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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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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검색어를 노리는 사람들

등록 2008-02-15 00:00 수정 2020-05-03 04:25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제발 ‘청첩장’으로 검색해서 들어오지 마세요.”
청첩장 제작업체인 L사 직원의 호소다. 자기 회사 사이트에 들어오지 말라니 무슨 소릴까.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L사는 포털 검색창에 ‘청첩장’이라고 치면 첫 번째로 검색됐다. ‘스폰서링크’라는 서비스 덕분이었다. 포털 사이트에 한 클릭당 얼마를 주기로 계약을 하고 검색어를 지정하면 ‘스폰서링크’ 사이트가 된다. 포털 업체들은 클릭당 과금 방식이니 광고 효과 대비 액수를 내는 셈이어서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L사 직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사례를 소개했다. “어떤 고객은 주문하고 제작이 완료될 때까지 20번 정도 사이트에 방문하면서 방문할 때마다 스폰서링크를 클릭해서 들어왔다. 계속 하던 대로 ‘청첩장’이라고 검색해 사이트를 찾은 것이다. 그 고객이 결제한 금액이 12만원이었는데 20번 클릭 과금이 1회당 1500원으로 결국 광고비로만 3만원이 빠져나갔다.” 업체를 정했으면 업체 이름으로 검색하거나 즐겨찾기에 추가해두고 이용해달란 호소는 이 때문이다.

결혼의 계절 가을이 다가오자 상황은 더 나빠졌다. 중소 청첩장 제작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청첩장’이란 키워드의 ‘스폰서링크’ 광고 입찰가에 경쟁이 붙었던 것. 1500~1800원 수준이던 클릭당 가격은 4천원을 넘어섰다. 결국 광고비만으로도 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 L사는 하루 중 특정 시간대에만 ‘스폰서링크’를 이용하기로 했다. 왜 이 회사는 검색이 됐다 안 됐다 하냐는 고객의 항의도 많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스폰서링크를 이용하지 않는 시간에는 L사는 ‘청첩장’이란 키워드로 검색해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청첩장’으로 검색한 결과로 사이트 주소를 보기 때문에 스폰서링크라 할지라도 이를 광고로 인식하기보다는 관련 사이트 정도로 알고 클릭하는 경우가 많다. 스폰서링크 이용 업체들도 바로 이런 점을 노려 클릭당 과금을 감수하며 이곳에 자신의 사이트를 상위에 올리려 한다. 인지도가 낮을수록, 온라인 사업을 확장하려 할수록 그 필요성은 커진다.

이렇게 검색 업체들의 키워드 광고는 온라인에서 사업을 하는 업체들에 피할 수 없는 유혹이자 늪이다. 지난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소비자보호단체인 공정경쟁소비자위원회(ACCC)는 구글의 스폰서링크 방식 검색 광고가 공정 경쟁을 저해하고 소비자를 기만한다며 오스트레일리아 법원에 제소했다. 스폰서링크에 대해 법적 해석을 요구한 셈이다.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들을 보면 스폰서링크 밑에도 각자 조금씩 이름이 다른 광고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네이버는 스폰서링크-파워링크-플러스프로-비즈사이트 순이고 다음은 스폰서링크-프리미엄링크-스페셜링크-비즈사이트, 네이트는 바로가기(AD)-스폰서링크-스피드업-스페셜링크-프리미엄링크-비즈링크 순으로 펼쳐진다. 각자 광고비를 내는 방식과 노출 방식 등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광고만 넘겨보기도 ‘스크롤의 압박’이다.

얼마 전 겨울방학과 설 연휴 ‘성형 대목’을 맞아 검색어 ‘지방흡입’이 1회 클릭당 3만1930원에 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검색 페이지를 내려다보면 업체들 간의 소리 없는 전쟁이 보인다. 네티즌이 일상적으로 검색창에 단어를 밀어넣고 검색 결과를 클릭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밑에선 수많은 계산과 돈이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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