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태어날 때부터 걱정했지.” 정보기술(IT) 기업에 근무하는 한 선배는 34개월 전,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언제, 얼마나 컴퓨터를 사용하게 해야 할까” 하는 걱정을 시작했단다. ‘컴퓨터 지상주의자’인 듯하던 선배인데 의외였다. 하긴 빌 게이츠도 자녀 PC 사용 시간은 엄격히 관리한다니. 일찌감치 TV는 치워버렸고 휴대전화는 못 만지게 했지만 컴퓨터는 그러지 못했단다. 자신도 업무상 하루 종일 컴퓨터를 끼고 사니 아이 역시 언젠가 쓰기는 해야 할 터. 아이는 28개월 때부터 모니터를 보기 시작했고(이걸 기억하다니!) 요즘엔 하루 1~2시간 정도 컴퓨터로 ‘뽀로로’나 ‘뿡뿡이’를 본다. “너무 안 보여주면 우리 애만 모르는 게 생겨서 ‘왕따’당할까 걱정도 되고. 보여줘도 걱정, 안 보여줘도 걱정이지.”
한 선배 기자도 같은 고민을 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컴퓨터를 못 쓰게 한다는 프랑스 사례를 취재했지만 정작 유치원생인 우리 아이에게 컴퓨터를 못 쓰게 하는 건 어렵더라고.” 대신 컴퓨터 사용 시간을 하루 30분~1시간으로 확실히 통제한단다. “한데 요즘은 TV에 닌텐도까지 있으니 계산이 좀 복잡해졌어.” PC·닌텐도·TV 3종 패키지로 즐길 경우 제한 시간은 2시간이라고. 주변 얘길 종합해보니 부모들은 주로 아직 어린 우리 아이가 컴퓨터를 쓰면 신체적, 정서적으로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걱정하는 사이 만 3∼5살 유아 인터넷 이용자 수는 87만 명을 넘어섰다(한국인터넷진흥원, 2006).
그럼 정답이 뭔가. 우선 외국의 연구 사례 집합! 미국 오하이오대학의 멜리사 앳킨스 소아과학 교수는 컴퓨터 환경에 일찍 노출된 아이들의 IQ가 높게 나타났으며 장차 학습능력도 앞선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여기에 캐나다 달하우지대학 소아과의 세라 셰어 박사는 “컴퓨터에 매달릴수록 육체적 활동과 또래와 창조적 놀이를 할 기회는 줄어드니 사용 시간을 제한해야 하며 컴퓨터를 아이 침실에 놓아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미 버클리대학의 연구에서는 어린이의 컴퓨터 사용과 근시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특히 걷기 전부터 컴퓨터를 접하면 컴퓨터 시력 증상(CVS)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컴퓨터 사용시 3피트(약 1m)쯤 떨어진 거리에서 15도 정도 아래쪽으로 화면을 봐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인다. 여기엔 아직 증거가 부족하며 컴퓨터가 직접적인 시력 저하를 낳는 것은 아니란 반박도 있다.
국내에서도 명확한 합의 없이 논란만 뜨겁다. 라는 책을 쓴 노중호씨는 “지나치게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접하는 것은 아이가 인간답게 자랄 수 있는 기회를 막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인터넷윤리 포럼’에서 이순형 서울대 교수는 “6세 이전에 받는 자극이 그 이후의 인지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유아기의 인터넷 사용도 부모의 지도가 없으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생활보호 대상자에게 PC를 무료로 일괄 지급한 것이 자칫 아이들을 PC 앞에 방치해 중독되게 만들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잠실아이정신과 전창무 원장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충동 조절을 못해 빨리빨리 변하는 화면에 빠져들 수밖에 없으므로 아예 컴퓨터에 노출시키지 않는 편이 낫다”며 “충동성이 늘고 상호작용을 통해 키워지는 사고·언어 능력은 떨어질 수 있으니 아무리 교육용이어도 1시간 이상은 안 된다”고 말했다. 정답 한번 내보겠다고 이리뛰고 저리뛰며 자료를 모아봤지만 전문가들이 쏟아낸 정보의 홍수에 “나도 잘 몰러!”를 외칠 지경이다. 힘들더라도 부모들이 저마다 ‘자기 아이 전문가’가 돼서 실생활을 통해 연구 결과를 만들어나가야 하나보다. 결국은 부모하기 나름이라니, 디지털 시대 애 키우기에 과제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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