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9년 3월8일 오전 정주영 명예회장 면담을 요구하며 2월28일부터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본사 앞에서 텐트 농성 중이던 현대중공업 노동자와 가족 등 300여 명이 현대 직원들에 의해 해산되고 있다.
1987년 6월항쟁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전국의 공장과 사업장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른바 ‘노동자대투쟁’이었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억눌려 있던 노동자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거리로 나섰다. 작업장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시작됐다. 단순히 임금을 더 달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인간답게 일하고 인간답게 대우받고 싶다는 외침이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이를 가로막는 힘도 거세졌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회사 쪽이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 구사대를 조직하거나 동원했고, 때로는 외부 폭력 세력까지 끌어들였다. 노사갈등에 공권력이 개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폭력과 해고, 구속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동료와 연대하고 노동조합을 지키며, 함께 싸우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었고 누군가는 경찰서와 구치소를 오갔으며, 누군가는 가족 생계까지 걸어야 했다. 그렇게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과 헌신이 쌓이면서 노동조합은 조금씩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갔다.
그리고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지만, 노동의 현실까지 모두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이제 노동현장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또 다른 경계가 그어져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고용형태에 따라 임금과 처우가 달라지고, 차별과 불안정한 고용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노동자들이 마주한 어려움의 모습도 달라졌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는 시대가 바뀌어도 지켜져야 한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1970년 11월13일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이 외쳤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절규는, 1987년 노동자들의 외침으로 이어졌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맞섰던 노동자들, 그들을 가로막았던 구사대와 폭력의 현장을 기록한 오래된 흑백필름을 다시 꺼내본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사진은 빛바랬지만, 그 안에 담긴 노동자들의 외침까지 희미해진 것은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가 자기 삶을 걸고 지켜낸 시간 위에 지금의 권리가 놓여 있다 . 이 화보가 그 오래된 사실을 다시 기억하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2026년 11월 13일부터 서울 용산구 갈월동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선 열사 전태일과 김경숙(1979년 YH무역 노동자)의 인간선언을 시작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만드는 과정을 함께한 노동의 역사를 돌아보는 ‘공존모색―노동이 민주에게’ 전시회가 열린다 .
사진 한겨레 자료, 글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988년 6월6일 아남정밀 안전모와 노란색 비표를 착용한 구사대 200여 명이 대한광학 농성 노동자 60명을 끌어내 경찰차에 강제로 싣고 있다.

1988년 6월6일 아남정밀 구사대에 의해 강제 해산돼 서울 남부경찰서로 연행된 대한광학 농성 노동자들이 구사대의 폭력을 묵인한 경찰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1990년 4월10일 노동운동 탄압 저지를 위해 서울 구로1공단 대한광학 정문 앞에서 열린 노상기도회를 중단시키기 위해, 목회자와 노동자 등 기도회 참석자 50여 명을 경찰과 회사 직원들이 연행하고 있다.

1988년 5월24일 오전 위장폐업 철회를 요구하며 19일째 철야농성을 벌이던 고려남훈병원 노조 조합원들이 원장의 친척과 병원 관리사원들에 의해 강제로 회사 밖으로 끌려 나오고 있다.

1989년 3월22일 ㈜한국피코 노조원 246명이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 3층 미국 상공희의소 사무실에 들어가 임금도 주지 않고 도망간 미국인 사장을 구속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이다 사복경찰에 의해 강제 진압되고 있다. 못이 튀어나온 각목을 들고 진압하는 경찰은 구사대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1989년 5월4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주식회사 서광 노조 쟁의부장 김종수씨가 기나긴 파업에서 회사가 노조 간부를 제명하고 무노동 무임금을 고수하자 휘발유를 온몸에 끼얹고 분신을 시도했다. 이 소식을 들은 노조원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김씨는 인근 고려대 부속 구로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날 밤 11시께 끝내 숨졌다.

1989년 3월21일 대한반공청년회 추천으로 3월15일부터 현대중공업 연수원, 기숙사 등에서 구사대 예비요원으로 생활하다 회사 쪽의 귀가 통보에 반발한 경비직 특채지원자 150여 명이 서울 중구 장충동 반공연맹회관 운동장에 모여 현대와 청년회 쪽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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