침이다. ‘괜히 건드렸다가 반감 살 짓 하지 말자’는 게 몇 년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내린 결론이란다.

‘인터넷 평판 따윈 완벽히 관리해주겠어’라고 집착하다가는 불안감에만 휩싸이기 일쑤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내 회사에 관해 인터넷에 악담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안절부절못한다. 실제로 위 사례에서 A기업 팀장은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온라인 모니터링을 한다. 온라인 파워 유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입하고 심지어 그들의 연락처를 알아내 오프라인에서도 만난다. 이쯤이면 ‘중독’이다. 손 떨리는.

한데 요즘엔 기업 밖에서도 손을 떨고 있는 일군의 무리가 있다. 대선 시즌을 맞은 정치인들이다. 후보님 평판 관리를 위해 네티즌을 이 잡듯 잡고 있다. 단순 의견 개진에도 칼을 휘두른다. 어허, 웹2.0 시대에 왜 이러시나. 기업의 홍보 베터랑들도 몇 년을 고민하며 조심스레 접근한 일을, 정치인들은 너무 단순무식하게 해치우려는 것 아닌가. 혹시 그 후보 제품도 ‘좀 별로’인가. 흥분하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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