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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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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부르는 공짜의 유혹

등록 2007-10-05 00:00 수정 2020-05-03 04:25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공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도 있으니 공짜 사랑에도 역사가 느껴진다.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뭔가를 공짜로 준다고 하면 어느새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 그런데 거꾸로, ‘내’가 뭔가를 판매하고 있는 시장에 거침없이 공짜 제품이 쏟아져 들어온다면? 소비자는 쉽게 공짜 제품에 넘어가고, 시장은 공짜 중심으로 재편되며, ‘나’는 망하게 마련이다. 시장에 속해 살아가는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공짜’는 ‘죽음을 부르는 달콤한 키스의 유혹’만큼 양면적인 매력(?)을 가졌다.

이미 무료 신문이 출근 시간을 장악했고 온라인 무료 뉴스들로 신문 시장이 휘청일 지경이니 신문사가 ‘공짜’에 느끼는 감정이야 오죽하겠는가. 신문의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이 종이 신문이 아닌 포털을 찾아가 ‘공짜’ 기사를 감상하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가 결국 ‘대세’에 따라 적당한(혹은 작당한) 금액을 받고 콘텐츠를 제 손으로 포털에 넘겨줬다. 수익 구조는 더욱 열악해졌지만 공짜를 나무라기도, 소비자를 탓하기도 애매하다. 이런 식의 구조가 어디 신문사뿐이랴. 중소 콘텐츠 업체들도 포털에 ‘공짜’란 이름의 서비스로 유린당하면서도 뾰족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공짜’를 남발할 수 있는 업체들의 힘은 대부분 ‘광고’에서 나온다. 공짜가 좋아 몰려든 네티즌들이 트래픽을 올리면 광고 단가도 올라가니 ‘트래픽을 부르는 달콤한 공짜’의 유혹은 점점 강렬해진다.

‘공짜’의 행보는 더 대담해져 이제는 보안업체에도 손을 뻗쳤다. 물론 PC 보안제품의 개인시장이라야 불법 소프트웨어 다운로드가 판을 치고 외산 제품들도 슬쩍 끼워주기를 거듭하다 보니 빈약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이제는 차원이 달라졌다. 기존의 ‘툴바’ 형식에서도 발전했다. 네이버가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간 감시 기능을 갖춘 ‘PC그린’이란 컴퓨터 백신을 무료로 공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일부 보안업체에서 인력도 데려갔단다. 아예 대형 포털이 ‘공짜’를 들고 나오니 보안업체들이 발끈했다. 대표적 보안업체인 안철수연구소는 “보안 산업 생태계와 전문성을 존중하지 않은 처사”라며 법적 대응까지 거론했다.

이 ‘공짜’의 뒷면을 후벼보면 러시아산 엔진으로 저렴하게 백신의 틀을 갖추고 거기에 이름만 새로 붙여 공급하겠다는 심산이 드러난다. 일찌감치 국내 시장 진입을 노리던 러시아 업체로서도 괜찮은 선택이다. 하나 365일 24시간 대응 체제를 갖추고 보안 전문업체를 꾸려온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쉽게 시장을 뒤흔드는 꼴이다. 보안 시장에 진출한 것은 아니라고 하니 앞으로 고객 서비스도, 제품 발전도 안 되겠지만 일단 소비자는 공짜에 끌릴 테고 전체 시장에 어떤 타격을 줄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포털의 뉴스 공급이 신문 시장에 끼칠 영향을 몰랐듯 말이다.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보호기획단과 소프트웨어진흥단에 물으니 모두 “시장의 일에 정부가 어떻게 끼어들겠냐. 상생의 길을 모색하길 바란다”는 반응이다. 맞는 말이자 답답한 현실이다. 보안업체의 반발 때문인지 네이버는 현재 “아직 유료로 할지 무료로 할지 미정”이라고 태도를 바꿨다. 무료 서비스라고 홍보한 제품의 네티즌 베타 테스트는 진행 중이지만 말이다. 공짜가 통하는 게 인터넷 세상이라지만 갈수록 공짜로 잃는 것이 너무 많아지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진짜 공짜가 맞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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