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며칠 전 중학교 2학년 큰딸아이와 포옹을 했습니다. 15살이면 다 자란 나이라, 껴안아본 게 몇 해 만인 것 같습니다. 애정 표시를 위해 어쩌다 스킨십이라도 한 번 할라치면 민망할 정도로 화들짝 놀라던 녀석입니다.
포옹의 계기는 우연하게도 함께 시청한 한 방송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방송은 2년 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작돼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로 퍼진 ‘프리 허그’(free hug) 운동을 다뤘습니다. 서로 모르는 이들이 그냥 ‘공짜로 껴안는’ 단순한 행동이었는데도,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이어지는 강렬한 감정이 전달됐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각각 들어가야 했던 쌍둥이 자매 가운데 동생의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하자 간호사가 둘을 한 인큐베이터에 넣었고, 건강했던 언니가 동생을 끌어안자 동생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10여년 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방송 뒤 자연스럽게 아이를 껴안자, 당황스럽게도 제 품에서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흐느끼다 조그만 목소리로 “아빠, 미안해”라고 말했습니다. 뭐가 미안한지 묻지도 못한 채 저도 속으로 “아빠도 미안해”라는 말만 되뇌었습니다. 그날 이후 매일 큰아이와 한두 차례씩 포옹을 합니다. 그때마다 소통의 싹이 점점 커가는 게 느껴집니다.
부쩍 ‘가족’이 화두인 때입니다.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시간의 흐름 탓만은 아닌 듯합니다. 누구든, 어느 때보다 불안과 고독감이 커진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삶을 짓누르는 이 위협의 근원은 개인적인 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10년이 불러온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상으로 여겨집니다.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639호(2006년 12월19일치)에서 이런 현실을 “사람들이 경제적 문제로부터 연원한 자기 자신과 가족의 미래에 대한 극도의 불확실성에 사로잡혀 있다. 사람들은 원자화한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고, 밀림 같은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통용되는 가치는 ‘자기 이익’이라고 믿는다. 이런 세상에서 결속해야 할 유일한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라고 느낀다”고 진단했습니다.
문제는 원자화한 ‘나’나 ‘가족’의 노력으로 이 위협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아버지인 제가 느끼는 가정 경제의 책임, 큰딸아이가 짓눌려 있는 1등 지향의 교육 문제 등을 두 사람의 포옹으로 풀어낼 길은 없습니다. 하물며 구제금융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제는 85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문제를 비정규직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요? 그 어느 하나도 사회적 해법 외엔 해결책이 없습니다. 프리 허그의 참된 가치는 나와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연대의 힘을 키워갈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을 겁니다.
마침, 우리은행이 비정규직 31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새해엔 사회 전체가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는 ‘소셜 허그’가 넘쳐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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