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0월16일 저녁 ‘11기 영화간판학교’ 참가자 15명이 김형수 광주극장 이사(위 오른쪽), ‘마지막 영화간판장이’ 박태규 화백과 함께 40여 일 동안 그린 손간판을 극장 외벽에 걸고 있다.
조용하던 골목에 꽹과리와 장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람이 하나둘 모였다.
“하나, 둘, 셋!”
힘찬 구호와 함께 손간판이 모습을 드러내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시민이 직접 그린 영화 간판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2026년 10월16일 저녁,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충장로 광주극장 앞에서 ‘개관 91주년 광주극장 영화제’가 열렸다. 전남대 국악학과 학생들의 길놀이에 이어 ‘11기 영화간판학교’ 참가자 15명이 완성한 손간판 상판식이 진행됐다. 국가유산청이 광주극장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한 가운데, 극장의 역사를 축하하고 개관 100주년을 응원하려고 시민 100여 명이 함께했다.
1935년 문을 연 광주극장은 광주상고(현 광주동성고) 설립자인 최선진 선생이 민족자본으로 세운 문화공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영화와 공연으로 지역 문화의 중심 구실을 했고, 해방 뒤에는 김구 선생의 시국 강연회와 집회 등이 열리며 시민의 삶과 역사를 품었다. 1968년 화재로 건물이 전소했지만, 재건축을 거쳐 지금까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면적 2264.85㎡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인 광주극장은 객석 856석과 스크린 하나를 갖췄다. 상·하층 객석과 기둥 없는 넓은 상영 공간 등 근대 극장 건축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2002년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지정된 뒤 독립영화, 감독 회고전과 영화제 등을 열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등장하는 ‘깐느극장’의 촬영지도 이곳이다.
광주극장의 가치는 건물에만 머물지 않는다. 김형수 광주극장 이사는 “극장 앞에서 만나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던 기억, 오랜 세월 같은 자리를 지켜온 사람의 이야기가 공간 곳곳에 쌓여 있다”며 “영화와 함께 시민의 추억이 재생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향의 당산나무처럼 시민이 언제든 찾아와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쌓는 ‘반려 극장’으로 오래도록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광주극장은 아직도 손으로 영화 간판을 그리고 있다. 10여 년간 간판을 그려온 박태규(61) 화백은 은퇴 뒤 2015년 ‘영화간판학교’를 열었다. 관객이 감명 깊게 본 영화를 그림으로 표현해 하나의 간판으로 완성하는 프로그램이다. 2026년에는 시민 15명이 극장 뒤편 미술실에서 8월부터 40여 일 동안 박 화백과 이선미 작가의 지도를 받아 너비 3m, 높이 2m의 손간판을 완성했다.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을 그린 이현비(34)씨는 “미술을 배워본 적이 없어 힘들었지만, 직접 그린 영화 포스터가 벽에 걸리니 죽는 순간에도 생각날 만큼 값지고 감격스러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광주극장은 11월15일까지 ‘시네토크’와 ‘시네콘서트’ 등을 이어간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토토에게 극장이 꿈과 희망의 공간이었듯, 91년의 세월을 이어온 광주극장도 누군가에게는 추억이자 새로운 꿈이 자라는 곳이다. 시민들의 발걸음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골목길을 따라, 광주극장은 100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전남광주=사진·글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전남대 국악학과 학생들의 길놀이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골목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 박태규 화백이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로 구성한 특별 간판이 왼편으로 걸려 있다.

극장 외벽에는 1935년 개관 때 새긴 상징석이 화재를 이겨내고 재건축 과정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진 채 극장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콘크리트가 드러난 극장 곳곳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856석의 규모의 상·하층 객석과 기둥이 없는 극장 안. 제16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작품이 전시돼 관람객이 영화 상영 쉬는 시간에 맞춰 둘러보고 있다. 영화 속 검열로 삭제되었던 대사를 극장 좌석 위에 자수로 새겨넣은 함경아 작가의 작품이다.

극장 안 1층에는 일제강점기 때 영화 내용과 관객 등을 감시하기 위한 순사의 전용석인 ‘임검석’이 남아 있다.

극장 2층에 마련된 전시 공간. 이곳에는 1990년대까지 영화표에 사용했던 나무 도장 등 극장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가 전시돼 있다.

한 관람객이 개봉작을 보기 위해 극장 매표소에서 표를 구하고 있다. 1층과 2층 모두 자유석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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